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과 틈 사이에서
틈이
무엇일까?
틈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와 용례는
다음과 같다.
1.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갈라진
틈으로 물이 샌다.”
2.
모여
있는 사람의 속.
“학생들
틈에 끼다.”
3.
어떤
행동을 할만한 기회
“틈을
보이다.”
그럼 이 소설에서는
‘틈’은
어떤 의미로 쓰이고 있을까?
첫 번째 틈
-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먼저 찾아볼 수 있는 틈은 첫 번째
의미의 틈이다.
남편과의
사이에 난 틈이다.
이 책의
주인공,
여자
-
이름은
정윤주-
는
출근길에 우연히 남편의 차에 다른 여자가 동승한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그
이후로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생긴다.
그 틈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멀쩡하게
매달려 있던 줄이 갑자기 끊어지거나 바닥이 무너지기 전에는 그것이 얼마나 허약하고 허술한지 깨닫지 못한다.
틈이
벌어지고 부서지고 깨진 뒤에야 그게 애초에 견고하지 않고 연약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45-46쪽)
<사소한
균열일 뿐이라고,
아직
눈에 띄지 않는 금이 간 것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믿음이 깨졌다는 건 얼마나 큰일인가 싶어서 자주 주저앉았다.>
(85쪽)
<평소에
아무 의심 없이 걷고 뛰어다니던 땅이 갑자기 쑥 꺼졌을 때의 충격과 비슷했다.>(99쪽)
바로 이 문장이 이 소설의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틈
-
모여 있는 사람의
속.
여자는 그런 남편의 행동에 상처받아
생긴 그 틈을 여간해서 메꾸지 못하다.
그런 여자
-
윤주
-
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자는
가볍게 샤워를 한 후 열탕과 냉탕,
사우나를
오갔다.
그때마다
몸은 따뜻해지고 차가워졌으나 내면에는 결코 섞이지 않는 두 개의 구간이 존재한다.>
(58-59쪽)
<애써
온기를 유지하고 있는 온탕과 차갑게 식어 아무 표정도 없는 냉탕.
그
둘은 멀찍이 떨어져 있고,
여자는
문밖에 서서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고민중이었다.>
(59쪽)
그렇게 남편과 틈이
생겨,
상처받은
상태에 직면한 윤주에게 어떤 해결책이 있는 것일까?
동네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둘 -
역시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나있는 사람들 -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한다.
그들은 수시로 만나 제각기 자기
삶의 모습을 이야기 한다.
그 자리의 편함을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이
교육과 돈에 관련된 대화가 오가지 않아 좋았고 겸손이나 걱정을 가장한 자랑이나 은근한 과시가 없어 편했다.>(88쪽)
그런 그들이 이제 둘러 앉아
있다.
<승진
정희와는 매일 봤다.
시간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열한시 무렵 홀에서 만나 같이 음료수를 마셨다.
윤서
엄마가 승진이 된 뒤 민규 엄마는 임정희가 되고 여자는 정윤주가 되었다.>
<
....과일이나
고구마를 싸오기도 했다.
세
사람은 꼭짓점처럼 모여 앉아 그걸 천천히 까먹었다.>(88쪽)
남편과의 사이에 틈이 생긴 사람들이
이제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 틈으로 들어간 것이다.
상처를
안고 같은 상처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서로를 위로한다.
세 번째
틈,
어떤 행동을 할만한
기회
민규 엄마의
이야기이다.
처녀시절에 피웠던 담배를 아이를
임신한 후에는 끊었는데,
어느
순간 다시 피게 되었다.
그것을 이렇게
합리화한다.
<인생에
이런 작은 틈 정도는 있어도 괜찮지 않나,
그게
인간적인 거리고 합리화했다.>(66쪽)
생활에 치인 그 답답함을 담배로
풀어보는 그 작은 틈,
그것은
틈의 세 번째 의미로 쓰인 것이다.
더 중요한 세 번째 의미의 틈이
등장한다.
남편에게 자기가 목격한 일을 여자
-
윤주-
는 말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
그럼,
언제
이야기 하나?
남편 얼굴을 볼 때 마다 그 생각이
난다.
묻고
싶다.
그
때 그 모습은 어떤 것인지?
<어느
쪽을 원하느냐고 옷을 벗고 욕실로 들어가는 뒷모습에게 묻고 싶었다.>
(93쪽)
그러나 여자는 그러지
못한다.
그럼
언제 그런 틈을 만들 수 있을까?
그냥 아무런 말, 하지 말고 가슴
속에 품은 채 살아갈 것인가?
아니다.
저자는
그 해결책으로 또 다른 의미의 틈을 사용한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바로 그런
틈을 만드는 여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남편에게 전화하여
‘잠깐
얘기’하자고
‘틈’을
만든 여자 정윤주에게 남편 임정호가 걸어오고 있는 모습으로 이 소설은 끝난다.
이
소설,
남편과
‘틈’이
벌어진 여자들이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들 ‘틈’에서
그 상처를 위로받고,
다시
일어서기 위하여 남편과,
상황과
직면하기 위한 ‘틈’을
만드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네 인생에서 어떤 틈은 피하고
어떤 틈은 만들어야 할지,
생각해
볼 틈을 준 책,
의미있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