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많은 일,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해변 빌라

 

이 책을 몇 페이지쯤 읽었을까다시 앞으로 돌려 읽기로 결단(?)을 내렸다. 그때까지 읽었던 내용 중 등장인물간의 관계가 파악이 되지 않아서였다. 무슨 미로를 헤매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들 이름도 그렇거니와 사건이 구체적으로 발생하는 단계도 아니었기 때문에 인물들간의 관계 정리가 제대로 되질 않았다. 이게 무슨 일? 하는 수 없이 다시 읽기로 했다. 그만큼 제 1장의 몰입도는 새학기 첫 수업 같이 어수선했다. 아니 어수선해 보였다. 그런 까닭으로 마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이 아버지를 나중에서야 알았던 것처럼 나도 그 인물들 간의 관계를 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그것을 늦게 안만큼, 작가가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의도도 늦게 알게 되었지만...

 

그렇게 다시 읽었다, 그제서야 인물들 간의 관계가 어렴풋이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래도 그 어렴풋이는 소설 끝까지 이어졌다인물들이 한결같이 함께 하기에 거북한 사람들‘(16)이기에 그렇게 알아차리기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을 일단 다 읽고나서 다시 한번 읽을 생각이 든 것은 끝 즈음에서 문장의 매듭이 어떤 것은 평어체로, 어떤 것은 경어체로 끝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1장에서 시작하면서 * 표시로 된 글에서 화자는 누구일까? ‘는 손유지(윤유지)이다. 그리고 그 발언이 끝나고 나서 소설은 다시 1의 글로 이어진다. 그 때의 역시 손유지이다. 그렇다면 왜 저자는 이렇게 같은 화자가 어떤 때에는 경어로 말을 하게 하고 어떤 때에는 평어체로 말을 하게 할까? 여기에 이 소설의 어떤 숨은 비밀이 있지 않을까? 그것을 발견하고서야 이 소설에서 무언가 숨은 그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화자의 심리를 더 심층적으로 서술하면서, 소설은 진행이 되어간다. 작가의 말대로 소설의 내부에 의식과 시간이 흐르고”(224)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1장은 화자인 손유지가 경어체로 말하는 부분에서 이사경이 깨어나기를 기도하면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물론 그런 시작에 앞서 그의 생각은 잠시 노부인과 해삼 잡으러 갔던 때를 회상하기도 하지만...

시점은 노부인이 죽고, 이사경이 평범하게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지 못하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이다.

 

그렇게 시작한 이 소설은 에필로그로 글을 마감하기 전() 장인 여우비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따라서 소설의 서두에 시작한 회상이 다시 처음 시점으로 돌아가 끝을 맺는 것이다.

 

회상의 시작과 끝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 일들이 의문투성이인채로 진행이 되는데, 작가는 어찌된 일인지 거기에 대하여 속시원하게 설명을 하지 않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한마디로 중간중간 매듭을 지어 놓지 않아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 놓는다. 일례로, 화자가 윤유지에서 손유지로 이름이 바뀌게 되는 사건을 보자.

 

큰 고모부가 아빠인줄 알고 자라던 화자는 어느 날 작은 고모인 손이린이 자기를 나아준 생모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20) 그리고 작은 고모를 따라 해변빌라 509호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작가는 그 사건 가운데 마땅히 있어야할 해설을 해주지 않는다. 어떻게 생모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큰 고모부는 등장하는데 큰 고모는 왜 등장하지 않는지. 그러한 설명이 봉쇄되었으니, 독자는 더 궁금해진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화자의 위치 - 그리고 존재 자체- 는 갑자기 변화를 맞이한다. 그런 획기적인 사건에 맞딱드린 화자의 심경은 어땠을까? 작가는 극히 말을 아끼고 겨우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가서야 밝힌다. “크레바스를 넘듯 윤유지에서 갑자기 손유지가 되었을 때에, 한동안 밤마다 물이 넘치는 욕조 안에 웅크린 채 울었었다.”(209)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나는 하나의 질문을 입 안에 물고 굶주려 죽어가는 새였‘(22)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진행이 되는데, 그런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보니, 작가의 의도대로 충돌을 피하고 사건을 자꾸만 주저앉히고 이야기를 자꾸만 무화시키는형태의 진행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이야기는 끝을 맺는 법. 거기에 여러 형태의 사랑의 모습들이 등장해 이야기를 조립해 나간다. 그래서 인물간에 충돌이 일어나고 자신 속에서 갈등이 일어나고 흐름이 바뀌고 구조에 변화가 오고 차이를 만들어결국은 재조정된다.(224)

 

그렇게 해서 화자가 있는 지금’(11)으로 다시 돌아와, 소설은 끝이 난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오면서 아퀴가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초반에 인물들간의 관계파악이 그렇게 어려웠던 것은 작가의 숨은 의도였던 것이다, 그 인물들간에 관계 설정을 해주느라, 퍼즐 맞추듯이 인물들간에 선을 그려가며 맞추다 보면 어느새 소설은 이야기를 마치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독자로 하여금 미로를 따라 헤매며, 출구를 찾아 가게 만드는, 이게 바로 소설가의 역량이 아니겠는가?

 

작가는 가급적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소설을 쓰고 싶다’(223)고 했는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나의 느낌은 화자가 마치 처음 자리에 그대로 있는 듯, 있었던 듯 하다. 작가가 그 화자의 인생길을 한바퀴 설명하며 이야기를 해주었음에도 그 동안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하다. 화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애초부터 있었고, 사건은 일어났으나 일어나지 않은 듯. 그래서 작가는 훌륭하게 자기의 뜻을 이 소설로 그려내었다고 생각된다.

 

사족 하나. 사랑은 사람을 따라 여러갈래의 모습으로 이 소설 속에서 그려진다.

화자와 오휘의 경우, 손이린과 이사경의 경우, 편사장과 해영의 사랑, 진수와 알콜 중독 유부녀, 그리고 해영과 진수의 사랑. 그렇게 사랑은 여러 갈래로 구분되고, 만들어지고, 매듭지어져 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사랑 형태를 비교해보는 것도 이 소설의 재미일 듯.

 

사족 또 하나. 작가는 , 말이 좋다. 해서 다음과 같은 말을 이 소설을 읽은 기념으로 간직하고 싶다. 

<이상한 것은, 그가 말하는데도 침묵이 들렸다.>(24)

<삶이란 사과 껍질을 가급적 얇게, 끊어지지 않게 깎는 일이야.> (76)

<혼자 보는 세상엔 보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 곁에 있다면 같은 것을 두배로 볼 수 있는 것이다.>(97쪽)

<학생들은, 하나의 음을 짚으면서, 동시에 지나간 음을 간직하고 다가올 음을 예상하며 의식을 끌어가는 두터운 현재를 연습해야 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순간 속에 결합되어 멜로디로 흘러갔다.>(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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