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럽다,
저자의
책 읽기와 글 쓰기
마냥
부러웠다.
저자가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감성이.
그리고
그 정리되어 나온 내용들이.
더군다나
저자의 약력 및 하는 일을 살펴보니,
더더욱
부러워졌다.
책
읽는 일,
그게
그의 일이니 무슨 말을 더 할까?
나는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었다,
내가
마치 그가 된 것처럼,
그가
책을 앞에 두고 읽는 것처럼 해보자,
하면서
읽어보자,
했다.
저자가 읽었다고 하면서 이 책을
통해 소개한 내용을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아주
주관적인 분류다.
내가
읽은 책 그리고 내가 읽지 않은 책, 이렇게 두 종류다.
내가 읽은 책들도 상당수 있어서
반가웠다.
그리고
언급된 책은 읽지 않았지만 소개된 책의 저자가 쓴 다른 책을 읽은 경우도 있어,
반가웠다.
예컨대
에쿠니 가오리 말이다.
그가
쓴 책,
소개된
책은 <한낮인데
어두운 밤>인데,
나는
그것은 읽지 못했고,
대신
그의 다른 소설 <냉정과
열장 사이>를
읽었다,
그리고
영화로도 보았다.
그러니 그
책 소개 부분에서 나는 네 가지를 동시에 한 셈이 되었다.
에쿠니
가오리를 상기하게 되었고,
그의
책 <한낮인데
어두운 밤>을
저자의 뒤를 따라가며 저자의 감성을 느꼈으며,
그의
다른 책 <냉정과
열정 사이>를
다시 복기하였고,
또
그 영화를 떠올렸으니,
참으로
책 읽는 일이 이처럼 신기하다.
책을
앞에 두고,
그
책이 열어준 생각의 통로를 통하여 여기 저기 다닐 수 있으니 말이다.
영화 말이
나왔으니,
영화를
통해 소개된 작품에 새롭게 접근하게 된 경우도 있다.
<인생의
베일>,
서머셋
모옴의 작품이다.
그
책에 대하여 이야기 하는 중에,
저자는
그 작품이 영화로 제작되었음을 말하고 있다.
내가
책을 읽다가 바로 거기에서 멈췄다.
내가
서머셋 모옴의 작품이 원작인지도 모르고 본 영화.
<인생의
베일>을
영화화 하여 내건 제목 <페인티드
베일>.
저자가
친절하게 영화의 제목까지 알려주어서,
그
이름이 눈에 뜨였다.
바로
내가 본 영화였다.
그리고
보니 그 내용이 선연히 떠올랐다.
나오미
왓츠의 모습,
그리고
에드워드 노튼.
저자는
그들의 내면 연기가 일품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내게는
아픈 사랑이어서 아프게 보았던 영화,
그
영화가 책을 읽음과 동시에 떠올랐다.
그렇게,
이
책이 아니었으면 서머셋 모옴의 작품 하나가 나에게 아예 나타나지 않았을 것인데,
그저
평범한 영화로만 저장되고 말았을 것을.
아니
애시당초 서머셋 모옴라는 이름은 거기 영화에서 눈치채지 못했으니,
이
좋은 작품 하나가 다른 구석에서 따로 자리 잡고 있었을텐데,
이
책 덕분에 제자리를 찾게 된 것도,
이
책을 읽은 기쁨 중의 하나이다.
물론 저자가 소개한 책 중에서 나의
촉수에 잡히지 않은 책들 또한 다수 있다.
그러기에
안타깝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과 그 작품이 영화화된 다른 것들 중 내가 미처 읽지 못했고,
보지
못한 것들은, 그
느끼는 감흥이 저자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런
것쯤은 나중에 내가 다시 그 작품을 읽고,
또
영화까지 보게 된다면,
곧
따라잡을 수 있겠지?
그런데 저자는 책을 이야기하면서
중간 제목을 이렇게 붙여 놓았다.
<나를
생각하게 하는 당신>,
<내게
영감을 주는 당신>,
<나를
말하게 하는 당신>,
<내게
영원히 기억될 당신>,
<나를
달뜨게 하는 당신>.
여기에서
‘당신’은
누구일까?
혹은
무엇일까?
‘당신’이니
인칭대명사,
그러면
저자가 읽은 책의 저자를 말하는 것일까?
아니면
책을 의인화하여 ‘당신’이라
칭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이
누구일까를 추리해 보았다.
누구인가를
알면 저자가 말하려는 바가 더 분명해질 것이니,
저자의
책 쓴 의도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는 독자의 자세가 바로 이것이라,
싶었다.
<오늘 나와 함께 동행한
주인공은 ....>(13쪽)
<집 밖을 여행하지
않아도,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여인이 여기 있다.>
(17쪽)
여기에서 나의 의문이
풀렸다.
저자가
말하는 ‘당신’은
책도 아니고 책을 쓴 소설의 저자도 아니고,
바로
작품 속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그렇게 저자가 만난 작품 속의 주인공을 ‘당신’이라
칭하며,
독자인
우리에게 그 ‘당신’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건네주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작품들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저자
자신을 생각나게’
하며,
저자에게
‘영감을
주기도’
하며,
저자를
‘말하게’
하기도
하며,
저자에게
‘영원히
기억’되며,
저자를
‘달뜨게’
만들었으니,
그
‘당신’은
저자에게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존재인가.
그런
존재를 저자는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많은데,
그가
책을 대하는 기쁨이 그중 하나이다.
저자가 책을 읽으며 표현한 기쁨의
광경을 살펴보자.
<다시
읽으니,
옛
친구를 만난 듯 반갑고 익숙해서 좋았다.>
(67쪽)
<그녀의
소설에는 포기하지 않고 읽게 되는 묘한 분위기가 흘러넘친다.>
(67쪽)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지만 나이브한 무드에 취해 가오리상(저자)에게
편지까지 쓰고 싶어졌다.>(71쪽)
또 작품을 대하는 저자의 결기를
보라,
이
정도면 저자 역시 '참 좋은 독자'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번
읽고 나면 두 번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기도 하다.
단순히
즐거움을 얻기 위하여 소설을 읽는 독자라면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243쪽)
그런 결기를 가지고 이 책을
썼으니,
저자의
글은 그냥 쓰기 위한,
책
내기 위한 글이 분명 아니다.
그래서
모쪼록,
나의
책읽기도 (혹은
글쓰기도)
저자처럼
그랬으면 좋겠다.
그저
부럽다,
부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