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 오베가
달라졌어요!
오베,
약간은
낯선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
<오베라는
남자>라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인
그를 둘러싸고 여러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소설,
일단
재미있다.
처음에는 이게 왜 이리 지루하게
이야기가 진행이 될까,
했다.
사건도
들쑥날쑥 전개되는 것 같았다.
그러니
몰입이 되지 않았는데,
어디서부터인가,
사건이
생기는가 싶더니,
그대로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사건이란 이웃이 오베의 집을 트레일러를 후진하다가 긁어버린 것을 말한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야기가
재미있으니,
‘오베
신드롬’이란
말 하나쯤 생기지 않을까?
물론
좋은 의미로 말이다.
이
소설 속에서 ‘오베라는
이름을 딴 신드롬’(428쪽)은
별로 좋지 않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독특한
인간,
오베
그렇게 이야기가 재미있게 진행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래도 오베라 불리는 사람의
독특한 인간성 때문이 아닐까?
한마디로 이 세상 살아가면서
소통과는 아예 담을 쌓아놓은 것 같은 사람,
말
그대로 까칠하기 이를데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이 이웃들과의 교류를 통하여 점점 자기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이 세상 안으로 발을 들여 놓게 되는,
‘우리
오베가 달라졌어요’라는
감탄이 절로 나오는 이야기.
그
과정에서 여러 에피소드가 등장하면서 독자들의 얼굴에 미소를 띠게 만든다.
사람은 상처로 이루어진 존재
오베가 그렇게 까칠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상실로 인해 갖게 된 상처 때문이
아닐까?
아버지의
죽음,
그리고
사랑하는 소냐의 죽음.
그런
죽음으로 인한 상처가 그를 압박하고,
더
이상 세상과 소통을 어렵게 만들었기에,
그는
자기만의 세계로 들어갔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까칠하게 보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러한
상처를 치료하는 과정이 소설의 중요한 내용이 되는 것이다.
아픔
없이 자라는 나무가 어디있으랴,
는
식으로 오베에게도 그러한 아픔,
그리고
그 아픔의 치유가 전개되면서 진정한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전달해 주고 있다.
이 책의 처음 장면에 나오는 오베가
컴퓨터 가게에 가서,
컴퓨터를
구입하려고 하는 장면에서 일단 의아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컴퓨터를 사려고 하지,
컴퓨터
사양도 모르는 것 같은데?
다시
말하면 무엇을 사야할지 자신도 모르고 무조건 그 가게에 들이닥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
의아한 마음은 424-425쪽에
가서야 풀렸다.
“알았다.
그렇다면
선물을 원하겠군.
내
생각에 그러네?”
“다
사주실 필요는 없어요.
딱
하나만 있으면 돼요.”
소녀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고,
소녀는
두손을 깔대기 모영으로 만들어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이패드요.”
그 소녀에게 줄 아이패드를 주려고
그는 컴퓨터 가게에 들른 것이다.
그렇게 그는 세상과
소통하고,
그의
삶에 남아있는 상처를 치유한 것이다.
오베의 죽음이
아쉽다.
그렇게 세상을 향한 문을
열고,
이제
행복해 보이는 오베.
그에게
소설의 끝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안타깝지만
저자가 택한 결말은 오베의 죽음이었다.
그래서,
저자가
옆에 있다면,
그래서
나랑 이야기가 된다면,
아니
더하여 나와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면,
굳이
오베를 그렇게 죽일 필요가 있었는지 묻고 싶다.
그냥
‘그날
저녁 오베가 고양이를 산책시키면서 저멀리 멀어졌다’는
말로 끝을 내 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래도 오베가
강도를 당해 상처를 입고 병원에 갔을 때에 죽음을 맞지 않고,
병원에서
걸어 나와서 다시 조금 행복을 맛보다가 침대에서 죽게 한 것,
그것이
감사하긴 하다.
게다가
이런 유쾌한 유서도 독자들이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
“당신은
완전히 멍청이는 아냐!”(449쪽)
그 말과 더불어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과 함께 볼 수 있게 해주었으니,
그의
인생이 헛되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것,
알려준
저자가 고맙다.
모쪼록
우리네 인생도 모두 그러하기를...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밑줄 긋고 싶은 말들이 많이
있다.
특히나
이 책에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말들이 많이 보인다.
<우리는
죽음 자체를 두려워하지만,
대부분은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데려갈지 모른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한다.>
(43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