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세운 집 -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이어령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평점 :
품절


 

언어로 세운 집안으로 걸어들어가기

 

이 책, <언어로 세운 집>은 이어령 교수가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이다.

 

다시 깨어나는 시들

 

그 시들은 이어령에 의해 다시 깨어난.

다시 깨어난다는 말은 무슨 말인가?

 

시를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니 요즈음 시를 읽는 기준은 희한하게도, 학교에서 시험대비용으로 가르치는 교과서(?)에서 정해진다.

그 교과서(혹은 참고서)에서 풀이한 시 내용이 정설로 굳혀진다.

 

시 속에서 정답이 있다는 식으로 시어들을 퀴즈 푸는 것처럼 풀어낸다,

 

그래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시에서 안정을 추구하려는 세력은 <파초>가 정치시인가, 연시인가 모범답안을 빨리 써달라고 할 것이다.>(237)

 

그래서 그들이 원하는 모범답안을 써야만 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시가 그런 것인가?

이런 예를 들어보자.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 만해의 <님의 침묵>은 어떤 시인가?

 

만해를 모르는 외국의 문학 독자가 아무 선입견없이 님의 침묵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틀림없이 아름다운 연시라고 생각할 것이다. (117)

 

그러나 만해가 불교의 승려이며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라는 것을 아는 우리 한국사람들은 <님의 침묵>을 연시로 읽는 것이 아니다.

 

수능 시험에서 요구하는 정답은?

<그 결과로 님은 님이 아니라 조국을 가리킨 것이, 침묵은 이별이 아니라 그 조국을 잃은 식민지 상황을 의미한 것이라는 모범답안을 썼다. 그래서 아 님은 갔습니다로 시작되는 님의 침묵은 기미독립운동의 좌절을 노래한 삼일절 노래가 되어버린다.>(117)

 

그러니까 님을 어느 한정된 대상에 국한시키려 하는 태도는 한국의 전통적인 말 뜻은 물론 만해의 그 정의에서도 어긋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119)

 

그래서 저자는 우리에게 수능시험의 모범답안으로 읽혀지는 시들을 다시 불러내,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고 있다.

 

시를 읽는데 선입견을 버려라

 

그래서 시를 읽을 때에 이미 익숙한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김동환의 <파초>를 이어령의 시각으로 읽어보자.

 

지금껏 우리는 그 파초망국의 설움을 표시하는 시어로 읽어왔다.

그렇게 읽으면 어떤 일이 생기느냐?

 

<이렇게 시를 구호로 고쳐주면 불투명했던 의미들이 단순명료하게 된다.>(231)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대로, 시를 총체적으로 읽으면 이제 밤이 차다이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앞으로 올 겨울을 예고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껏 읽어왔던 것처럼, ‘이 시는 일제의 식민지 상황을 노래한 시다라는 말이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제 겨울이 오는데,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따뜻한 계절이었다는 말이냐?

그런 질문에 대답할 말을 잊게 만든다.

 

따라서, 이렇게 이어령의 시각으로 이 시를 읽어보면, <파초>는 일제 식민지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그런 한 가지 의미로만 읽으려고 할 때 우리는 시의 많은 부분을 제거하거나 눈감아버려야만 된다....> (233)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

 

이런 시도를 통해 저자가 의도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구절에서 발견된다.

 

<시는 정답을 감추어 놓은 퀴즈 문제가 아니다. 차라리 침을 놓듯이 시 전체의 신경망 그리고 상호 유기적인 상관성에서 시적 언어의 혈을 찾는 작업이라고 하는 편이 옳다.> (147)

 

<일단 시가 태어나게 되면 그 언어들은 그것을 낳은 시인의 의도와 관계없이 자기 자체의 이미지로 홀로서기를 한다.> (176)

 

다시 말하면, 시어를 문제집의 객관식 답변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님이 무엇을 가리킨 것인지, 마돈나가 누구인지 시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을 한마디 말로 풀이해달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산문적 언어로 뚜렷하게 기술될 수 있는 것이라면 왜 그렇게 시인 자신이 애타게 불렀겠는가?> (247)

 

<그러나 시에서 일상의 논리에 길들여진 언어가 해체되는 그 거북스럽고 불안한 떫은 맛을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단지 먼 남국의 파초가 밀실의 머리맡으로 다가오는 그 경이로운 시의 축지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237)

 

선입견 없이 시를 읽으면서, 시인의 그 애타게 불렀을 그 님을 우리도 같이 불러보면서, 새로운 시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어떨까?

시는 언어로 세운 집이니까, 겉에서만 놀지 말고 그 속으로 성큼 걸어들어가 그 집의 참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것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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