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
2
이
책은?
이 책은 저자 신정근이
2011년에
펴낸 『마흔,
논어를
읽어야 할 시간』의
후속편이다.
이
책은 전작과는 달리 『논어』
속
네 글자에 주목했다.
『논어』의
구절에서 그 뜻이 농축된 네 글자를 뽑아내어 『논어』의
핵심을 살펴보는 가운데,
『논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논어』를 새롭게
보다.
지금껏
『논어』를
읽어오고 있었다.
번역본도
몇 개 다른 것으로,
또한
『논어』를
기초로 하여 쓴 해설서와 다른 저작물도 많이 읽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
16 –17쪽을
읽다가 『논어』의
새로운 경지를 발견했다.
<첫
장 구절과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을 살피면 『논어』를
읽을 수 있는 지도를 갖춘 셈이라고 할 수 있다.>
(16쪽)
그러고보니,
지금껏
논어를 공자의 다양한 행적과 어록이 편집된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그
안에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그러니까
요약해서 말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 –
이
들어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신정근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장 첫
구절이다.
學而時習知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논어』의
마지막 장 끝 구절은 不知命
無以爲君子也(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
이다.
그래서 이 두 구절이 『논어』를
싸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논어』의
모든 구절들은 다음의 말을 기본으로 하여 이해가 되어야 한다.
<첫
구절은 사람에게 ‘지금의
나’와
다른 나를 꿈꾸기 위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길을 찾으려는 격려를 하고 있고,
마지막
장 마지막 구절은 ‘지금의
나’와
다른 ‘미래의
나’를
어디까지 추구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직시하라고 말하고 있다.>(18
쪽)
이렇게 저자의 인도를 따라
『논어』를
읽으니,
문자의
그 속내가 이해가 되고,
따라서
지금까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구절들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논어를 대하는 자세
이 책을 읽으면서 『논어』를
읽어오면서 내가 무슨 마음으로 읽었는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읽었는가?
그저
고전중의 하나니까,
『논어』를
알아야 다른 고전들도 이해가 될 듯 하니까.
뭐
그런 의도를 가지고 읽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말한 것들이 새삼 나의 그런 자세를 가다듬게 해 주었다.
이런 말들이 그런 말이다.
<글자를
보면 싸우려 하지 않고 공자에게 대들지 않고 그와 이야기 나누면서 그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됐다.>(11쪽)
바로
‘싸우려
하지 않고,
대들지
않고 마치 공자와 이야기 나누는 그런 자세’가
지향해야 할 자세가 아닌가 생각되었다.
수정해야 할 부분들
<훗날
맹자는 .....역성혁명을
주장했다.
이
주장은 정몽주가 조선을 건국하면서 활용하기도 했다.>
(53쪽)
이 문장에서 정몽주를 거론한 것은
잘 못되었다.
‘정도전’이
아닐까?
다시 이
책은?
『논어』를
다룬 책들은 무수히 많고 많지만,
이
책처럼 편안하게 『논어』를
읽고,
공자의
생각을 차분히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은 드물지 않나 싶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논어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만든 것뿐만 아니라,
『논어』
속을
차분하게 거닐면서 생각도 하게 만들어주니, 그게 바로 學而時習知
不亦說乎?
(배우고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의 경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