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한의학 - 낮은 한의사 이상곤과 조선 왕들의 내밀한 대화
이상곤 지음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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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이 책을 읽으려고 했는가?

 

이 책의 몇 갈래 흐름

 

<왕의 한의학>을 읽었다. 실상 이번 종이책으로 읽으니, 이 책을 두 번째 읽는 셈이다. 전에 인터넷 신문에 연재되는 것을 통하여 이상곤의 글을 접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인터넷을 통하여 읽는 것과 종이책을 읽는 것은 맛이 다른 법! 이제 다시한번 읽으면서 인터넷을 통하여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이 책에 흐르는 두 갈래 큰 줄기를 제대로 파악하게 되었다.

 

한 줄기는 한의학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한 줄기는 <왕의 한의학>이라 저자가 이름붙인 재료를 통하여 조선의 역사를 다시한번 - 다른 시각으로 - 살펴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살펴볼 수 있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조선 왕의 몸은 당대 조선의 시대정신과 과학, 그리고 제도와 정치가 응축되었다고 할 수 있다.> (8)

<왕의 몸은 조선 왕조 역사의 바로미터다. 사실 마음은 숨길 수 있지만, 몸은 정확하게 반응한다.> (8)

<왕의 한의학을 통하여 왕의 몸에 응축된 조선의 사회, 문화, 사상을 해독해 낼 수 있고, 역사 기록의 우물 속에 감춰진 진실을 퍼 올릴 수 있다.> (9)

 

바로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시각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우리에게 역사를 보여주는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 그래서 저자의 인도를 따라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거머리 요법 - 기침법(蜞針法)

 

그럼 먼저 한의학에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자. 이 책 48쪽과 124쪽을 보면 거머리 요법이 등장한다.

거머리를 가지고 무슨 치료를?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나쁜 피를 거머리가 빨아먹게 하는 방법으로 종기를 치료했다.(124) 문종이 종기로 고통당할 때에 거머리를 사용하여 효과를 보았다. (49) 거머리를 사용하여 종기를 치료하는 것을 동의보감에서는 기침법(蜞針法)이라 불렀는데, 다음과 같이 치료를 한다.

“ .... 종기의 꼭대기에.......그 속에 거머리 한 마리를 집어넣는다. 다음 찬물을 자주 부어 넣으면 피와 고름을 빨아먹는다. 그러면 헌데가 생긴 곳의 피부가 쭈글쭈글해지고 허옇게 된다.”(49)

 

그런 거머리 요법을 사용하고 있었길래, 다음과 같은 소설속의 묘사는 사실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모루 위에 달군 쇠를 올려놓고 망치로 때릴 때, 신출내기 숯장이나 풀무꾼은 불똥을 뒤집어 쓰고 화상을 입기가 십상이었다. 쥐를 잡아서 대가리와 꼬리, 다리를 자르고 내장을 발라 내고 껍질을 벗겨서 끓는 물에 고면 하얀 기름이 엉겼다. 서날쇠는 그 쥐기름을 걷어내어 불에 댄 자리에 발라 주었다.

덴 자리가 곪으면 고름자리에 거머리를 붙여서 썩은 피를 빨아낸 뒤 파를 으깨서 붙여주었다> (김훈, 남한산성, 55)

 

종기, 나라를 망하게 하다 - 종기로 죽은 왕들

 

종기는 조선왕들을 가장 괴롭힌 질병이다. (216)

그리고 그 종기로 인한 죽음이 그 뒤의 역사를 바꾼 안타까운 경우가 되었으니, 더 안타까운 것이다.

문종의 경우, 종기로 고생하다가 일찍 죽어 세조가 왕위를 찬탈할 빌미를 제공하였고, 효종은 종기를 치료하기 위하여 사혈요법을 쓰다가 지혈이 되지 않아 죽는 바람에 북벌의 꿈은 사라졌다. 정조 역시 종기 때문에 죽었는데, 그의 죽음 이후 조선의 멸망이 가속화되었으니, 어찌 보면 종기가 나라를 무너뜨린 가장 큰 원흉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6)

 

조선 왕들에게 사랑받은 약들

 

213쪽 이하에 보면 조선의 왕들이 마음의 안정에 효험있는 약들을 찾았는데 그 중 사랑받은 약들이 어떤 것들인지, 망라되어 있다.

우황첨심원부터 우황고, 저두환 등등 많은 약들이 조선 임금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이런 약들이 사랑받은 이유가 안타깝기 짝이 없는 것이다.

바로 왕들이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그런 약들을 복용했다는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그래도

 

한의학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좌지우지 한 기록들, 또한 많은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인조가 만약 자신의 건강을 이형익에게 맡기지 않고, 저주 타령에 빠지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떻게 변했을까? 소현세자가 번침 같은 잘못된 처방이 아니라 제대로 된 처방을 받고 치료되었다면 어땠을까? 소현세자는 새로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지 않았을까?>(212)

 

저자가 소현세자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토로한 글이다. 과연 그의 말처럼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았더라면, 그래서 그가 인조 다음의 왕위를 물려받고 임금이 되었더라면?

분명 우리나라의 역사는 다시 써야 했으리라. 심양과 북경에서 강성한 청과 서양의 문물을 보고 배운 소현세자는 무언가 다른 눈을 가지고 국정에 임했으리라. 그렇다면? 분명 조선은 다른 모습의 나라가 되었을 것이고, 우리 대한민국 역시 다른 모습이 되었으리라.

 

그런데 왜 소현세자는 그러지 못했을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저주 타령에 빠진 인조의 무능과 돌팔이 의사가 새로운 시대를 열 수 있는 기회를 앗아간 것만은 분명하다.> (209)

 

소현세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여 일찍 세상을 뜨는 바람에, 나라가 잘 못 흘러간 것이 아쉬워서 그 소회를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이 어디 소현세자뿐이랴? 그런 아쉬움과 안타까움은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정조의 경우 마찬가지이다. 조선을 개조하겠다는 의지로 정약용들 실학파들을 중용하던 개혁군주 정조도 허망하게 약화사고(350)로 세상을 뜨는 바람에, 그의 개혁정치는 끝이 나고 그 뒤로 조선이란 나라는 멸망을 앞에 두고 달려가게 되는 것이다.

 

성리학의 문제점

 

더하여 이 책을 통하여 유교와 성리학이 조선시대에서 노출한 한계를 알 수 있다먼저 성리학이 어떤 것인지 정의부터 하고 들어가자.

간단히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학이 공자를 조종으로 하여 국가와 사회의 질서 유지를 목적으로 했다면, 성리학은 주자를 조종으로 하여 태어난 마음을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141)

 

그래서 유학과 성리학은 안팎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를 유지한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기에 왕의 질병이 생기면, 성리학자 대신들이 그 치료에 참여하는 제도가 마련되었다. 어떻게 그런 제도가 가능했을?

 

<조선 시대에는 문과 출신의 사대부들은 대부분 상당한 의학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정자 말하길, “효자는 의약에 대하여 알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자식이 의약 지식이 있어야 어버이가 오래오래 목숨을 부지하며 살수 있다는 의미이다.>(이덕일, <조선왕 독살사건> 1, 22)

 

그래서 성리학자인 대신들이 의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치료를 감독하는 위치에서 임금의 치료과정에 개입하는 것이 용인된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바로 문제가 있었으니, “왕의 진료와 치료에 참여한 성리학자 대신들은 거시적 총론에는 강했지만, 미시적 각론에서는 예리한 기술적 진보에 걸림돌이 되기 일쑤였다”(10)는 기록이 보인다.

 

그래서 때로는 의원 대신에 참여한 대신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희생자가 생기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이불상(哀而不傷)의 가르침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논어 팔일편(八佾篇)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子曰 關雎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니라>

 

번역하자면,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시경의 첫 번째 편 관저는 즐거우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슬프면서도 마음을 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시 설명하자면, 낙이불음(樂而不淫) 즉 즐기되 빠지지 말고, 애이불상(哀而不傷) 즉 슬퍼하되 상처받지 말라.’하였다.

 

그러니 애사를 당하였을 때 공자말씀을 따른다면, 슬퍼하는 마음을 허용하되 그 슬픔이 몸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공자말씀을 금과옥조로 삼는 조선시대에 그 가르침을 잘 지켜졌을까? 이 책을 통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조선왕들은 대부분 즉위하면서부터 국상을 치르다가 건강에 타격을 입는다.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른 이들을 제외하면 조선의 모든 왕들은 선대왕의 국상을 치르는 것으로 정사를 시작했고 건강을 망쳤다. 충효가 국가 운영의 근본 가치였던만큼 임금은 상사에 있어 만백성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문제는 선대왕의 장례절차가 새 왕의 몸을 해칠만큼 복잡하고 힘들었다는 점이다. (227)

 

따라서 이런 국상 때문에 몸을 상한 왕이 한 둘이 아니다. 인종도 그 중의 한명이다인종이 세상을 뜬 것은 지나친 효도가 스스로의 몸을 끊은 것이다라는 평가를 받는다.(144) 중종의 국상 때에 몸을 지나치게 상한 것이다. (142)

 

문종은 어떤가? 부왕인 세종이 병환이 나자 근심하고 애를 써서 그것이 병이 되었으며 상사를 당해서는 너무 슬퍼하여 몸이 바싹 야위었다, 고 실록은 전한다. (42)

 

, 조선의 왕들은 애이불상이란 가르침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은 나라를 위란지기로 몰아넣은 것이다.

 

다시 결론  

 

 

 

 

이 책이 목적하는 바는 조선왕의 몸과 질병과 그 치료법을 통하여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던 그 목적은 이 책 안에서 충분히 이루어졌다. 나 또한 조선 역사를 새로운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른 역사가와는 다른 시각으로 역사를 보여준 저자의 혜안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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