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3 - 연산군에서 선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3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신병주 감수 / 민음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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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 불급(不及)이면 난() 이러시다

 

이 책은 <역사 저널 그날> 세 번째 책이다. 다룬 시기는 조선 시대 연산군부터 선조까지인데, 특기할만한 것은 끝에 승정원일기에 대하여 첨부해 놓았다. 20019월 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등재된 자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의 기록이다.

 

이 책은 책의 제목 그대로, ‘그날을 조명해 보는 책이다. 우리 역사에서 그날이 가지는 의미를 천착해서 독자로 하여금 역사의 진실과 만나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를 교과서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역사로, 우리가 만일 그 당시 그날을 살았더라면 충분히 경험했을만한 경지로 독자들을 안내해 주고 있다.

 

나는 이 책에서 그날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를 두 가지 갈래로 찾아 읽었다.

하나는, 지금껏 읽어왔던 역사서에서 언급되지 않아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알게 되었으며 두 번째는 그러한 역사적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역사의 행간에 숨어있는 의미를 미처 모르고 있다가 이 책에서 그 의미를 깨달아 안 것들. 그렇게 두 갈래로 읽었다.

 

정철(鄭澈),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

 

이 책은 정철을 다음과 같이 평한다.

 

<정철은 여러 분야에서 우뚝 선 인물이었다. 그는 문학사가 기록하는 뛰어난 문인이었고 좌의정까지 오른 저명한 정치가였다. 그러나 이런 두 광채는 서로 충돌하면서 정철의 삶에 더 짙은 그림자를 만들었다.> (116)

 

정철을 가사, 사미인곡 등 문학쪽으로만 이해하고 있던 나에게 이 책의 폭로(?)는 뜻밖이었다. 그런 감수성 짙은 노래를 지은 사람이, 그래서 당연히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하고도 남을 사람이 어찌 그런 무자비한 학살을 할 수 있었다는 말인지......

 

그래서 이 책, 해당부분을 몇 번씩 곱씹어가면서 읽었다. 전후 사정을 확실하게 파악하기 위하여. 혹시 정철에게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혹시 후세의 기록자들이 무언가 오해하지 않았던가...등등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 그대로 안광이 지배를 철할 때까지 몇 번을 읽었다.

 

이 책은 이렇게 조심스럽게 결론을 짓는다.

<정여립이 실제로 모반을 추진했는지는 지금까지 논란에 싸여있다. 다시 말해서 정철은 좀 더 신중하게 수사했어야 할 사건을 가혹하게 처벌한 것이다.>(117)

<최근에는 이 사건에 선조가 가장 크게 개입했다는 견해가 많다.>(117)

 

정여립 모반사건을 다룬 기축옥사에 표면적으로는 정철이 주관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으나, 실제적으로 선조가 개입하여 일을 그렇게 끌고 갔다면, 그래서 정철은 그냥 꼭두각시 노릇을 한 것이라면?

 

참으로 역사란 그래서 엄중한 것이다. 한 사람의 명망이 이렇게 해석에 따라 좌지우지 될 수 있다니! 그래서 역사 앞에 사람은 겸손해야 하는 것일까?

 

정철과 관련하여, 이런 말을 기억해 두는 것도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까?

 

<우리가 정치를 이야기 할 때에 소신과 명분을 이야기하잖아요. 소신과 명분이 아무리 중요해도 소통과 관용이 없으면 불구가 되거든요. 어느 하나만 가지고는 정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거죠.>(138)

 

그래서 정철에게는 이런 평가를 내린다.

<정철이 바로 그 경우예요. 소신과 원칙, 그리고 당파적 이익에 너무나 충실하다 보니 상대방을 배려할 틈이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1,000명 이상이 피를 흘리게 하는 무리한 옥사를 벌이게 된거죠.>(139)

 

기축옥사가 우리 역사에서 갖는 의의

 

기축옥사로 인해 정여립처럼 진보적인 지식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적 토양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 (139)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적의 흉탄에 맞은 후 했다는 말, ‘나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는 공식적으로 어디에 기록이 되어 있을까?

 

사람들은 흔히들 그 말이 난중일기에 기록되었거니 생각하지만, 그것은 어불성설이다. 일기란 살아있을 때 쓰는 것인데, 죽어가면서 어떻게 그 말을 일기에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인지...

이 책에서 확실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발언은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

 

<‘승정원일기를 보면 이원익이라는 분이 이순신 장군의 아들 이예를 왕에게 추천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이 나와요. 이순신 장군의 위대한 면모를 강조하면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자신의 죽음을 알리지 말라고 하셨다.’, 이렇게 이야기한 거죠. >(233)

 

번역이 불급(不及)이면 난() 이러시다

 

논어 향당편에 이런 구절이 보인다.

 

유주무량(唯酒無量) 하시되, 불급란(不及亂) 이러시다.

 

해석하자면, “술을 마실 때에 정해놓은 주량은 없지만 그것이 심기를 어지럽히는 데까지 이르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자를 읽으면서 띄어읽기를 잘 못 할 경우 우스운 번역이 나올 수 있다.

유주무량(唯酒無量) 하시되, 불급(不及)이면 난() 이러시다.

이말 번역하면, “주량에 차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킨다.” (250)

 

, 먹고 싶은 주량에 차지 않게 되면 문제를 일으킨다는 말이니, 원래의 뜻과는 천지 차이가 된다.

 

이 이야기는 승정원일기를 번역하고 있는데 그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과정에 등장하는 말이다. 그만큼 번역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문제라는 것. 그러니 불급(不及)이면 난()이러시다는 것!

 

그러니, 역사를 읽고 배운다는 것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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