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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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먼저, 이것부터

 

폴 오스틴, 잠깐이라도 다시 살아나 이 책의 마지막을 다시 덧붙여 마무리하면 안될까?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을 그런 식으로 끝내다니, 아무래도 폴 오스틴을 다시 소생시켜야 될 듯 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 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245)

 

이렇게 끝? !

혹시 이 책의 출판사 편집자가 그 뒤에 있던 소설의 나머지 부분을 감춘 것이 아닐까.

지금 그렇게 걸어가는 바움가트너의 상황을 몰라서 그렇게 끝을 내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 저쪽에서는 비어트릭스 코언이 앤아버에서 프린스턴까지 차를 몰고 오겠다는데, 그래서 이제 바움가트너와 코언은 곧 만나게 될 것인데, 그 이야기를 해주고 어디든 가야지. 그걸 몰라라 하고 끝을 내다니. 그야말로 아이들 말로, ‘이건 반칙이다!’

 

이 책은?

 

이 책은 소설이다.

폴 오스틴의 마지막 소설, 그래서 더 애틋하다.

위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설의 마지막이 독자들의 마음을 그런 식으로 헤집어 놓아, 더 애틋하다.

 

먼저 저자에 대해 여기저기 수소문해 보았다. 과연 어떤 작가인지?

 

[미국 문학에서의 사실주의적인 경향과 신비주의적인 전통이 혼합되고, 동시에 멜로드라마적 요소와 명상적 요소가 한데 뒤섞여 있어, 문학 장르의 모든 특징적 요소들이 혼성된 "아름답게 디자인된 예술품"이라는 극찬을 받은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문단, 특히 프랑스에서 주목 받고 있으며, 현재 20여 개국에서 번역 출간되고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 중 아주 매력적인 것이 많은데, 이제 더는 그의 작품을 읽을 수 없다니 아쉽고, 이 책이 그의 마지막 소설이라는 데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소설, 등장인물부터 살펴보자.

 

이 소설을 읽기 위해서 먼저 등장인물을 살펴보자.

일단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바움가트너가 있다. 그는 대학교 교수다.

퇴직하려는 중이다. (82)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그는 자신의 2층 방 책상에 앉아있다.

그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글을 쓰고 있다가 인용해야 할 부분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인용할 내용이 있는 책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가다가 ... 사건들이 벌어진다.

 

끝은 이미 위에 밝힌 바와 같다.

 

처음과 끝,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위치는 결코 집을 벗어나지 않는다,

마지막 장면에서야 차를 타고 집을 나서는 장면에서 허무하게 끝이 난다.

 

그러니까 소설의 대부분이 집에 있는 바움가트너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회상 등으로 짜여있다. 그것을 통해 바움가트너의 조상부터, 죽은 부인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 즉 비어트릭스 코언에 관한 이야기까지 듣게 된다.

 

바로 그 점이 폴 오스틴의 매력이다. 독자들은 소설 속 주인공 바움가트너의 머릿속으로 빨려들어가 그의 인생을 함께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가운데 저절로 감정이입이 되고,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서는 아쉬움을 토로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진행을 역자는 이 소설이 작지만 마치 나뭇가지처럼 다양한 각도로 가지를 잘 뻗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249) 라고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다. 폴 오스틴은 바움가트너라는 나무를 한 그루, 아주 커다란 나무를 심고 키워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그 나무에는 많은 가지들이 달려있고, 그 가지들을 살펴보는 재미 또한 쏠쏠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는 주인공의 안내를 따라 아주 오래전에 생긴 가지부터 최근에 생긴 가지까지 하나하나 찾아가 오래 머물 수 있다. (249)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그의 소설이 좋다는 것은, 읽으며 음미할 대목이 많은 것도 한 몫을 한다.

줄거리도 줄거리지만 이런 글 읽으면 저절로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해서 좋은 것이다.


산다는 건 고통을 느끼는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고통을 두려워하며 사는 것은 살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68)

 

외로움은 사람을 죽여요, 주디스. 그건 사람의 모든 부분을 한 덩어리씩 먹어 치우다 마침내 온몸을 삼켜 버려요.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삶이 없는 것과 같죠. 운이 좋아 다른 사람과 깊이 연결되면, 그 다른 사람이 자신만큼 중요해질 정도로 가까워지면, 삶은 단지 가능해질 뿐 아니라 좋은 것이 돼요. (123)

 

그 순간 그는 자신이 얼마나 작은지 깨닫는다. 우주를 구성하는 다른 수많은 작은 것들과 연결된 작은 것. 잠시 자기 자신을 떠나 삶이라는 둥둥 떠다니는 거대한 수수께끼의 일부가 된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151)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 바움가트너는 자신을 이렇게 정의한다.

 

7교도소 3층의 유일하게 비지 않은 방에서 아직도 복역하고 있는 늙은 무기수. (202)

 

이에 대해서는 128쪽 이하의 <종신형>에 자세히 나와있다.

이주 이런 대목이 있다.

 

문장들로 이루어징 작품을 구축하려면 하나의 문장에 반드시 다음 문장이 따라와야만 하기 때문에 하루종일 큰 집중이 요구되는데 (.......) (130)

 

무기수가 되어 글을 쓰는 작가를 묘사하는 대목인데, 그게 어찌 작가에게만 해당되는 것일까. 글을 읽는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독자들도 문장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읽어가려면 큰 집중이 요구되는데, 물론 그건 작가에 따라 또한 작품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를 것이다.

그러면, 폴 오스틴의 경우는 그 정도가 어떨까

나로서는 큰 집중, 대단히 큰 집중이 요구된다고 본다, 왜냐고? 다른 이유 없다. 그가 폴 오스틴이기 때문이다. 폴 오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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