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민해도
괜찮아
이
책은?
책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예민해도
괜찮아』라는
말은 무언가 궁금증을 자아낸다.
무엇에 예민하다는
것인지?
그러나
그 다음 부제가 그런 궁금증에 속 시원한 대답을 해주고 있다.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은
누구일까?
누군가로부터 불쾌한 행동을
당하고,
막말을
듣고서 그 반응으로 분노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일단 ‘당신’은
여성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남성도 그런 행동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일단,
이
책의 ‘당신’은
여성이다.
불쾌한 터치를 당하고 막말을 듣는
경우,
반응은
두가지이다.
그냥
넘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로 분노하는 사람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 너무 예민하다고 핀잔을 듣거나,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 하는 자기검열에 봉착하여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 저자는 말한다,
예민해도
괜찮다고.
그럼
무엇이,
어째서
괜찮다는 말인가?
그런
의문에 이 책은 차분하게 대답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저자에
주목한다.
저자 이은의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저자
자신이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했던
이력이 있다.
그러기에
이 책은 제 3자의
방관자적 시선이 아니다.
제
3자의
시선으로 '그 정도는 괜찮아' 하며 위로를 건네는 그런 내용이 아니다.
저자가
몸소 당하고 겪고 힘들어 하며 지내온 세월들이 무게가 여기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같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연민과 격려가 담겨있다.
저자는 삼성에 근무하면서 불쾌한
터치를 당하고 예민하게 반응한 경험이 있다,
그래서
투쟁했다.
결국은
그 투쟁의 장에서 승리했다.
그리고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고,
지금은
그런 싸움을 하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일에 직접 나서고 있다.
그러니
이 책은 그러한 예민함의 결과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
어려움을 통하여 여성의 자리를 재정립하려는 저자의 예민한 몸부림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은 내용은 무겁지만 잘 읽힌다
이 책의
주제,
만만치
않다.
생각해
볼 거리가 의외로 많다.
성폭행,
성추행,
그런
실질적인 피해부터 시작해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
결혼의
문제까지,
여성의
측면에서 생각해 볼 묵직한 주제들을 많이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술술
읽힌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도 저자의 문장력이 가장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저자가 법률 전문가이어서가
아니라,
글의
짜임새를 설득력 있게 만들어가는 저자의 탁월한 문장력 때문이다.
전문가연
하는 현학적인 단어들,
현학적으로
돌리고 꾸며대 결국은 독자들이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문장이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는 문외한에게 어려운 일을 쉽게 설명해주는 식의 설득력을 보여주고 있다.
조금만 먹물을 먹었다하면 어려운
용어,
현학적인
문장으로 독자들에게 젠 체 하려는 필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서
읽어도 읽어도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애꿎은 자기의 가방끈만 탓하게 만드는 책이 어디 한 둘 인가?
그런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시종일관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친절한
글솜씨로 독자들을 이해와 공감의 자리로 잘 인도하고 있다.
누가 예민해야
하는가?
이 책에서 말하는
‘예민하다’의
주체는 여성이다.
직장에서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분노해야 함에도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응원을 보낸다.
“예민해도
괜찮아”라고.
혹시나 내가 그러한 터치와 말에
너무 민감해서,
예민해서
그것을 불쾌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나만
혼자 그것을 막말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남들은
다 그 정도는 허용하는데,
나만
유달리 예민하게 그 것을 불쾌한 터치라고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이렇게
자기 생각을 곱씹으며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그래서 이 책은 그들을 위한 ‘따뜻한
직설’이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나니,
남성인
나는 그러한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예민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다른 남성이 어떤 여성에게 들이대는 그러한 터치와 말이 막말로,
또는
불쾌한 터치로 여긴 적이 있었던가? 그러한 상황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적이 있는가 하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다시 말해서 그러한 여성은 우리
남성들의 ‘어머니와
아내와 누이이며 딸들’인데,
여성들이
그러한 대우를 받으며 불쾌하게 여기며 막말을 들은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을 나 자신이 예민하게 받아 들였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말하는
‘그
정도는 예민해도 괜찮아’는
말은 우리 남성들에게는 그 정도로 예민하게 그들의 아픔을 돌아보지 못했는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로 다가와야 한다.
그래서 정작 예민해야 할 사람은
여성이 아니라,
남성들이다.
여성들이
불쾌한 터치를 당하지 않고,
막말
듣지 않으며 더불어 같이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며 살 수 있게,
남성들은
예민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