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악마다
이
책은?
이 책은
추리소설,
범죄소설로
분류할 수 있겠다.
전 세계를 무대로 테러리스트를 쫓는
스파이들의 활약과 액션을 그린 첩보 스릴러 [블랙]으로
제1회
황금펜영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한 작가 안창근의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이 소설은 홍대 앞에서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
플래시몹이
펼쳐지는 가운데 한 여성이 수차례 칼에 찔려 살해되는 것으로 시작한다.
스스로를
‘유령’이라고
명명한 연쇄살인범은 예고한 대로 세 번째 살인을 저지른 뒤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유유히 사라진다.
무능한
경찰에 대한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경찰은 모험에 가까운 비밀 작전을 개시하는데......(줄거리는
책의 소개글에서 인용).
이 책의
전개는?
이 소설의 주인공은 경찰인
노희진이다.
그리고 이제는 범죄자가 되어
교도소에 수감중인 전직 경찰,
강민수.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 유령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김해영,
범인이다.
이 소설은
중반까지,
조금
지루하게 전개된다.
프로파일러와
프로파일링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려는 듯,
저자는
다양한 이야기를 쏟아낸다.
물론
사건 전개와 관련해서이지만,
소설
전체로 보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게 진행되다가 독자를 바짝
긴장으로 몰고 가는 부분은 강민수와 노희진이 해영의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그 장면에서부터이다.
독자들도
거기에서부터 뭔가 손에 잡히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노희진이 해영을 미행하는 장면에서는 사건이 비로소 시작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그리고
희진은 납치가 되고,
그때부터
사건은 빠르게 진행이 된다.
그러니,
이런
범죄추리소설은 전개가 빨라야 되는데,
이
소설은 말 그대로 발동이 늦게 걸린 편이다.
그래도
후반부에 가서 보여주는 전개 속도는 초반부에서 늦게 가던 것을 보충하고도 남으니 다행이다.
이 소설 이해를 위해서 이 책들을 읽어야
이
책,
어떻게
보면 『양의
침묵』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수시로 인용되는 『오페라의
유령』.
이
책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두 책을 미리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이 책은
고발한다.
김해영,
그는
사회의 피해자다.
어머니가
강간당해 임신했고,
그로
인해 세상에 나온 인물이 바로 유령,
김해영이다.
강간자의
자식을 낳은 어머니는 그에게 정을 주지 않았다.
또한
사회로부터도 따뜻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게
그를 살인자로 만들어간 것이다.
그런데 실상 그것은 표면적 문제에
불과했다.
그는
가족내 성폭행으로 인해 세상에 나온 것.
그의
외삼촌이 동생인 그의 어머니를 범해서 아이를 낳게 한 것이다.
그것을 알게 된 김해영은 그러한
문제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범죄를 방편으로 삼아 그런 문제를 폭로하게 된다.
따라서
이 소설은 범죄를 겉에 두르고 있지만,
실상은
그러한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사회 고발 소설이다.
<녀석은
단지 가정 내 성폭력 때문에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381쪽)
해영은 마지막 단죄
–
자기
딸을 범했던 어떤 아버지를 –를
단죄하는 자리에 찾아온 기자들에게 외친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내용을 여과없이 전부 다 방송에 내보내라,
그러면
더 이상 폭탄을 터트리지 않겠다."
(396쪽)
그렇게 문제제기를 한
것이다.
그래서 위로가 필요한 세상
연쇄살인자로 알고 김해영을 쫒던
강민수는 나중에야 김해영의 정체를 알게 된다.
그가
살인이라는 방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이해하고 비로소 깨닫는다.
‘상처받은
녀석이 진정으로 원했던 건 따뜻한 위로였다’
(383쪽)는
것을.
과연 사람이
악마일까?
이 소설의 제목은
『사람이
악마다』
이다.
그래서
악마 같은 사람이 등장한다.
맨
처음에는 살인을 즐기는 것 같아 보이는 김해영이 악마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상처받은 사람이었고,
그
상처 때문에 같은 상처를 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려 했다는 것을 안 순간부터 그는 악마가 되면 안되는 것이었다.
희생자인
그가 어찌 악마가 될 수 있겠는가?
그러면
이 소설의 제목은 바꿔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의문도
잠시,
정작
악마는 그를 그런 자리로 몰아넣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희생자들이 그런 악마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에 이르러서는,
사람이
여전히 악마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사람들을 악마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이 소설은
외친다.
사람이
악마다.
그것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