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의 클리어런스 플랜, 거들고
싶었다.
등장인물에게 큰 응원을 보낸다.
이 사건,
신문지상을
통하여 흔하게 접하는 가정폭력의 하나라는 점,
경각심을
주게 만드는 소설이다.
그런
가정폭력을 어떻게 해결하나?
많은
방법이 있겠지만,
이
소설에서는 폭력을 행사하는 상대방을 제거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제거,
죽이는
방법이다.
이 소설에서 가정폭력을 행사하는 남편을 죽이는 방법으로 그 현상을
타개하는데,
이
경우 ‘사람을
죽이다니,
그래도
되나?’
하는
생각은 애초부터 들지 않았다.
물론
죽어도 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카나코가
남편 핫토리 다쓰로에게 맞고 사는 것에 어떤 다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었기에,
그렇다면
그 방법만이 최선의 길이었다는 판단은 친구인 나오미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한 때에 이미 내렸다.
<다음날부터
나오미의 머릿속은 어떻게 다쓰로를 사라지게 만들까 하는 공상이 지배하게 됐다.>(125쪽)
‘어떻게
제거하지?
다른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죽이는
것 밖에!’
나오미는 그런 나의 바람을 충실히
따라주었다.
<설령
경찰이나 재판소같은 공적인 압력을 이용하여 이혼한다 해도 다쓰로가 살아있는 한가나코는 계속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그녀의
편안한 일상을 되찾아주기 위해서는 다쓰로를 제거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125쪽)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일에,
주인공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제발,
일이
성사되기를,
그리고
그 사건이 잘 해결되기를 빌면서 책을 읽었다.
빈틈이 만들어내는 서스펜스
전반부인 <나오미
이야기>를
읽으면서 약간의 빈틈을 보았다.
나오미와
가나코가 세운 클리어런스 플랜,
말이다.
‘아니,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거야?
뭔가
빈틈이 있는데 나중에 어쩌려고?’
그런데 바로 그게 저자가 노린 점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후반부인
<가나코
이야기>를
읽으면서였다.
내가
생각한 그 빈틈이 하나하나 나오미와 가나코의 발목을 잡는 것이 되며,
아울러
독자들을 책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가 되고 있었다.
다쓰로의 시신을 싣고 고속도로를 주행하는 장면에서는
‘분명
폐쇄회로(CC)TV가
어디쯤 있을 것인데’하는
안타까움,
시신을
담은 가방을 들고 아파트에서 나오는 장면에서는 ‘어?
아파트
엘리베이터 그리고 현관에 분명 CCTV가
있을 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은 <가나코
이야기>에서
현실로 나타났다.
그런
빈틈을 파고드는 틈새공격이 연속해서 주인공 둘을 코너로 몰아댄다.
이
장면에서 나는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렸다.
이렇게
막바지로 몰리다가 끝에는 그 영화의 주인공들처럼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은 아닐까?
주인공의 변화를
주목하며
이 소설에서 특기할만한 점은 주인공 둘의
성격이다.
특히
가나코의 변화는 이 소설을 극적으로 끌고 가는 주요한 요소가 된다,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고 남편에게 맞기만 하던 그 성격이 일을 저지른 다음부터 -
아니
일을 저지르는 그 순간부터 -
확연하게
변한다.
적극적이고
끈질기게 싸우는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런 성격의 변화가 이소설의 중요한 모티브가
되며,
결국
방해하는 자들광의 싸움에서 승리하는 원동력이 된다.
또한
그런 것들이 소설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간다.
그래서
요코와의 질긴 싸움,
임의동행
형식으로 경찰서에 끌려가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모습 등은 독자들의 애간장을 태우는 장면들로 만들어간다.
독자들은 그런 장면마다 가나코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며,
버텨주기를,
좀
더 악착스럽게 버텨서 그 곤경의 자리를 빠져나오기를 고대한다.
안도의 큰 숨을 내쉬며
<그
때 눈앞의 부스에 다른 직원이 나타났다.
중년남자였다.
문을
열고 여직원과 뭐라고 대화를 나눈다.
가나코는
정지선에 선 채 침을 꿀꺽 삼켰다.
무슨
일이 생긴건가.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487쪽)
이 장면,
눈에
떠오른다.
이제
게이트 개찰구,
비행기까지
몇 미터,
문
하나를 앞에 두고 그간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일까?
저
남자,
혹시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온 것은 아닐까?
‘승객중에
가나코씨 데스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라는
방송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러면
지금까지 애써 도망친 그 수고가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데.....
그 다음 장면을 읽어본다.
<여자가
의자에서 일어나 부스에서 나온다.
대신
남자가 앉았다.
단순한
교대였다.
그럴
게 뻔했다.>
아,
그거구나......
비행기 여행을 하면서 보았던 장면,
게이트
직원들이 업무 교대를 하는 단순한 장면.
그러나 작가가 이 시점에서 집어넣은 이 단순한 장면 하나는 모든 독자들의 침샘을 마르게 하는데 한
몫을 단단히 한다.
그 부분을 읽고나니,
비로소
안심이 된다.
그러나
계속되는 긴장감.
그 긴장감은 <직원이
스탬프를 손에 쥐었다.
탕,
하고
소리내어 여권에 도장을 찍었다.
항공권을
사이에 낀 후 표지를 덮고 말없이 카운터 위로 돌려 놓는다>에서
비로소 풀린다.
긴장감이 풀리며,
내
다리에 힘도 풀린다.
책을 읽으며,
긴장감과
함께 다리에 힘을 준 것은 이 책이 아마 처음인 듯하다.
나오미와 가나코가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요코와 그야말로 목숨을 건 추격전이
벌어지는데,
그
때 내 다리에 힘을 너무 주었나 보다.
작가가 내린 결말,
아주
좋다.
저자는 마지막에 이런 말을 덧붙인다.
<결말을
어떻게 할지 작가도 마지막까지 망설인 소설입니다.
독자
여러분도 주인공들과 함께 조마조마,두근두근,
즐겨주세요.>
작가가 망설이다 내 놓은 결말에 박수를
보낸다.
<델마와
루이스>같은
결말이었으면,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서 몇 마디 투덜거렸을 것이다.
‘엔딩신이
그런대로 멋있긴 하지만,
주인공들이
너무 불쌍하잖아’
그런 소리 않게
해주어서,
작가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