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근접한 세계 ㅣ 크로스 1
김연수.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평점 :
근접한 세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두 편의 작품이 한데 묶여있는 소설집이다.
그런데 두 편이라고 해서 같은 저자가 아니라 두 명의 다른 작가가 같은 주제를 가지고 쓴 소설이다. 주제는 윤리적 딜레마. (175쪽)
김연수 <우리들의 실패>
히라노 게이치로 <결정적 순간>
여기 인터넷 책 소개에 따르면 출판사의 기획 의도는 이렇다.
〈크로스〉는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가진 두 작가가 ‘문학’이라는 공통 언어를 통해 우리가 하나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는 ‘연결’의 기획이다.
주인공을 살펴보자.
김연수 <우리들의 실패> :
나 – 화자, 신문 기자. 40대 중반
손동하를 인터뷰한 후, 손동하의 사연을 대신 전해주는 형식을 취한다.
국정 개입 사건의 내막을 전하는 게 아니라, 그런 일을 하게 되는 손동하의 성장 과정과 폭로에 이르게 된 계기들을 소설 형식으로 구성해서 전달한다. (15쪽)
손동하 – 대통령의 친인척의 국정개입 사건에 연루된 인물 (11쪽)
결혼, 아내가 있다. (13쪽)
일군 사업의 파산과 구속을 각오하고 폭로에 나섰다. (14쪽)
쉰 살을 넘었다. (59쪽)
히라노 게이치로 <결정적 순간> :
미즈마키 가스미 - 미술관 큐레이터
가스미는 이미 고인이 된 사진 작가 사카키 미노루의 사진전을 기획하고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이상한 사진 몇 점을 보게 된다.
그 사진을 공개할 수 있을까.
어떤 진실을 발견한 직후에 시작해서 차츰 그 진실을 잃어버리는 과정을 보여준다. (174쪽)
윤리적 딜레마는 본디 죄를 저지른 당사자가 감당해야 할 것이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 주변에 있으면서 의도치 않게 비밀을 알게 됨으로써 준당사자가 되어버린 입장의 인물을 그린다. (175쪽)
작품 제목을 가장 극명하게 표현하는 문장들
이런 시도를 해보았다. 소설 문장 속에서 그 소설 제목을 가장 분명하게, 그리고 극명하게 드러내는 문장 하나씩 찾아본다면 어떤 것이 될까. 저자들이 책의 제목을 정하면서 그걸 정하게 되는 결정적 문장이 있을 것이다, 라는 생각에 그런 시도를 해보았다.
김연수 <우리들의 실패> :
일단 읽어가면서 후보가 되는 문장을 챙겨보았다.
이렇게 읽어가면 글의 흐름과 해당 문장을 조금더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뭐 어쩌겠어. 나도 엄마 결혼식에 내가 왜 있는건지도 모르겠는데. (40쪽)
정혜인이 손동하에게 한 말이다.
둘은 혜인 엄마의 결혼식에 참석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추구와 관련된 글 중 이런 게 있다. 이 것도 후보 중 하나가 될지도.
당시 엄마가 느낀 고통을 저는 전혀 모릅니다. 그게 바로 짚으로 만든 개의 슬픔이죠. 그 개가 말이 없는 게 아닙니다. 끊임없이 짖어대지만 그 소리가 다른 개에게 가 닿지 않을 뿐이죠. (57쪽)
드디어 발견했다.
우리의 소망은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미래는 우리에게 찾아오지 않았죠. 그것이 우리들의 실패입니다. (62쪽)
그리고 이어서 이런 말들이 이어진다.
마법사 멀린과 호수의 여인 니뮤에 간에 벌어지는 사건, 그리고 후에 니뮤에에게 마법을 다 가르쳐 준 멀린은 산 채로 나무 속에 갇히게 된다.
그렇게 나무 속에 갇힌 멀린이 후에 그 길을 지나가던 가웨인에게 이런 말을 한다. .
나는 너희의 세계를 볼 수는 있지만 내가 직접 바꿀 수는 없어. 그게 나의 운명이야. 나는 목소리로만 너희를 도울 수 있어. 너희 세계를 바꾸는 건 너희가 할 일이니까. (68쪽)
가서 말해. 이제 그 일을 할 때라고. (68쪽)
이 말이 손동하의 삶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가 살고 있는 세계를 바꾸기 위해 폭로를 결심하고 신문 기자인 화자 ‘나’를 만나 인터뷰한다.
히라노 게이치로 <결정적 순간> :
눈을 뜨고 아틀리에를 바라보았다. 무엇 하나 달라진 건 없었지만, 자신이 방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101쪽)
그게 결정적 순간이 아닐까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이런 이야기 새겨보고 싶다.
신은 모든 인간에게 어떤 미래를 원하는지 물어본 뒤, 이를 종합해 가장 합리적인 방식으로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현재의 인간은 저마다 조금씩은 무지하다. 그 덕분에 그 의견의 총합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괴상한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10-11쪽)
그리고 위의 이야기 결론은 이거다.
어떤 미래는 대다수가 원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다. (11쪽)
멀리 보이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려면 불확정의 시간을 견뎌야했다. 그런 점에서 미래는 양자물리학적 대상과도 같았다. (15쪽)
이런 유머도 기억해둘 만 하다.
전 돈가스 먹을래요.
넌 예의바른 놈을 좋아하눈구나.
돈가스는 항상 튀김옷을 갖춰입고 나오거든. (46쪽)
굴렌 굴드 연주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52,
‘아리아’ ‘아리아 다 카포’
두 번째 아리아 연주 같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첫 번째 연주에서 그냥 지나쳤던 음들을 다시 정확하게 연주하려는 것이라고, (57쪽)
다시, 이 책은?
두 작가가 작품 속에 감추어 둔 보물을 찾아내기 위하여 저자의 마음속을 헤아리며 작품 속 문장을 샅샅이 훑어가는 작업, 아주 즐거운 작업을 했다.
해서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독서를 제대로 한 느낌이다.
두 작가의 작품 두 개를 한 권으로 묶어낸 책 제목이 『근접한 세계』다.
물론 그 제목이 의미하는 바와는 다르겠지만, 두 개의 작품을 읽어가면서 두 작가의 세계에 조금이라도 근접해가는 그런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정말이지, 많이 근접했다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