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10
서유미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틈과 틈 사이에서 

 

틈이 무엇일까?

틈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와 용례는 다음과 같다.

 

1.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갈라진 틈으로 물이 샌다.”

2. 모여 있는 사람의 속.

학생들 틈에 끼다.”

3. 어떤 행동을 할만한 기회

틈을 보이다.”

 

그럼 이 소설에서는 은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을까?

 

첫 번째 틈 -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먼저 찾아볼 수 있는 틈은 첫 번째 의미의 틈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난 틈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여자 - 이름은 정윤주- 는 출근길에 우연히 남편의 차에 다른 여자가 동승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로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생긴다.

 

그 틈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멀쩡하게 매달려 있던 줄이 갑자기 끊어지거나 바닥이 무너지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 깨닫지 못한다. 틈이 벌어지고 부서지고 깨진 뒤에야 그게 애초에 견고하지 않고 연약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45-46)

 

<사소한 균열일 뿐이라고, 아직 눈에 띄지 않는 금이 간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믿음이 깨졌다는 건 얼마나 큰일인가 싶어서 자주 주저앉았다.> (85)

 

<평소에 아무 의심 없이 걷고 뛰어다니던 땅이 갑자기 쑥 꺼졌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99)

 

바로 이 문장이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틈 - 모여 있는 사람의 속.

 

여자는 그런 남편의 행동에 상처받아 생긴 그 틈을 여간해서 메꾸지 못하다.

그런 여자 - 윤주 - 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자는 가볍게 샤워를 한 후 열탕과 냉탕, 사우나를 오갔다. 그때마다 몸은 따뜻해지고 차가워졌으나 내면에는 결코 섞이지 않는 두 개의 구간이 존재한다.> (58-59)

 

<애써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온탕과 차갑게 식어 아무 표정도 없는 냉탕.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 있고, 여자는 문밖에 서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중이었다.> (59)

 

그렇게 남편과 틈이 생겨, 상처받은 상태에 직면한 윤주에게 어떤 해결책이 있는 것일까?

동네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둘 - 역시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나있는 사람들 -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들은 수시로 만나 제각기 자기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 자리의 편함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이 교육과 돈에 관련된 대화가 오가지 않아 좋았고 겸손이나 걱정을 가장한 자랑이나 은근한 과시가 없어 편했다.>(88)

 

그런 그들이 이제 둘러 앉아 있다.

<승진 정희와는 매일 봤다. 시간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열한시 무렵 홀에서 만나 같이 음료수를 마셨다. 윤서 엄마가 승진이 된 뒤 민규 엄마는 임정희가 되고 여자는 정윤주가 되었다.>

 

< ....과일이나 고구마를 싸오기도 했다. 세 사람은 꼭짓점처럼 모여 앉아 그걸 천천히 까먹었다.>(88)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생긴 사람들이 이제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 틈으로 들어간 것이다. 상처를 안고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서로를 위로한다.

 

세 번째 틈, 어떤 행동을 할만한 기회

 

민규 엄마의 이야기이다.

처녀시절에 피웠던 담배를 아이를 임신한 후에는 끊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피게 되었다.

 

그것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인생에 이런 작은 틈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나, 그게 인간적인 거리고 합리화했다.>(66)

 

생활에 치인 그 답답함을 담배로 풀어보는 그 작은 틈, 그것은 틈의 세 번째 의미로 쓰인 것이다.

 

더 중요한 세 번째 의미의 틈이 등장한다.

 

남편에게 자기가 목격한 일을 여자 - 윤주- 는 말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그럼, 언제 이야기 하나?

남편 얼굴을 볼 때 마다 그 생각이 난다. 묻고 싶다. 그 때 그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에게 묻고 싶었다.> (93)

 

그러나 여자는 그러지 못한다. 그럼 언제 그런 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냥 아무런 말, 하지 말고 가슴 속에 품은 채 살아갈 것인가?

아니다.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또 다른 의미의 틈을 사용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런 틈을 만드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에게 전화하여 잠깐 얘기하자고 을 만든 여자 정윤주에게 남편 임정호가 걸어오고 있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 남편과 이 벌어진 여자들이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 에서 그 상처를 위로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남편과, 상황과 직면하기 위한 을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틈은 피하고 어떤 틈은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 볼 틈을 준 책, 의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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