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읽는
밤
이
책은?
책의 제목에
‘철학’이라는
말이 들어간 책은 우선 겁이 난다.
철학이라면
의례히 어렵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물론
요즘에는 조금씩 면역이 되어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긴 마찬가지다.
나 같은 철학의 문외한들은
철학,
하면
먼저 골치 아픈 이론을 잔뜩 풀어내고 있는 그러한 책을 떠올린다.
그래서
읽어도 뭐가 뭔지 모르고 그저 어렵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그저 학창시절에 시험 대비용으로
철학의 조류와 철학자를 맞춰보고,
또
그들이 남겼다는 유명한 말 몇 마디로 철학을 대했다는 것,
역시
솔직한 고백이다.
그럼 이 책은
어떨까?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조심조심
읽어가기 시작했는데,
일단
철학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고 대신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야의 인물이 자주 등장해서 일단 읽는데 부담감이 없어졌다.
이 책의
정체는?
철학책이라면서,
철학자를
거론하지 않는 이 책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이 책의 성격을 먼저
짚어보기로 했다.
이 책은 저자로 표기된 장샤오형이란
분의 저작이 아니다,라고
생각했었다
저자가 말한 이 말이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각 유명 학자와 교수들에게 대표적인 의미를 갖는 글과 발언을 위주로 엄선해 실었다.
간단명료하고
쉽게 이해되는 글과 생동감 넘치는 인생의 실례를 통해 그들이 이해한 인생의 진리를 한 권의 책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북경대 사람들의 발언
중 철학적 의미가 담긴 최고의 에센스만을 간추려,
그
유구한 역사의 지혜를 조금이나마 엿보고자 한다.>(8쪽)
그러니 이 책은 저자로 표기된
장샤오형이 북경대 출신의 여러 학자들 글 중 에센스만 모아 낸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글을 썼는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는데,
그게
문제다.
이
책에는 12개의
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고,
각
장마다 다섯 개의 글이 수록되어 있으니,
총
60개의
글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수록된 60개의
글에,
필자의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
대체
그 60개의
글은 누가 쓴 것일까?
그
60개의
글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누군가의
글을 짧게 인용해 놓고 있는데,
그
이름이 그 글의 필자가 아닐까?
그런
생각은 이내 잘못되었음이 밝혀졌다.
그
글 속에 그 인용된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자기가
글을 쓰면서 자기 이름을 실명으로 써 넣지는 않는다. 그러니 인용된 글을 쓴 사람이
그
글의 필자가 아닌 것이다.
그럼 누가 그 글을 쓴 것일까?
결론은 이렇다.
이 책의 저자 장샤오형이 북경대
출신 여러 학자들의 글을 소개하는데,
그
사람들의 글 중에서 조금씩 –
짧은
것은 한 두 문장,
길어도
한 문단을 넘지 않는다 –
인용해
놓은 다음에,
그
인용문을 토대로 하여 저자 나름의 생각을 써놓은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 실린
60편의
글은 분명 이 책의 저자인 장샤오형이 썼고,
저자는
그 (본인의)
글에
북경대 출신 학자들의 글을 소개하면서,
그
학자들이 이해한 ‘인생의
진리를 한권의 책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그렇게 이 책의 정체를 분명히 하고
읽으니,
각
글마다 앞에 인용한 다른 학자의 글과 저자의 글이 서로 연결이 되며,
그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어렵지
않다,
고답적인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현실에서
누구나 겪어보았을 생활 밀착형 이야기가 등장한다.
<포부가
있어야 인생이 더 알차다.>(232쪽)의
경우를 살펴보자.
싱가폴의 어묵완자를 파는 청년
이야기로 글은 시작된다.
그가
길거리에서 어묵을 팔면서도 인생 포부를 잊지 않았고,
결국은
싱가폴 최대의 어묵완자 제조상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그 이야기에 덧붙여 ‘포부는
삶의 추진력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그러니
그의 말에 누가 이의를 달겠는가?
그런
사례의 주인공이 보여준 행동 하나가 하늘을 바라보다가 길에서 넘어지는 철학자의 백 마디 말보다 더 그럴듯하지 않는가?
무릇
철학은 책상에서 만들기 보다는 그렇게 몸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책은 그렇게 독자들에게 몸으로 만들어진 철학을 ‘읽도록’
해준다.
그래서
‘철학
읽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