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니시오카 후미히코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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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명화 이야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의 내용은?

 

저자는 이 책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이 책은 14-16세기 유럽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역사적 사건과 현상, 예컨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미술 시장과 역사를 어떻게 추동하며 변화시켜놓았는가를 파헤친다.(9)

 

따라서 독자들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시기에 미술 시장은 어떻게 움직였나를 알 수 있다. 또한 그 시대의 역사와 사회상도 동시에 알 수 있다.

 

그림, 위기에서 기회로

 

마르틴 루터가 시작한 종교개혁은 당시 유럽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 변화는 그림 시장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데, 특히 17세기 대표적인 프로테스탄트 국가 네덜란드에서는 미술 시장에 획을 그을만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네덜란드 미술계는 어떻게 종교개혁과 맞물려 자행된 미술 파괴라는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었을까? (29) - 새로운 시장 개척과 상품 개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교회 등 후원자의 주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했다.

둘째, 네덜란드 화가들은 성경과 신화 이야기 같은 낡은 소재에서 벗어나 화가 스스로 새로운 소재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정물화와 풍경화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형성되고 확립된 장르다. 과거에는 정물과 풍경을 회화 소재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르네상스 거장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가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37)

 

그래서 화가에게 독창성, 즉 개성이라는 독자성이 요구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당시 화가들에게 요구되었던 개성은 어떤 것이었을까?

당연히 소재의 독자성이지, 기법의 독자성을 아니었다.

왜냐면 당대 사람들이 화가에게 기대하는 기법은 여전히 진짜처럼 보이는 그림, 즉 사실묘사였기 때문이다,

 

화가가 사실 묘사를 버리고 화가의 독자적인 기법을 표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이후의 일이다. (57)

 

19세기에서 사실 묘사 포기와 화가의 독자적인 기법 표방과 같은 새로운 흐름을 만들게 된 것은 사진이라는 당대로서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한 첨단기술 문명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인상주의 회화 이후애 볼 수 있는 사실 묘사 거부, 그리고 오늘날 흔히 이야기하는 일부러 못 그린 그림은 더는 진검승부로 사진과 겨룰 수 없게 된 회화가 오직 회화만이 해낼 수 있는 독특한 기법을 꾸준히 탐구하고 시도한 결과 탄생시킨 획기적인 기법이다. (58)

 

<나폴레옹의 대관식> 자크 루이 다비드

 

히틀러를 거쳐 현대 광고 기법으로 이어진 이미지 전략이란 말에 호기심이 일었다. 누가? 바로 나폴레옹이 그랬다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해서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튀일리 궁 서재의 나폴레옹>

 

모두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것이다. 그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이미지 전략은?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은 나폴레옹의 영웅적 이미지를 극대화해서 보여준다. 백마를 타고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가는 모습에서 영웅적 이미지를 떠올리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의 가장 큰 허구는 나폴레옹이 탄 백마다. 그림 속 백마는 나폴레옹의 애마를 모델로 그렸으나 알프스를 넘을 때 그가 실제로 탄 말은 당나귀와 말의 교배종으로 추위에 강한 노새였다. 참고로, 말은 추위와 험한 길에 약해 훗날 러시아 원정에서 나폴레옹 대군의 발목을 잡기도 했다. (292)

 

또한 <튀일리 궁 서재의 나폴레옹>에서는 국민의 행복을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 그렇게 나폴레옹의 지도자로서의 모습을 훌륭하게 보여주는 이미지 홍보 도구로서 그림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전해진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의 대관식> 에 대한 후일담이다.

 

이 그림에 대한 나폴레옹의 반응은 어땠을까?

이 그림을 반시간 넘게 말없이 들여다본 후 화가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마치 그림에 들어간 듯한 기분이다.”

그렇게 나폴레옹은 화가의 뛰어난 솜씨를 칭찬했다. (200)

 

황제가 화가에게 약속한 그림의 보수는 약 10만 프랑이었다. 현재 가치로 대략 10억원 정도.

그런데 나중에 그림을 받은 정부 당국이 4만 프랑으로 값을 깎겠다고 해, 옥신각신 실랑이를 벌였다는 후일담이 있다. (197)

 

인상파 회화 그림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게 된 이유는?

 

이게 궁금했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은 당시 누구도 심지어 그림으로도 취급해주지 않았다. 그림으로 취급조차 받지 못하니 그림이 팔릴 리 없었고 따라서 인상주의 화가들은 궁핍을 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취급받던 인상주의가 어떻게 귀하게 취급을 받기 시작했을까?

 

저자는 여기 아주 흥미로운 이론을 펼친다.

 

한때 천덕꾸러기 신세였던 인상주의 그림은 어떻게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인 고가상품으로 변신했을까? 여기에 미술상 폴 뒤랑뤼엘의 피나는 마케팅 전략이 숨어 있다. (228)

 

그것은 무엇일까? ‘카브리올 레그금테 액자. (228쪽 이하)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14-16세기 유럽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을 송두리째 뒤바꿔놓은 역사적 사건과 현상, 예컨대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이 미술 시장과 역사를 어떻게 추동하며 변화시켜놓았는가를 파헤치고 있는데(9), 그런 변화의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미술 시장의 형태에서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림 기성품 전시 판매’ :

교회와 왕실이라는 대형 발주처를 잃은 네덜란드 회화시장은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포기해야 했다. 이전에는 어딘가에서 주문이 들어온 이후에 제작에 들어갔다면, 이제 시장의 변화에 발맞추어 기성품 전시 판매라는 새로운 전략으로 대응했다. 한데, 이 궁여지책의 전략이 멋지게 먹혀들어 과거의 규모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대한 시장을 새롭게 개척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화가가 주문받지도 않은 작품을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 시작한 것은 그 무렵부터다. (35-36)

 

오늘날 가장 일반적인 유형으로 자리 잡은 기성 제품 전시 판매라는 미술 비즈니스 모델은 작지만 강한 나라 네덜란드에서 탄생했다.

 

네덜란드가 나왔으니 좀 더 네덜란드 이야기해보자.

 

정물화와 풍경화는 17세기 네덜란드에서 형성되고 확립된 장르다. 과거에는 정물과 풍경을 회화 소재로 보지 않았다. 실제로 르네상스 거장 보티첼리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가 그린 정물화와 풍경화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37)

 

그리고 그런 흐름은 렘브란트로, 그리고 고흐로 이어진다. 걸출한 네덜란드 화가가 여럿 있게 된 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러니 제목처럼 명화가 세계사를 바꾸었다는 말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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