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기쁨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문장을
찾았다.
249쪽이다
네기시가
말한다,
아키코가
저녁 식사 자리에 어떤 옷을 입고 갈 것이냐고 물으니 대답한 말이다.
“그냥
보통으로 입고 와”
그 말에 아키코가 속으로
생각한다.
‘그냥
보통으로?’
이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게
가장 어렵다고요.“
보통인 듯 아닌
듯,
하지만 보통을 넘어서는 책
그 말을 아주 훌륭하게 보여준 책이
바로 이 책 이츠키 히로유키의 소설,
<사계
아키코>이다.이
책 문자 그대로 보통이다.
그러나
보통으로 자리매김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속에는
아무것도 없으면서 겉으로는 마치 뭐가 대단한 것이 들어있는 것처럼 치장하는게 세상살이의 지혜인데,
이
책은 전혀 그게 아니다.
그러니
이게 보통이고,
더
나아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
역시
그렇다.
그게
가장 어려운 것이다.
아 책에는 주인공 아키코와 더불어
그의 자매 3명,
그러니까
네 자매가 등장한다.
네 자매의 이름에 대하여는 일본어의
사계(四季)
- 봄(하루)
여름(나츠)
가을(아키)
겨울(후유)-
에
각각 자(子)를
붙여서,
하루코,
나츠코,
아키꼬,
후유코로
이름을 지은 것이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잠깐
살펴보자.
스포일러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해당출판사의 책 소개에 삽입된 줄거리를 잠시 인용해 본다.
<어릴
때부터 공부하는 걸 좋아해서 노상 책만 들여다보았던 아키코.
그녀는
몇십 대 일이라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국립대학 의학부에 입학하지만,
학내
개혁운동을 하다가 공무집행 방해죄로 교도소에 들어간다.
결국
의학부를 그만두고 환경보호 운동에 종사하며 작은 잡지를 발행했지만 혼자 감당하는 데 한계를 느끼고 투쟁의 동지이자 옛 연인이기도 한 료스케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설득한다.
그러나
료스케는 그녀의 제의를 거절하고 현실을 바꾸려면 큰 힘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고한다.
그녀는
료스케의 소개로 환경운동가들이 눈엣가시처럼 여기며 공격하는 보수 진영의 네기시 의원을 만나 그의 비서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정치 세계에 뛰어들고 혹독한 현실과 맞서며 고뇌한다.
곧게 뻗은 붓꽃의 꽃대를
바라보면,
올곧은
성품을 가진 아키코가 떠오른다.
성공보다는
꿈,
이익보다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 세계로 발을 들이는 아키코.
그녀는
과연 무소속 시민연합의 추천으로 입후보하게 된 후쿠오카의 중의원 의원 보궐선거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인간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괜찮아.
네 자매의 인생이 이처럼 재미있게
그려줄 줄이야?
네
자매는 각자의 영역에서 나름대로 살아가면서,
때로는
협력하고 때로는 도와주면서 인생의 길을 걸어간다.
그런데
그 살아가는 방식이 다 같지 않다.
그러니
작품 속의 이 말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설인 것이다.
<인간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살지 않아도 괜찮아.>(376쪽)
정곡을 찌르는 말의 힘
이 작가의 글은 처음 접하는
것이지만,
글에
힘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사람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문명이니 역사라는 말을 언급할 때,
거기에는
뭔가 겉도는 듯한 빤한 느낌이 따라붙는다.>(297쪽)
이 말이 누구에게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이 책 읽는 동안 신선한 충격을 맛보았다.
(‘신선한
충격’.
이런
말,
뭔가
겉도는 듯한 기분!
그런
것을 깨닫게 되다니!
그래서
이 책이 가치가 있는 것 아닌가?)
조금 더
인용해보자.
<하루
하루 우리가 먹는 것이며 입는 것,
삶의
디테일,
그런
것을 이야기할 때는 모두들 한결같이 현실감이 있지만,
관념적인
말이 대화에 섞이면 그 즉시 얄팍한 겉핥기 식의 말을 하는게 보통사람들이다.>(297쪽)
아키코에게,
그녀의 결정에 뜨거운
박수를!
‘사계(四季)
시리즈’의
다른 책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은 제목이 아키코인만큼 아키코가 주인공이겠다 싶었는데 실상은 네 자매가 모두 주인공이다.
그래도
이 책을 읽어가면서 이 책의 제목의 주인공인 아키코에 유독 관심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질 때에는 더욱더 관심을 가지고 읽어나갔다.
이
장면,
네기시
바사후미가 아키코가 저녁을 먹으면서 아키코에게 의원 출마를 다짐하는 장면.
의원출마를
권하는 그 장면에서 과연 그녀의 대답은 무엇일까,
숨죽이며
그녀의 반응을 읽어나갔다.
출마에
대하여 그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녀의 생각을 잠시
들어보자.
<이상이나
꿈이라는 것이 얼마나 미덥지 않고 덧없는 것인지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대학
때부터 나름대로 정치운동에 참여해 온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그러다가 기성세대가 되면 정반대 방향으로 나가는 동료들에게 나는 아무래도 익숙해 질 수가 없더군요.
오히려
나는 학생 때보다 이상이나 꿈에 한층 더 마음이 끌립니다.
하지만
현재의 정치계는 그런 것이 용납될 만한 무대가 아니예요.>(309쪽)
여기까지 읽다가 숨을 훅
들이켰다,
아키코가
진흙탕에 뛰어들려는가 보다,
하는
안타까움으로.
그러나
그녀의 말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키코는
한 마디 한 마디 곱씹듯이 말을 이었다.
그야말로 유치한 이상에 젖은
젊은이라고 비웃으실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나는 제 2
인생을
철처히 유치하게 공상적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309쪽)
이 부분에서 나는 보이지 않을 손을
들어 들리지 않을 박수를 보냈다.
그래서 이런 그녀의 말을 들은
네기시 바사후미가 말한 것이 바로 내가 할 말이었다.
<학생
때보다 더 어린아이 같은 이상과 꿈을 좇으려고 하는 사람을 자네가 처음이야.>
(310쪽)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느끼는
기쁨
나츠코에게 후유코가 보낸 편지의
일부에서 작가가 이 책을 통하여 말하려는 것을 발견했다.
<나츠코
언니 나는 지금 정말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온몸으로 실감하고 있어.
이렇게
영원의 시간과 무한한 공간이 교차하는 세계적인 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소녀시절부터 동경해왔던 보스호라스 해협의 저녁 노을을 바라보고
있다니,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야.>(283-284쪽)
살아있다는
것. 사람이
목숨이 붙어있는 한, 다 살아있는 것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느끼는 경우는 드물다.
더군다나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일생에 걸쳐 몇 번이나 되겠는가?
이 책에서 저자는 네 자매의
이야기를 통하여 살아있는 것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말하고 있다.
후유코는
그 것을 느끼게 된 것,
얼마나
귀한 일인가?
다른
세 자매 역시 각자의 삶 속에서 그런 순간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저자는
우리에게도 같은 순간을 느껴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 후유코의 다음과 같은 말로
이 소설이 끝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살아있어,
라고
후유코는 생각했다.>
(3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