쑥스러운 고백 박완서 산문집 1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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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새로운 희열, 맛보다

 

박완서의 산문집, 그 첫 번째 권 <쑥스러운 고백>을 읽었다.

저자의 글은 언제 읽어도 맛깔스럽다. 언제나 신선하다. 내가 저자의 모든 글을 읽었다 해도 과언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책 읽을 때에 '전혀 새로운 희열'(18)을 느꼈다. 맛보았다.

 

주옥같은 경종, 글은 그런 울림이 있어야

 

이 책에서 가장 값어치 있는 글을 고르라고 한다면 41쪽 이하의 난 단박 잘 살테야이다.

그중에서도, 44쪽의 글이다.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한 후에 호화 혼수품을 보고 난 다음에 보여준 저자의 반응이다.

 

저자의 반응을 이해하기 위하여 상황을 잠깐 들여다 보자.

 

<그 댁은 신부댁이었고 손님들한테 자랑하고 싶은 것은 바로 신부의 혼수였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것들을 한마디로 혼수라 부를 수 있을는지 나는 ’하고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이 나이까지 혼인 구경도 여러 번 하고 부잣집 혼수도 더러 눈여겨 뵜지만 이건 그 정도의 안목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42)

 

여기까지 소개된 글을 읽으면, 어떤 상황인지 감이 오는지? 아직 감이 오지 않은 분들을 위해 몇가지 더 소개한다.

 

<침구의 수효와 종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았지만 옷은 다른 것에 비해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시댁에 예물로 가져갈 침구와 옷과 패물이 또 어마어마했다. ,,,,실크 한 벌....비취 브로치,,,,,,,,산호 노리개...시아버지 양복도 몇벌 ,,그랜드 피아노를 싣기 위해 특별히 고용한 인부들이 포장을 공들여 하는 광경도 보았다.>(43)

 

이런 광경을 보고 기가 찬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옥(?)같은 경종을 우리 사회를 향하여 울린다.

여북해야 나는 같이 구경을 하던 사람 중에서 나하고 그래도 제일 친한 사람에게 나중에 넌지시 물어봤다.”

 

뭐라 물어봤을까?

이 댁 신부가 결혼식장에서는 잘 몰랐는데 아마 어딘가 병신임에 틀림없겠는데 어디가 병신인가고. 그랬더니 천만에 사대육신이 멀쩡한 미인이라지 않나. 그러면 몸에 무슨 병이 있든지 하다못해 골이 남보다 비었든지 그렇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그것도 천만에, 건강하고 출신학교도 명문으로만 뽑았다고 했다.”

 

, 이쯤 했으면 저자는 납득이 될만도 하다. 저자가 의구심을 가졌던 모든 것들이 아니라지 않는가? 그러면 순순히 인정을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어야 되는데, 저자는 달랐다. 이어지는 말을 마저 들어보자.

 

<그래도 나는 오늘까지 다른 건 다 몰라도 그 신부가 골은 좀 빈 신부려니 하고 믿고 있다. 뭔가 지독한 열등감이 없이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물량공세로 나올 수가 있겠는가.>(44)

 

나도 저자의 그런 천연덕스러운 결론에 동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딘가 골이라도 좀 비지 않고서야, 그런 일을 벌일 리가 없지 않겠는가?

 

그 여자가 고른 독처럼, 글이 잘 생겼다.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24)

 

무엇을 설명하는 문장일까?

그 대상은 뜻밖에도 항아리, 독이다.

 

이야기를 들어보자.

<지난가을이던가 시장엘 가는데 앞집 부인이 옹기점에서 항아리를 고르다가 나에게 도움을 청해왔다. 어느 것이 잘생겼나 좀 봐달라는 거였다.>

 

그런 앞집 부인의 청에 저자는 이런 마음이었다 한다.

<이목구비가 달린 것도 아닌, 기껏 배만 불룩하면 고만인 항아리가 잘 생겼으면 얼마나 잘 생겼고 못생겼으면 얼마나 못생겼겠는가. 나는 별로 달갑잖아 하면서 마지못해 항아리를 몇 개 기웃거려 봤다.> (23)

 

그런데 그런 저자의 자세, 태도와는 다르게 그 부인은 열성이었다. 어떻게? 저자는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심각한 얼굴로 첩첩이 쌓인 독과 항아리 사이를 누비고 다니며 고개를 갸우뚱, 눈을 가느스름히 떴다 크게 떴다, 가까이에서 봤다가 멀리 물러나서 봤다가, 손으로 어루만져봤다가 좀처럼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23-24)

 

이윽고 독을 고르고 난후 그 부인의 지른 환호성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24)

 

 

 

그런 부인의 자세에 저자는 드디어 설득이 된다.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그런 깨달음은 이제 더 넓은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서 저자는 독을 고르는 법을 말하는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닌 것이, 그 다음에 귀부인들의 미술 작품 고르는 것을 보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귀부인들이 값비싼 그림을 보고 사들일 때 과연 B 부인이 옹기전의 독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독을 고르기 위하여 치른 것만큼이나 진지하게 보고 찾는 과정을 거쳤을는지, 또 그 부인이 오래 보고 찾은 끝에 드디어 소망하던 아름다운 독과 만났을 때만큼의 순수한 기쁨이나마 맛보았을는지.> (25)

 

그런 저자의 말이 지금 이 시점에, 과정을 생략하고, 무조건 단박을 외치는 이 세상 풍조에 얼마나 귀한지, 이 책을 통하여 새삼 느껴보게 된다.

 

그래서 이 책 속에 들어있는 모든 글들이, 모든 문장들이 그 부인이 말한 것처럼, “이것 보세요. 어때요? 잘 생겼죠. 무던하고, 후덕스럽고, 의젓하고. 미끈하고..”라는 감탄, 절로 나온다.

 

노자의 숨결, 글에 담겨있다. 

 

무릇 글을 쓰다보면, 철학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자명한 이치! 특히 저자의 생을 돌아볼 때에 그런 철학의 경지에 도달한 것은 모두 알고 있는 터, 그래서 작가의 글을 읽다가 문득 노자의 숨결을 느꼈다.

 

흔히 말하는 인덕이라는 것도 사람의 허한 부분, 즉 이웃을 들어앉히고 포용할 수 있게 비워놓은 자리가 있음을 일컬음이 아닐까요? 꽉 찼다는 것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음을 의미하고 절망을 의미합니다.”(82)

 

노자의 도덕경 제11장에서 수레바퀴와 그릇, 그리고 방이 등장한다.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빔의 철학을 설파하기 위해서이다. 수레바퀴의 바퀴살이 없는 곳의 빔, 그릇의 안쪽의 빔, 그리고 벽을 뚫어 만든 방문의 빔이 있음으로 해서 수레와 그릇과 방의 쓰임새가 생긴다. 그러니 노자의 견해에 의하면 수레바퀴나 방이나 그릇 모두, 그 안이 비어있기 때문에 쓰임을 받는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그릇이 이미 채워졌으면 이제 다른 음식을 담을 수 없지 않은가?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그러므로 유형이 있는 것들이 이롭게 쓰이는 것은 그 공허한 빈 공간이 활용되기 때문이다.

 

사람도 마찬가지, '자기'로 꽉 차있으면 그 누가 그 안에 들어설 수 있겠는가? 인덕, 그게 바로 자기를 비워 남을 품는 그릇이다. 저자는 그런 이치를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더하여 그렇지 못하니 절망이라고까지 하지 않는가?

 

이런 글, 우리가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쁨이다. 이 책의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씌여진 글이 없으니, 이 시대에 그런 외침, 울림, 그리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지혜까지 묶어 가르칠 수 있는 선생 한 분이 계시지 않게 된 것이 못내 아쉽다. 이 책 읽으면서 그 마음 더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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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
고영성 지음 / 스마트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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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명저(名著)와 명저, 그 사이에서

 

공자, 말씀하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니라.(朝聞道 夕死可矣)"

 

공자처럼,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어떤 책을 읽다가, 그 책에서 나를 깨우쳐주는 것 - 즉 도()- 을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해서 공자의 그 말을 한번쯤 해볼 수 있는 그런 책을 만나고 싶어하는 것은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지는 자그마한 바람이 아닐까?

 

평소에 책을 대할 때마다 그런 바람을 지니고 읽었다. 어떤 책은 그러한 나의 바람을 채워주는 것도 있었고, 어떤 경우에서는 그런 바람을 잔인하게 배반하는 아픔을 맛보기도 하였다.

 

그런데 그런 소원을 생각지도 않았다가, 그러니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생각으로 책을 들었다가, 무릎을 치면서 공자의 그 말을 외치게 된 책이 있다.

바로 고영성이 지은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이다.

 

저자는 비즈니스에 관련된 책 10권을 읽어가면서, 그 저서에서 정수를 뽑아 독자들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나는 공자가 말한 그 도를 얻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저자가 언급한 총 10 권의 책 중에서 내가 읽었던 책은 다음의 세권이었다.

찰스 두히그, <습관의 힘>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로버트 치알디니 <설득의 심리학>

 

그러니 나머지 7권의 책은 나에게는 생경한 것들이었다. 어찌보면 내 관심 밖의 책들이었고 그런 책 속에서 (나에게) 어떤 좋은 것이 있으리요, 하는 회의로 읽기를 기피하던 분야의 책들이었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는 내 상황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발견(?) 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저자가 <머리말>에서 말한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비즈니스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6)다고 말한 것에 딱 부합하는 일이었다. 내가 찾고자 하는 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 포착이 되었다.

 

무조건 긍정이 좋은 것은 아니다. - ‘적절한 비관성

 

긍정의 힘이라 인구에 회자되는 그 캐치 프레이즈, 마치 그 것이 만사를 해결해 줄 것 같은 그 짜증스러운 범람, 그래서 긍정의 줄에 서지 못하면 시대에 낙오되는 듯한 공세. 이제 염증을 느낄만도 한데 아직도 사람들은 그저 긍정을 외친다. 그야말로 무한긍정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긍정을 대하는 태도가 약간 다르다.

다니엘 핑크의 <파는 것이 인간이다>에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세일즈 할 때에 가장 두려운 것은 거절당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게 거절을 당하면 심리적 타격을 입게 되는데, 어린아이의 경우에는 거절을 계속 당하게 되면 뇌가 손상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거절을 당했을 때의 손상을 회복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 그런 자질이 바로 회복력이다.

 

그런 회복력 요소의 하나로 긍정성을 꼽는데, 긍정성은 바로 전염이 되기 때문이다. 긍정성은 전염되기 때문에 세일즈에서 구매자는 덜 적대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며 결국은 양측에게 득이 될 수 있는 합의를 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항상 듣던 말이다. 그래서 세일즈맨으로 하여금 거절당하더라도, 빠른 시간에 회복하여 다시 한번 세일즈에 임하라는 것이다.

 

그 다음에 저자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무한도전의 노홍철처럼 무한긍정은 오히려 행복도를 낮춘다고 한다. 사회과학자 마르시알 로사다의 집단행동 연구에 의하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이 31 일 때 행복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로사다 교수는 이를 적절한 비관성이라 한다.>(210)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이 언제나 어느 때나 항상 긍정적일 수만은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친다. 한쪽으로 그저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 따라가는 것이다. 긍정이 좋다니까, 무조건 긍정이다. 무한긍정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글을 이어간다.

<부정적인 감정은 지난 행동을 뒤돌아보고 현재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개선의 실마리를 제공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인다. 무한긍정에 빠지기 보다 적절한 비관성을 겸비한 긍정성으로 세일즈에 임할 때, 실제 실적도 높아질뿐만 아니라 거절의 거친 파도를 즐기며 서핑할 수 있는 회복력을 갖출 수 있는 것이다.>(210)

 

그러한 적절함을 찾아낸 저자가 고맙다. 모두다 예스라고 할 때에 누군가는 거기에 대하여 한번쯤 살펴보자고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이러한 적절한 비관성이 세일즈를 포함한 비즈니스의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도, 또한 우리 사회의 모든 면에서 살아있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이 말, 공자가 말한 득도의 대상이니, 내가 기뻐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굴절적응(exaptation)

 

읽는 중에 재미있는 내용을 발견해서 옮긴다

 

<스티븐 제이 굴드와 엘리자베스 브르바에 의하면, 굴절적응(exaptation)이란 하나의 유기체가 특정용도에 적합한 한가지 특성을 발전시키고 이후에 그 특성이 전혀 다른 기능으로 이용되는 것을 말하는데 고전적인 사례가 새의 깃털이다. 처음에는 추운날씨에서 몸을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 하늘을 나는 용도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정말 멋진 비유로 굴절적응을 설명했다.

어두운 방을 밝히기 위해 성냥을 켰는데, 문을 열자 방안에 통나무 장작이 쌓여있고 벽난로가 있다면 성냥은 전혀 다른 용도를 갖게 된다. 하나의 맥락에서는 어둠을 밝히는 도구가 다른 맥락에서는 몸을 따뜻하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굴절적응의 본질이다.”>(152)

 

이러한 굴절적응의 예가 비단 조류의 날개만이 아니다. 눈을 돌려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이 세계 문명속에 얼마나 많은 사례들이 있는지! 그래서 아서 쾨슬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과학적 사고의 역사에서 모든 결정적인 사건들은 서로 다른 분야들과의 정신적 교차 수정의 관점에서 묘사할 수 있다.”(153)

 

우리가 접하고 있는 사례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만들었다는 패스트스킨 수영복과 우리가 매일 접하고 있는 WWW을 들 수 있으니, 굴절적응은 비단 진화론의 이론으로서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옆에까지 와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해주는 이론을 만났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명저와 명저, 그 사이에서

 

저자는 명저(名著)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천하를 다 얻은 것처럼 뿌듯하고 설레였던 책>, <극심한 굶주림 속에서도 마지막까지 놓기 싫었던 책>

 

그런 명저를 10권이나 내 앞에 제시한 저자의 책은 나에게 명저로 다가온다. 왜냐면 저자가 보여준 책의 정수가 비단 비즈니스에만 국한되어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면에 적용되는 것이고, 따라서 나에게도 적용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뿌뜻하고 설레는 내용들이 가득한 책, 게다가 적용까지 가능한 책이니 명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더하여 이 책에서 소개된 10권의 책중,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소개된 것이 없다. 내가 읽은 것은 비록 세권에 불과하지만, 이 책을 읽었으니, 이제 소개된 나머지 책들도 나와 인연을 맺어 나갈 것이라는 기대, 하게 만든 이 책은 분명 명저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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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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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 역사의 자리에 대한 통찰

 

이 책은 책의 제목 그대로, ‘그날을 조명해 보는 책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날이 가지는 의미를 천착해서 우리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과 만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를 교과서적인 접근 방법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우리가 만일 그 당시 그날을 살았더라면 충분히 경험했을만한 경지로 독자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두 가지 갈래로 찾아 읽었다.

하나는, 지금껏 읽어왔던 역사서에서 언급되지 않아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두 번째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의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미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 그 의미를 깨달아 안 것들, 그렇게 두 갈래로 알게 되었다.

 

1.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다.

 

조선경국전과 기자조선

 

역사의 정통성은 어느 시대나, 어느 정권이나 마찬가지로 중요한 개념이다. 그러면 조선은 그러한 정통성을 어디에서 구했을까? 고려조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명나라로부터 인준을 받는 사대의 논리에서 정통성을 찾았을까?

 

여기 정도전이 마련한 조선경국전에 뜻밖의 기록이 보인다. 바로 그 정통성을 다른 데서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로부터 찾으려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단군조선이다. 정도전은 그래서 단군 조선에서, 기자조선에서 그 정통성을 찾으려 했으니, 그런 노력이 비록 명나라의 존재 때문에 가려졌지만, 그러한 사실, 잊지말자.

 

<사실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는 기자조선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이 나와요. 왜냐하면 옛날 주나라 무왕에 의해서 제후로 책봉된 기자라는 인물을 강조함으로써 '우리도 중국 못지않은 유교적 문화 도덕 문화를 가졌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한 거죠. 그래서 크게 본다면 조선이라는 국호에는 단군조선에서 보이는 혈통적인 독자성(하늘의 자손)에 대한 인식도 일부 반영됐고, 기자조선으로 상징되는 유교 문화와 도덕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함께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50-51)

 

1430, 조선 첫 국민투표 하던 날(207쪽 이하)

 

. 이런 일도 있었구나. 정통 역사서에서는 찾아보지 - 나만 그랬을까?- 못한 기록이다.

세종이 백성들의 세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애쓴 기록이다. 세금 부담제도를 개선하기 위하여 직접 백성들의 의견을 물었다니, 이런 사실을 왜 몰랐을까? 기존의 역사서를 심층적으로 읽지 못한 내 탓도 있으리라. 하여튼 이런 조사를 통하여 백성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주려한 세종의 업적을 다시 상기시키는 기록, 읽었다.

 

2. 사건 이면의 의미를 알게 되다.

 

최영 장군에 대한 평가

 

<최영 장군은 참 훌륭한 분입니다. 그 집안의 가훈이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 였던 것이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도 회자됐을 정도거든요. 문제는 당시의 정치적인 혼란 그러니까 권력자들이 권력을 함부로 휘두르고 비리가 발생하고 그런 것이 이인임과 몇몇 무장들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영 장군이 바로 그 이인임 정권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뭐랄까 개인적으로는 청렴한데 자신이 맡고 있던 역할의 사회적 의미는 좀 달랐던 거죠.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 역할, 그러니까 시대정신이 다를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16쪽)

 

태종은 무엇 때문에 왕이 되려고 했을까?

 

<태종이 왕이 된 과정을 생각해 보면, 독재자가 됐을 거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민본정치라는 측면에서는 어땠나요?>

 

우리가 묻고 싶은 것이다. 과연 태종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왕이 되려고 했을까? 무엇 때문에 그리 많은 사람을 죽이고 권력을 잡으려고 했을까? 그런 질문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답은 태종 자신의 개인적인 욕심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 해답을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내리고 있다.

 

<태종이 중앙집권, 즉 왕권을 강화하려는 궁극적인 목적은 결국 그것이 백성들에게 혜택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99)

 

3. 한 줄 평- 통찰력 있는 촌평

 

그날의 출연자들이 인물평을 해놓았는데, 정곡을 찌른 사항들이 있기에 옮겨본다.

 

'최초의 조선인''최후의 고려인'

<그후 500년을 버티는 좋은 나라로 설계된 것은 정도전의 생각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초의 조선인' 즉 정도전은 고려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생각은 고려의 틀을 벗어나 다음 왕조에 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가장 먼저 조선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 이런 의미에서 '최초의 조선인'이란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정몽주는 '최후의 고려인'인 셈이지요.> (16)

 

태종 이방원, 정도전이 그린 조선이라는 그림에 채색을 시작한 사람이다.(103)

 

양녕대군, 조선 최고의 전성기 세종시대를 연출한 최고의 조연이었다. (135)

 

4. 설득력있는 역사의 가정

 

<한번쯤 이런 생각을 해 볼만 하지 않아요? 왕권이냐 신권이냐를 두고 대립했던 이방원과 정도전이 만약 힘을 합쳤더라면 어땠을까? 이방원의 정치적 감각과 정도전의 국정 수행능력이 조화를 이루었다면 역사가 달라지지 않았을까?>(102)

 

이런 가정은 흔히들 해 보는 일이다. 그 때 만약에 누가 이랬다면? 그런 가정은 일면 무익한 것 같으나 한편으로는 유익하기도 하다. 왜냐면 그 당시의 역사를 다시 성찰해 봄으로써 앞으로의 역사 방향에 귀한 교훈을 얻을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러나 아무리 그런 유익이 있다 할지라도, 이런 가정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점검해본다는 취지에서는 여전히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 역사에 그런 가정을 하게 되는 장면들이 많이 있죠. 예를 들어 명성황후와 흥선대원군이 서로 장점을 결합했다면 우리 근대사가 좀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요. 마찬가지로 정도전의 참모로서의 능력과 이방원의 리더십이 결합됐다면 분명히 시너지 효과를 냈겠지만, 불행하게도 두 사람이 그렇게 만날 수 있는 정치공간은 마련될 수 없었습니다.>(102)

 

이게 그날의 출연자들이 우리 역사의 가정에 대해 내린 결론이다. ‘불행하게도가 결론이다, 그런 가정을 아무리 해봐도 '불행한' 역사를 되돌릴 수 없으니 불행이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어 앞으로 진행될 역사는 그런 가정이 필요없도록, 그래서 불행이라는 단어가 우리 역사에 칩입할 수 없도록 할 수는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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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 자기 홍보의 시대, 과시적 성공 문화를 거스르는 조용한 영웅들
데이비드 즈와이그 지음, 박슬라 옮김 / 민음인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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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비저블,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찬사

 

인비저블 (Invisible) 은 무엇인가?

 

먼저 이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비저블(Invisibles)'이라는 낯선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그 개념을 상세하게 설명해 놓고 있다.

 

먼저 그 자신의 경우를 이렇게 말해준다.

<당시에 나는 긴박한 마감 시한에 맞춰 하루종일 눈알이 빠지도록 기사를 꼼꼼하게 검토했지만 내 존재를 알아주는 사람을 없었다. 적어도 내가 실수를 저지르지 전까지는 말이다.>(16)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이런 의구심을 가지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을 잘할수록 칭찬과 인정을 받지만 나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내가 일을 잘할수록 나라는 존재는 더욱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익명성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일에 자부심을 느꼈고, 그것이 워낙 독특한 경험이었던 탓에 어느 순간부턴가 사실 검증 전문가와 비슷한 속성을 지닌 다른 직종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16)

 

저자의 궁금증이 고맙다!.그런 궁금증을 가지고 그는 해낸다. 인비저블이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그 것을 개념화한 것이다.

이렇게 시작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존재, 보이지 않는 존재(Invisible)라는 개념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확장된 개념으로 변한다.

 

그래서 인비저블이라는 개념을 그는 이렇게 정의한다.

- 인비저블은 고도로 숙련된 기술을 지니고 자신이 속한 조직이나 회사에서 매우 중대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

- 직업적으로 다른 길을 선택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일부러외부세계나 최종소비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직업을 선택하거나 우연한 기회에 업계에 흘러들어왔다가 계속 머무르기로 결심한 사람.

- 포상이나 찬사를 내키지 않아 하며, 심지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토록 갈망하는 친밀한 격려나 칭찬조차 바라지 않는 사람. (18)

 

인비저블 Invisible :

고도의 전문 지식과 훈련을 갖추고 조직 내에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외부세계로부터 공을 인정받기는커녕 무명으로 남는 데 만족하는 사람들. (14)

 

그래서 그는 인비저블의 공통적 요소를 다음과 같이 찾아낸다.

- 타인의 인정에 연연하지 않는 태도

- 치밀성

- 무거운 책임감

 

이 책의 장점 - 하나, 우리의 시선을 인비저블에게로

 

그런 인비저블의 개념을 우리에게 보여준 저자의 생각에 경의를 보낸다. 이런 저자의 생각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우리 사회, 또는 우리 직장을 실질적으로 지탱하고 있는 수많은 인비저블의 존재를 그냥 스쳐 지나갈뻔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우리의 시선을 인비저블에게 돌리게 한, 큰 일을 했다는 것만으로 이 책은 값어치가 있다.

 

예컨대 이런 말을 들어보자.

 

마취전문의인 조지프 멜처 박사는 수술이 끝난 후에 감사 인사와 과일 바구니를 받는 것은 외과의지만 실제로 수술실을 이끄는 것은 마취의라고 말한다. “Tv에서 외과의들이 수술을 지휘하는 것을 보면 좀 웃깁니다. 실제로 수술을 하다가 응급상황이 닥치면 제일 먼저 당황하는 건 그 사람들이거든요. 이거 괜찮은 거냐고 날 이렇게 쳐다보죠.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나서서 상황을 침착하게 정리하는 건 대부분 내 일입니다.”(114-115)

 

마취 전문의는 여러종류의 전문의사들 중에서도 특히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부류다. 그들은 환자들과 잠시 스쳐 지나갈 뿐이기 때문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도 칭찬이나 감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그들은 뭔가가 잘 못 되었을 때에만 표면 위로 등장한다. 모든 인비저블이 그렇듯, 그들이 받는 보상은 일 자체에 있다. (116)

 

우리의 생각이 표면적인 곳에만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그 사회는 과시적이고 가식적인 사회가 될 것이며 더 나아가 부실한 사회가 될 것이기에, 이 책의 관점, 인비저블에게 보내는 찬사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된다.

 

이 책의 장점 -

 

이 책은 이야기 식으로 서술하고 있기에, 가독성의 면에서 아주 뛰어난 책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과학, 심리학 이야기들이 스토리에 담겨 아주 자연스럽게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셈이다.

 

 

사족 - 책은 책을 이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고영성의 <명저, 비즈니스에 답하다>를 읽었다.

거기에 보면, 마크 트웨인이 했다는 말을 소개해 놓고 있다.

<지금부터 20년 후에는 자신이 저지른 일보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명저, 비지니스에 답하다> 174

 

그런데 이 멋진 말은 2억원이 넘는 우주 여행 안내책자에 씌여 있다한다. 즉 마크 트웨인의 말은 우주 여행을 하지 않아서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고, 선전문구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크 트웨인의 이 말은 그저 경구, 혹은 그의 재담으로만 그치는 것일까그런 의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코넬 대학,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는 사람들이 '한 일'보다 '하지 않은 일'을 더 크게 후회한다는 사실을 입증하여 현대 심리학에 크게 기여했다.> (인비저블, 128쪽)

 

그러니 마크 트웨인이 그저 재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 학문적 근거가 있는 셈이다. 선견지명이라고 할까? 또는 뛰어난 통찰력!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 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도 보인다.

 

<1994년 미국의 심리학자 길로비치와 메드벡이 대대적으로 실시한 후회의 심리학’(The Experience of Regret) 연구에서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사람이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 가장 큰 후회를 일으키는 것은 그들이 하지 않은 일들이다. …… 처음에는 어떤 행동이 문제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가장 큰 후회를 남기는 것은 바로 하지 않은 행동이다.”>

 

 

 

 

이 책의 장점 - , 더 깊은 곳으로의 안내

 

 

결론적으로, 이 책 데이비드 즈와이그의 <인비저블 Invisible>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생각거리'를 잔뜩 품고 있는 책이 분명하다. 겸하여 몇가지 과제도 제시하는 책이다.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과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다룬 <미움받을 용기>를 읽어볼 것을 요청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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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징비록 - 지옥 같은 7년 전쟁, 그 참회의 기록
조정우 지음 / 세시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춘산에만 불이 나나? 내 마음에도 불이 난다

 

 

징비록의 징비(懲毖)를 이 시대에 새겨야 한다.

 

이 소설의 제목은 <징비록>이다. 원래 <징비록>이라 함은 조선 선조 때에 왜란이 끝난 후에 유성룡이 지은 참회서이다. 저자는 그 이름에서 따와 소설 제목을 정한 것이다.

 

'징비'란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가다라는 뜻으로, <시경(詩經)>에 나오는 "여기징이비후환(予其懲而毖後患·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하여 후에 환란이 없도록 삼간다)"는 문장에서 따왔다.

류성룡은 <징비록> 서문에서 지난날을 생각할 때마다 황송하고 부끄러워 몸 둘 곳을 모르겠다하면서, 다시는 임진왜란 같은 일을 우리 민족이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징비록을 기록했다.

 

이 소설의 저자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소설을 그저 재미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독자들에게 나라를 한번 생각해 보라는, 그래서 역사에 다시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썼을 것이다.

 

나라 국록을 먹는 자 - ‘그들에게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런 저자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임진왜란의 경과들을 저자를 따라가며 새겨보았다.

 

<왜적들이 우리나라가 경계하지 않은 틈을 타서 대군을 일으켜 침입하였건만, 병권을 거머쥔 장수는 싸울 생각을 아니하였고, 군수들은 고을을 내팽개치고 도망쳐 버렸다.>( 149쪽)

 

고경명의 격문중에서 인용된 것이다. 나라를 책임진 사람들은 아무도 자기들의 실수에 대해 책임지지 않았다, 그저 자기 목숨, 자기 가족의 안위만 생각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런 가운데 애꿎게 희생된 것은 평소에 자기 목소리 하나 변변히 내지 못하던 백성들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나라가 위란지기에 처했는데도 자기의 체면을 위하여 공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썩어빠진 무리들이 오히려 힘을 주어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핍박한다. 예컨대 사적인 감정을 가지고 곽재우 장군을 모함하던, 경상감사 김수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101)

 

그들에게 나라는 중요하지 않다. 당장 자기 체면이 중요하다. 그래서 자기 채면이 깎이면 이에 대해 앙심을 품고 두고 두고 해코지를 한다. ‘그들에게 나라는 없다.’

그래서 그들이 오히려 이적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그럼 장수들을 어땠는가?

 

<! 내가 사람을 잘 못 보았구나! 신립 장군이 그리도 병법에 어두운 사람일 줄이야!> (74)

신립에 대한 유성룡의 탄식이다.

 

<! 대장께서는 만고의 충신이시나 병법의 이치는 잘 모르시는구나!> (159)

고경명에 대한 유팽로의 탄식이다.

 

그 반면, 병법을 알고 전술을 아는 장수들에게는 모진 핍박이 뒤따른다.

김덕령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그는 억울한 죽음을 앞에 두고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긴다.

 

<춘산(春山)에 불이 나니 못다 핀 꽃 다 붙는다.

저 뫼 저 불은 끌 물이나 있거니와

이 몸의 내 없는 불이 나니 끌 물 없어 하노라.>

 

그런데 그의 죽음으로만 끝이 나는게 아니다. 임진왜란을 초래하여 조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은 혼군 선조는 질투인지, 장난인지 장수 목숨을 파리 목숨같이 여겨 해치고, 그들과 관련된 장수들조차 가만히 두려하지 않는다. 아예 씨를 말리려 작정한 사람같다.

 

그래서 김덕령의 친구이자 부장인 최담령이 김덕령의 무덤에 찾아와 한 말이 가슴에 남는다.

죽기만 하면 다행이겠으나 역적으로 몰린다면 내 가문까지 위험해지니 어찌 할 도리가 없네.”(262)

 

더욱더 내 심사를 불편하게 한 말이 말미에 등장하다.

김덕령을 추모하기 위하여 그의 무덤에 모인, 이인경, 곽재우, 최담령이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 세 사람이 한자리에 너무 오래 모여 있으면 누군가 우리를 모함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을 듯하오.”(291)

 

역사는 되풀이된다, 희극적으로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정확하게는 이런 문장이다.

헤겔은 그의 저서 어디선가 역사상의 중요한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는 걸 잊었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그럼, 그의 말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 살펴보자.

<선조가 한양을 버리고, 백성을 버리고 제 살길만 찾아 도망치다.>(78)

<이승만이 서울을 버리고, 국민을 버리고 제 살길만 찾아 도망치다.>

 

그러니 맞다. 선조때는 비극으로, 그 다음에도 교훈을 얻지 못한 역사는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두 사건의 간격이 몇 년인가? 선조는 1592년에 그랬고, 이승만은 1950년이니 그 간격이 약 360, 물론 이것은 단순히 이 책에 등장하는 선조의 도주만 비교한 것이다. 그런 반복이 우리나라에서 몇 번이나 일어났을까?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역사에서 전혀 교훈을 얻으려 하지 않는 민족 아닌가?

 

안타까운 일은 이 책에 서술된 전투장면에서도 같은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신더미 옆에 죽은 척하고 누워있던 개야무라 로쿠스케가 쏜 총탄이 황진의 이마에 명중한 것이다. .....지난 해 김시민이 순찰중에 시신 더미 옆에서 죽은 척하고 있던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던 것과 똑같은 수법에 당한 것이다.> (228)

 

진주성 방어를 책임진 장수 황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던가? 전에 김시민이 그런 식으로 당했다면, 또 다시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누구 하나 옆에서 진언하는 장수가 없었다는 말인가? ‘장군, 지난 번 김시민 장군도 순시 중에 죽은 척 하고 있던 왜군의 흉탄에 전사하셨으니 이 점 유의하소서라는 말 한마디, 하는 장수가 없었다는 말인가?

 

이런 의문에 대해서는 우리 시대가 답해야 한다. 이 책의 의미는 바로 그런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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