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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시 속에 숨은 인문학 - 옛시의 상상력 코드를 풀다
이상국 지음 / 슬로래빗 / 2015년 5월
평점 :
인문학으로 읽어야 시를 제대로 읽는
것
이
책,
<옛
시 속에 숨은 인문학>은
옛 시를 읽는 책이다.
시를
읽되,
그
속에 숨어있는 그 무엇을 인문학적 시각에서 찾아내는 것이다.
저자는
옛 시를 읽으면서 시의 행간에 숨어있는 이야기들을 인문학적 시각으로,
상상력을
동원하여 풀어내고 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
사람들이 남긴 시를 읽다가,
그
속에 숨어있는 생생한 스토리를 발견했다.
시에는
그 삶 속에서 일어난 사실이 숨어있었고,
시인의
생각과 관점과 성찰과 반성이 들어 있었다.
또
그 시를 쓴 시대의 세상이 숨김없이 들어 있었고,
그
세상에 대한 애환과 풍자,
그
세상을 받아들이는 철학과 관조와 신념도 거침없이 펼쳐져 있었다.
시를
쓰는 이의 치열한 역발상과 관찰력,
그리고
언어 탐색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었다.
그야말로
문사철(文史哲)이
어우러진 인문학 콘서트 현장이었다.>(6쪽)
그러한 저자의 관찰은 시를 하나씩
읽어가면서 그 안에 들어있는 -
숨어있는
-
인문학적
읽을거리를 독자들에게 드러내 보여주는데,
그러한
읽을거리는 독자로 하여금 옛 시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인문학적 안목을 넓히고 깊게 하는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저자는 옛 시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을 문사철의 항목에 따라 문학 역사,
철학으로
뷴류해 놓고 있다.
두보(杜甫)의
시,
야(夜).
먼저 문학으로 분류된 시 하나를
저자의 설명을 따라가며 읽어보자.
86 쪽
이하에 실린 두보(杜甫)의
시다.
夜(야)
露下天高秋氣淸
노하천고추기청
空山獨夜旅魂驚
공산독야려혼경
疎燈自照孤帆宿
소등자조고범숙
新月猶懸雙杵鳴
신월유현쌍저명
이슬 지는 하늘 높이 가을기운
맑아서
빈 산에 홀로 있는 밤나그네 마음이
놀라네
외로운 등 하나가 비추는 외로운 돛배는
잠들고
새로 달이 걸리니 쌍절구 소리가
우네
이 시를 읽으면서 저자가 독자들에게
들어내 보이는 것은 무엇일까?
<이슬이
내리는 것을 느낀 두보(이
시의 작자)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았으리라.
참
하늘이 높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 넓은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맑은 가을 기운을 호흡한다.
그러니까
고개를 들고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호흡하는 어떤 사람이 露下天高秋氣淸
(노하천고추기청)의
숨은 주어이다.
두보는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할 때,
유독
아름답고 맑고 고운 풍경들을 데려온다.
슬픔과
외로움이 지독해지는 것은,
저
아름답고 맑고 고운 것들의 대비 속에서이다.>
(87쪽)
저자는 이 시에서 숨은 주어를
찾아낸다.
그래서
두보가 처해 있는 상황에서 슬픔과 외로움을 표현하고 있으며,
다음
연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시를 통하여 그리움을 그리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렇게 저자는 두보의 시를
조곤조곤하게 읽어가면서,
두보의
속마음을 찾아내고,
그려낸다.
맹호연의
시,
낙양방원습유불우(洛陽訪袁拾遺不遇)
또 다른 시를
읽어보자.
이번에는
95쪽
이하에 실린 맹호연의 시다.
낙양방원습유불우(洛陽訪袁拾遺不遇)-
낙양에서 원 습유를 찾았으나 만나지
못함-맹호연(孟浩然)
洛陽訪才子(낙양방재자)
江嶺作流人(강령작유인)
聞說梅花早(문설매화조)
何如此地春(하여차지춘)
낙양으로 재기 넘치는 그를 만나러 갔더니
강령에 유배간 죄인이 되었다 하네
듣자니 매화가 일찍 피는 곳이라던데
어떤가,
이곳
낙양의 봄은.
친구가 보고 싶어서 천리길를 멀다
않고 찾아갔는데,
그
친구가 귀양을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심정은 어떨까?
먼
길을 간 그 수고가 도로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그 친구가 귀양건 것,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는가?
맹호연은 그런 심사를 이 시에 옮겨
놓고 있다.
<맹호연은
허망한 마음으 ㄹ달래며
이 시를 썼다.
유배
간 그 곳은 매화가 일찍 핀다하니,
친구는
꽃을 즐기고 있는가.
사실은
이 친구가 세상의 매화가 아니던가.
그대가
거기로 갔으니,
그
곳에 매화가 일찍 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로군.>(96-97쪽)
“사실은
이 친구가 세상의 매화가 아니던가.
그대가
거기로 갔으니,
그
곳에 매화가 일찍 핀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로군”
이라는
저자의 해설을 읽기 전에는 “聞說梅花早(문설매화조)”라는
구절을 단순히 그 친구가 유배 간 그 곳이 매화가 일찍 피는 곳이로구나,
는
마음으로 읽었다.
그런데 저자의 해설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그
구절을 통해 맹호연이 그 친구를 얼마나 아끼는지,
사랑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그 다음 이어진 구절 역시 쓰여진 글자 그대로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何如此地春(하여차지춘)”
“어떤가,
이곳
낙양의 봄은”
저자가 찾아 낸 맹호연의 심사를
깨닫지 못했다면,
이
구절 역시 기껏해야 중립적으로 읽혔을 것인데,
속
뜻을 알고 나니,
‘이
곳 낙양의 봄은 봄이 왔으나 봄은 아닌 것이다’로
읽힌다.
<맹호연은
문득 낙양의 봄을 돌아본다.
매화를
귀향보낸 이 곳은 어떤가.
봄이
왔으되 이게 어디 봄인가.>(97쪽)
이렇게 읽을 수 있다는
것,
바로
이게 이 책의 의미이다.
행간
속에 숨어있는 뜻을 헤아려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이 시를 그냥 거기에 그치면
안된다.
그저
하나의 친구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한 시로 읽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저자는 거기에 덧붙여 이렇게
말한다.
<여기엔
그런 조처를 한 군주와 권간(權奸)들에
대한 분노와 미움이 얼핏 깔려있다.
맹호연의
표현들이 워낙 조심스럽긴 하지만 매화조(梅花早)는
당시의 정치적 봄날을 심문하는 날렵한 풍자가 아닐까 한다.>(97쪽)
이렇게 이 책을
읽으면서,
시
속에 감추어진 역사,
그리고
철학을 짚어가면서 읽어가는 재미,
인문학적으로 읽어가는 것. 그게
진짜 시를 읽는 기쁨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