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해주고 싶은 저자의 숨쉬기
나는 저자를 응원하고
싶다.
책이 좋은가 어떤가는 책중에
등장하는 인물-
주인공
또는 저자 -
에게
얼마만큼 감정이입이 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
감정이입의 정도가 크면 클수록,
책에
대한 몰입도는 높아지고,
책에
대한 애착이 높아진다.
그러면
책 중의 주인공과 공감하며 그와 같이 책 속에서 활동하게 된다.
그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 같고,
그가
힘들면 가서 도와주고 싶고,
그가
환호하면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
그런
현상이 이 책을 읽으면서 나타났으니,
이
책은 그래서 일단 합격점이었다.
그 정도는 책 중반을
넘어서자,
임계점에
달했다.
그래서
156쪽의
‘불쾌한
요가학원’에
이르러서는,
뭐
이런 학원이 다 있어?
하면서
저자와 같이 그 학원을 같이 빠져나오는 기분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이후 저자의 태도가 바뀌고,
그
학원에서 드디어 숨쉬기를 시작했을 때에는 나도 그 학원을 다녀보고 싶은 마음까지 들 정도였다.
그래서 드디어 저자가 숨쉬기
-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를
시작했을 때 나의 가슴을 꽉 막고 있던 -
저자의
풀리지 않는 상황처럼 -
가슴이
뻥 뚫리고,
그의
상쾌함에 나도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주제
-
요가
-를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읽으면서도 그런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게 읽혀지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저자의
글솜씨 -
그래서
소설가?-
도
물론 한 몫을 하지만 그것보다는 저자의 솔직성과 젠 체 하지 않는 성격 덕분이라도 하는게 더 적절할 것 같다.
요가의
효과,
두
가지만
요가에 대해 문외한이라 이 책에
주요 주제로 등장하는 요가에 대해 언급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
그러나
저자를 따라가면서 들은 이야기로는,
요가의
효과가 대단한데 다음 두가지만 언급하고 싶다.
이것은
저자의 깨알같은 유모어 구사 덕분에 ‘주차’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요가의 효과이니,
특별한
기록이 필요할 듯 해서,
기록에
남기고 싶은 것이다.,
마트나 백화점에 차를 주차해 놓고는
어디에 세워 뒀는지 몰라 한참을 헤매는 등 건망증이 무척 심했던 분이 요가를 하면서부터 건망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고
한다.
(217쪽)
주차된 차량을 몸으로 밀어 옮길 때
혼자서는 할 수가 없어서 항상 남편의 도움을 받던 분이 어느 날부터인가는 자기 혼자 힘으로 충분히 그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217쪽)
드디어 숨을
쉬다.
숨을
쉬었다.
저자가.
이렇게
기쁠 수가!1
뭐 막혔던 숨을 쉬었다는 것이
아니다.
요가에서
말하는 숨을 제대로 쉬었다는 말이다.
나도 이
부분,
저자가
숨쉬는 것에 대하여 요가강사 -
남자,
새로
등록한 학원의 남자 강사-
로부터
숨쉬기에 대해 질책을 받으면서 애닳아 하는 것을 읽으면서,
뭐
그리 유난을떨까,
하면서
나도 저자와 같이 덩달아 떨더름해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 강사의 말을 하나 둘씩 듣다 보니ㅡ
점점
납득이 되는 것이었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말을 들어보자.
<여러분이
살아있는 것은 ‘생명’이
있기 때문이죠.
숨이
멈추면 생명도 더 이상 유지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숨’을
쉬고 있다는 증거이고요.
그런데
현대인들은 대부분 스트레스와 화 때문에 숨을 잘 쉬지 못합니다.>(200쪽)
듣고 보니 백번 맞는
말이었다.
숨쉬기,
누가
제대로 한번 살펴본 적이 있던가?
그냥
숨이 붙어있으면 쉬는게 숨이지,
뭐
별 다른 방법으로 숨을 쉬어야 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냥 지나쳐 버린 숨쉬기.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느낌,
가능한
일인가?
<내가
움직여 숨을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숨이
나를 움직이고 있는 이 순간.
마침내
숨이 가득차 오르다가 저절로 멈추는 상태가 되었을 때에는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더
이상 ‘나’를
가두는 ‘몸’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200쪽)
이 글을 읽는
동안에,
저자의
길을 따라 같이 왔기에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비록
내 몸은 그렇게 못할지라도 충분히 글의 내용이 이해되었다.
그렇겠다.
맞겠다,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의
간난고초(艱難苦楚)
극복에 박수를
이 책은 저자가 치열하게 해온
구도의 궤적을 기록한 책이다.
대개의 경우 구도의 궤적을 기록한
책들은 너무 주관에 치우쳐,
독자들의
지지를 -
매니아를
제외하고 -
받기
어려운 법이다.
이
책 역시 요가를 주제로 한 저자의 체험을 기록하고 있기에 그런 책 중의 하나로 여겨질 것이다.
하여
요가에 대하여 관심이 있다거나,
요가를
잘 아는 독자들은 호감을 가지고 대할 것이나,
요가에
대하여 전혀 지식이 없는 문외한 중의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은 선뜻 손에 잡기가 어려운 책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각오를 하고 읽기
시작한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어낼 수
있을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그저 요가의 자세 -
책
중에 삽입되어 있는 요가의 자세설명 -
나
심심풀이조로 읽어본다,
셈치자.
그런데 그런 생각은
1부,
청춘,
뚱뚱한
몸,
고단한
마음에서 깨져 나갔다.
이건 단순한 요가 책이
아니구나,
고단한
시간을 보내는 청춘의 이야기다.
그런데
그 청춘의 이야기가 예사롭지 않게 들려왔다.
요즈음
별 볼 일 없는 청춘이 얼마나 많은가,
그중에서도
뚱보라면 그래서 외모부터 비호감이라고 여겨진다면,
그
인생은 청춘은 청춘이로되,
이미
한 물간 인생 취급받는 것이 아닌가?
내
생각이 아니고 요즘 세상인심이 그렇게 돌아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책,
그렇게
시작하더니,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저자는
인생살이의 속살을 낱낱이 보여주면서, 간난고초(艱難苦楚)를 극복했노라고
기록을 하고 있지 않는가?
그것도
어떠한 우연이나,
요행수
하나없이 그저 순수하게 저자의 그 치열함으로!
그러니,
이
책이 맘에 드는 것이다.
저자도
그렇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