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의 경성
Hyell 지음 / 부크크(bookk)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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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색의 경성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이 책을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소설? 서간체 소설?

일차적으로는 그렇게 볼 수 있겠다.

 

부디 이 잉크의 향기가 당신의 새벽을 깨우기를. (11쪽)

부디 나의 이 보랏빛 서신이 당신의 서늘한 꿈결을 따스하게 데우기를. (17쪽)

 

그런데 다만 그렇게만 말할 수 없는 게 이 책의 묘미다.

저자가 표지에 표기한 내용은 이렇다.

 

두 영혼의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아카이브

 

아카이브를 검색해보니. 이런 말이 나온다.

[아카이브(Archive)는 사전적으로 '기록 보관소' 또는 '자료 저장소'를 의미합니다. 역사적 가치나 장기 보존이 필요한 문서, 사진, 데이터 등을 선별하여 체계적으로 모아둔 장소나 기관을 뜻하며, 최근에는 디지털 형태의 정보 저장소를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입니다.]

 

그러니 저자가 갈무리해 놓은 두 사람의 사연이다. 서신을 포함한 모든 기록이다.

그것을 저자가 갈무리해놓았다가, 그것을 서간집의 형태로 발표했고, 그에 따르는 다른 자료들도 같이 실어놓았다.

 

이게 이 책, 소설의 얼개가 된다.

아카이브를 그대로 옮겨 놓은 소설이다.

 

이야기는 있다. 그런데?

 

두 사람,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형식이다.

 

조선의 경성(京城)에는 청애(淸愛)라는 이름의 남자 주인공.

(이름 때문에 성별이 혼동이 된다,)

이집트의 카이로에서는 해리(海里)라는 이름의 여자 주인공.

 

서로 소통하는 방법(Medium)은?

이집트에서는 스카라베. 조선에서는 조선의 매듭이 얽힌 회중시계. (6쪽)


그런데 회중시계는 알겠는데, 이집트의 스카라베는 무엇일까?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설명이 나타난다.

 

[스카라베(Scarab)는 고대 이집트에서 신성하게 여겨진 쇠똥구리 또는 이를 본떠 만든 보석과 부적을 뜻합니다.

상징적 의미: 쇠똥구리가 둥근 똥을 굴리며 태양을 연상시키고, 그 속에서 새끼가 태어나는 모습에서 부활, 창조, 불멸, 태양을 상징했습니다.

창조신 케프리(Khepri): 고대 이집트 신화에서 아침의 태양신 케프리는 쇠똥구리의 머리를 가진 신으로 묘사되며, 떠오르는 태양을 의미합니다.

역할과 쓰임새: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모양의 부적을 몸에 지니거나 미라의 심장 부위에 올려 영생을 기원했으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는 기념 주화나 도장으로도 사용했습니다.]

 

그제서야, 이 책 속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이야기는 있다. 어떤 이야기?

 

그 편지에는 각자의 각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두 사람 사이에 공통된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서로 통하는 게 있다. 바로 시계.

 

청애 :

내 손바닥 안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이 놏빛 회중시계를 보아요. (......)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적실 대신

째깍거리는 금속의 약속으로 연결되어 있으니....(10, 11쪽)

 

해리 :

나는 이 차가운 회중시계를 뺨에 대고

당신이 머물다 간 밤의 온기를

지그시 느껴봅니다. (15쪽)

 

서로를 향한 열망이 담겨있는 서신, 아니 연서가 오고간다.

 

그런 편지를 읽어가는 동안, 독자는 과연 이들의 관계, 사연이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어떻게 해서 그 두 사람은 그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그들은 각자 할 일이 있다.

 

경성의 사연을 짚어본다.

 

밀정들의 숨막히는 감시망을 피해

지하 깊숙한 암울한 서고로 몸을 숨겼을 때. (32쪽)

 

총독부의 검열을 피해

등사기로 몰래 찍어내던 동지들의 호외와

낮은 속삭임이 오갑니다. (33쪽)

 

거사가 가까워질수록

우리가 맞춰 왔던 보랏빛 맞물림 위로

불길한 금속음들이 스며들기 시작하겠지요. (33쪽)

 

카이로의 해리는?

 

고대 파라오들이 비밀 동맹을 맺을 때 사용하던

점토 인장 유물을 발굴했습니다. (26쪽)

 

나는 금조(今朝)의 새벽 나일강변에서

오래된 보랏빛 자수정 조각 하나를 발굴했습니다. (27쪽)

 

그렇게 서로 각자의 일에 몰두하면서도, 둘 사이에는 통하는 게 있다.

 

왕가의 계곡에서

신성문자의 벽화를 마주한 순간

문득 경성제대 지하 서고에서

삼엄한 검열을 피해

비밀 결사의 문장을 숨기고 있을

당신의 위태로운 울림이 떠올랐지요. (38쪽)

 

하지만 해리

당신이라는 태야볕 아래에서만은

나의 이 비겁한 위축들이

비로소 기지개를 켜고

희귀한 개화를 꿈꿉니다. (52쪽)

 

이 소설은 그렇게 서로간에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에게, 서로를 향한 마음을

적어 보내면서, 소통하는 것이 주제가 된다.

 

독자들은 서로 다른 자리에서 어떻게 두 사람이 서로에게 닿는지를 알아가는 것에 묘한 흥미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결말은?

 

남은 것은 오직

우리가 끝내 서로에게 닿았다는

단 하나의 진실뿐. (65쪽)

 

그게 1945년 8월, 이름없는 정거장의 일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그들의 내밀한 사연들, 편지로만은 알 수 없었던 사연들이 Epilogue 에 담겨진다.

그것들을 다시 다 헤아려 가며,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와

그들 사이 오고간 편지들을 다시 읽어보면 그제야 저자가 만들어놓은 큰 그림이 보인다.

 

그걸 일컬어 ‘재발견된 연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번은 그냥 앞에서부터 읽어갈 때의 연서, 그리고 에필로그를 읽고난 후 다시 읽어본 연서, 그게 ‘재발견된 연서’이다. (99쪽)

 

독자들이 그렇게 이 책의 의미를 새겨보면서 저자의 큰그림, 빅픽처를 즐겁게 감상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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