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 마상창시합의 세계
크리스토퍼 그레이벳 지음, 문성호 옮김, 앵거스 맥브라이드 채색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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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 마상창시합의 세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을 왜 읽었는가?

 

프랑스 역사를 공부하는 중에 앙리 2세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다빈치를 프랑스로 모셔간, 그래서 프랑스의 르네상스 군주라 일컫는 프랑수아 1세의 아들이다. 앙리 2세는 프랑스 역사에서 여러 가지로 기록을 남겼는데, 첫째는 그의 부인이 카트린 드 메디치인 것으로, 그 다음은 그의 죽음으로 기록을 남겼다.

 

무엇보다도 그의 죽음은 특별했는데, 그것은 바로 마상 창시합을 하다가 죽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싶었다.

다른 자료를 찾아 앙리 2세 죽음의 자초지종을 알긴 했는데 그래서 마상 창시합 자체에 대하여 알고 싶어졌다.

 

이 책은?

 

마상 창시합의 역사는? 그 과정은?

과연 싸움은 서로 죽고 죽이는 살벌한 경기였을까?

그 시합은 그토록 위험한 것인데도 이어져온 사연이 궁금했는데, 이 책은 그런 의문에 답하고 있다.

 

저자는 <영국 중세 기사의 세계>를 쓴 크리스토퍼 그레이벳인데, 그는 런던탑 왕실 무기고의 갑주 부분 최고 책임자이다.

 

왜 경사스러운 날에 마상 창시합이라니?

 

그렇다면 왜 앙리 2세는 자신의 딸 결혼식에 마상창시합을 했을까?

앙리 2세의 경우만 특별한 것인지 찾아보니 이런 기록이 나온다.

 

울리히는 오스트리아이 레오폴드 대공의 딸의 결혼식에서 마상 시합과 함께 춤이나 다른 놀이들을 했었다는 내용을 기록했다. (39)

 

그러니 앙리 2세가 특별해서 딸의 결혼식에 그런 창시합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1559630, (딸의) 결혼을 축하하는 잔치에서 토너먼트 마상창시합이 있었는데 스코틀랜드 근위군 대장이었던 콩테 드 가브리엘 몽고메리와의 창 시합에 직접 참가했다가, 몽고메리 경의 창날이 부러져 투구 틈새로 파고 드는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오른쪽 눈 바로 위에 랜스의 파편이 박히고 말았다. (<나무위키>에서 인용)

 

마상 창시합은 어느 정도 위험한가?

 

한 나라의 왕이 마상창시합을 하다가 입은 상처로 죽을 지경이라면 그게 아주 위험한 경기라는 것인데, 과연 어느 정도 위험한 것일까?

 

마상 창시합에 관한 다음 기록을 살펴보자. 그 것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마상 창시합은 실전에 대비한 훈련이다. (11)

 

13세기가 되면 마상 창시합이 너무 유약해져 전쟁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11)

 

13세기에, 무기는 실제로 전쟁에 쓰이던 것을 사용했으며, 칼날을 무디게 만든 경기용 장비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아예 없다. (12)

 

프랑스의 필리프 2세는 부상이 두려워 아들이 무예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금지했다. (19)

 

마상창은 두 가지 형태로 나뉜다.

평화의 랜스와 전쟁의 랜스 (28)

평화의 랜스는 창끝은 무디게 만들거나 충격을 분산시키기 위해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창끝을 부착한 것이다. 전쟁의 랜스는 일반적인 예리한 창끝을 부착한 것으로, 이것을 사용할 경우 한쪽의 경기자가 죽거나 전투 불능이 되어야 비로소 경기가 종료되었다.

 

일반적으로 무예대회는 항상 위험요소가 있었다.

독일 외의 지역에서도 창끝이 예리한 마상창을 이용한 시합이 계속되었다.

가끔은 마상 결투가 격벽없이 치러지는 경우도 있었다.

부상을 입을 위험을 줄이기 위해 방어구에 특별한 장치가 되어 있다고 해도,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여전했고, 실제로 자주 일어났다. (160)

 

그러니 마상 창시합에서 사용하는 무기는 일단 살상용인 것이 분명하다.

설령 살상용이 아니더라도 변수는 늘 있는 법이니. 바로 앙리 2세의 경우가 그러했다.

 

앙리 2세의 마상 창시합에 대한 참고 그림이 있어, 여기에 옮겨본다.




그 뒤로는 창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많은 방법을 강구한다. 

다음 그림에서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그후의 마상 창시합

 

그런 참혹한 사례에도 불구하고 마상창시합은 계속되었다.

 

제임스 1세는 1612년 즉위 기념일에 틸트 시합에 참가했다.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18세기 초까지 무예 대회가 개최되었다. (162)


19세기에 중세풍 무예대회를 부흥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날씨 때문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현대에도 기사들로 결성된 팀들이 관중 앞에서 정기적으로 무예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이런 경우는 아무래도 서로 죽고 죽이는 경기는 아닐 것이고 스포츠의 일종으로 시행되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미국을 여행하는 도중에 서로 팀을 나누어 중세 기사 복장을 하고 무기를 들고 싸우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건 분명 피흘리는 경기는 아니었고, 그저 칼을 휘두르고 방패로 막는 약속대련처럼 보이는 경기였다. 이제 중세 마상 창시합은 그런 모습으로 남아있는 게 아닐까.

 

다시. 이 책은? 


마상 창시합을 하던 시대로 잠시 돌아가 역사 공부를 하는 재미도 물론 있다.

마상 창시합을 둘러싸고 유럽의 유명한 왕들이 등장하는 것이 재미를 배가시킨다.

헨리 8세가? 그런 뚱뚱한 임금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직접 책에서 확인해보시기를.


이 책은 중세 마상 창시합에 관한 모든 것을 살펴보고 있는데 

이 시리즈 모든 책들이 친절하게도 용어 해설과 색인을 만들어 덧붙여 놓아, 어떤 사항을 찾거나 참고하는데 무척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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