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 창비세계문학 40
마리오 베네데티 지음, 김현균 옮김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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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제발 좀, 휴전합시다.

 

궁금한 것 - 왜 제목이 휴전”?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전쟁의 포탄소리를 생각했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지 않은 탓이리라. 두 주인공의 연애가 무르익을 즈음에도 나는 그저 전쟁이 일어나 포탄 소리가 조만간 울릴 줄 알았다.

그래서 두 연인은 속절없이 전쟁 가운데로 휩쓸려 들어가고 그래서, 사랑은 아픈 기억으로 남는가, 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떠나지 않았다.

 

대체 왜 제목이 휴전일까? 이상하다. 책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도 어떤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힌트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야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흘러가는데, 대체 전쟁은 일어나는 거야, 안일어나는 거야?

그렇게 읽어가기를 어느덧, 종반! 어라? 이거 전쟁이 일어나지 않으니, 언제 개전, 그리고 휴전을 한다는 거야. 소설 제목 값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랑은 인생이란 전쟁에서 잠시 휴전하는 것!

 

내 궁금증은 끝에 가서야 풀렸다.

 

<하느님이 내게 암울한 운명을 주신 건 분명하다. 잔혹하신 않다. 단지 암울할 뿐. 하느님이 내게 휴전을 허락하셨다는 건 분명하다. 처음엔 이러한 휴전이 행복이라면 믿지 않으려 했다. 온 힘을 다해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고 그렇게 믿게 되었다. 그러나 단지 휴전이었을뿐, 행복은 아니었다. 이제 또다시 나의 운명에 휘말렸다. 전보다 더 암울하다. 훨씬 더.> (219)

 

바로 주인공인 49세의 홀아비 마르띤 산또메가 그보다 25년 더 어린 라우라 아베야네다와의 사랑이 바로 휴전인 것이다. 그의 무료한 삶에서 빛나는 시절이 되는 그 시간들이, 인생이란 전쟁에서 잠시 포성이 멈추는 시간이었던 셈이다.

 

그에게 그녀 라우라는 어떤 존재였을까?

<그녀가 얼마나 절실한가! 하느님은 나에게 가장 커다란 결핍이었다. 그러나 하느님보다 그녀가 더 필요하다.>(219)

 

주인공에게 하나님은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그의 인생에서 신은 결핍으로 존재하나, 그 보다 더 필요한 존재가 바로 라우라였으니, 그녀의 존재가치가 얼마나 컸던가를 알 수 있다.

 

그에게 인생이란? 전쟁인데.....

 

생각해 본다. 작가가 의도하는 바, 인생은 분명 전쟁과 같은 처절함이 묻어나는 과정인데, 그 전쟁에서 잠시 마음을 달래주고 편안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일단 사랑인가 아닌가는 추후로 미루고, 다른 그 어떤 것은 그에게 위안이 될 수 없었던가?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다.

그에게는 부인은 없다. 먼저 세상을 떠났기에 그렇다. 셋째 아이를 낳고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에게 가족은 세아이가 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이제 다 성장해서, 그에게 곁을 주지 않는다. 그가 집에 들어가 지내는 시간은 이렇게 묘사된다.

 

<거의 매주 일요일마다 점심과 저녁을 혼자 먹는다.>(51)

<어젯 밤 에스떼반은 12, 하이메는 1230, 그리고 불랑까는 새벽 1시가 다 돠어서야 들어왔다.>(31)

 

31쪽의 기록은 월요일의 일이다. 따라서 어제, 즉 일요일은 하루종일 혼자였던 셈이다. 그러니 그에게 가족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곳이다.

 

그럼 친구들은?

친구 역시 별로 없다. <아니발은 몇 안되는 친구들 중에 제일 괜찮은 녀석이다.>(49)

 

그래서, 그의 일상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가?

 

일요일, <언젠가 내가 자살을 한다면 그날은 일요일일 것이다. 일요일은 가장 맥이 풀리고 따분한 날이 아닌가.> (30)

 

평일, 어느 수요일이다. <엄청난 과제가 떨어졌다. 내일까지 끝내야 한다.> 그 다음 날, <10시까지 일해야 했다. 시쳇말로 녹초가 됐다.>(119)

 

그러니 그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무료함과의 전쟁인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없는 삶인 것이다. ‘무료함과의 전쟁! ‘의미 없음과의 전쟁! 이것보다 더 처절한 싸움이 있을까?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그러니 휴전이다

 

그런 그가 사랑에 빠졌다. (88) 그의 사랑은 구체적이다. 머리속으로 세밀한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그 계획을 실행한다. 용감한 자가 사랑을 쟁취한다는 말이 그에게는 더할 나위없이 맞는 말이다. 결국 그녀를 쟁취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파트를 얻어 시간을 같이 보내는 사랑으로 구체화된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의미없음에서 무척 의미있음으로 변한다. 이제 결혼까지도 생각하는 시간이 된다. (, 인생은 아름다워라~)

 

그러나 어디까지나 휴전이다. 그러니 잠시라는 말이다. 영원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니 그 사랑하는 시간, 무척 의미있는 시간은 훌쩍 그를 떠나버린다. 그녀가 어이없게 죽은 것이다

 

인생이란?

 

<라우라의 죽음과 함께 휴전의 시기는 막을 내렸고, 이제 모든 것은 거대한 허공이며 일기에 기록할 의미있는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임을, 신의 부재보다 더 큰 그녀의 부재가 미래의 시간을 지배할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225)

 

<그녀의 죽음은 그에게서 다시 행복을 앗아간다. 결국 라우라가 그의 삶에 도착한 것은 새로운 꿈도, 변화도, 행복의 기회도 아니었다. 단지 예전의 고독하고 무미건조한 삶으로 돌아가기 전에 주어진 신() 또는 운명과의 협정, 짧은 휴전이었을 뿐이다. 시작과 끝을 가진 시간, 두 시기 사이의 괄호를 의미하는 소설제목은 협정이 종료되면 다시 불행한 삶으로 돌아가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225)

 

그의 사랑인 라우라가 마르띤의 삶에 열어보인 희망은 그녀의 죽음과 함께 끝난다. 우리의 인생도 그런가? 우리가 의미있다고 여긴 그 무엇이 우리를 떠나가면 우리 인생은 다시 전쟁으로 돌아가는가? 우리 인생의 처절한 싸움터에서 진정한 휴전은 어떻게 얻는 것인가? 인생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 소설은 그러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인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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