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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인연
김도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2월
평점 :
연인, 인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소설집이다, 표제작인 <연인, 인연>을 포함해 모두 3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그런데 이것부터 짚어보자.
저자의 이력이다. 이 책의 저자 김도현은 ‘18세. 고등학생’이다.
<18세, 고등학생 작가.
도시인의 고독과 상실, 관계의 아이러니에 주목한다.
‘완벽한 구원은 판타지’라는 믿음 아래, 씁쓸한 현실 속에서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소실해야만 하는 ‘불완전한 구원’이라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왜 그런 것을 알리고 있을까, 먼저 그런 의문이 들었다.
고등학생이 쓴 소설이라는 것을 왜 알리는 것일까?
고등학생이 쓴 소설이니까, 그걸 감안하고 읽으라는 말인데, 감안해야 할 거리는 무엇일까?
아직은 성숙하지 않았다는 말? 아니면 그 나이 또래에 이 정도 수준이면 대단한 것 아니냐는 말인가?
그래서 이 책을 읽어가면서 그런 생각들이 들어, 책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했다.
읽어가는 동안에
우선 초벌구이 생각을 밝힌다.
첫 번째 소설인 <도플 갱어>를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이것이다.
“요점이 뭐지?” (62쪽)
이 소설의 주인공 미라이가 자기를 해코지 하려는 사람과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한 말이다.
그 말이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떠올랐다.
작가가 이 작품에서 하고 싶은 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두 번째 작품인 <LP 바>에는 이것이다.
감정의 과잉.
일인칭 소설인 이 소설은 주인공 ‘나’의 감정이 무척이나 정도를 넘어선 과잉상태다.
이런 문장 읽어보자.
더 이야기할 필요도, 가치도 없는 대화였다. 당장 ‘당신이 뭘 알아’라고 말해주고 싶은 분노와 짜증이 몰려왔다. (89쪽)
순간적으로 짜증이 몰려와 혼잣말이 나와버렸다. (92쪽)
추위와 모순되는 그 축축함은 미친 듯이 불쾌하고 찝찝했다. (94쪽)
그 싸늘한 인사와 바깥의 한기가 더해져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96쪽)
역시 모든 건 안을 들여다보고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뼈저리게 느꼈다. (97쪽)
그렇다고 말을 하자니, 바텐더의 표정에서 나오는 왠지 모를 공포감 때문에 쉽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98쪽)
속으로 몇 번이고 후회했다. (98쪽)
순간 그걸 보고 놀란 동시에 몸에 작은 전율이 돋았다. (99쪽)
신경이 예민해서 옷이 땀으로 젖는 감촉이 평소보다 더더욱 불쾌했다. (105쪽)
그렇게 짜증이 잔뜩 난 채로 (106쪽)
옆에서 살짝만 봐도 미친 듯이 아름다운 외모다. (112쪽)
가끔씩 그걸 견디기가 너무나 힘들게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127쪽)
순간 절망감이 집어삼키는 것 같았다. (135쪽)
나 스스로에게 크나큰 자괴감이 들었다. 좌절하고 후회했다. (135쪽)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렸을 테니까. (136쪽)
미친 듯이 춥고 몸이 떨렸지만 (137쪽)
그대로 몸에 힘이 풀려버려 뒤로 고꾸라져 버렸다. (138쪽)
이런 감정의 과잉상태는 여기 인용하지 않았지만 그 앞에 있는 상황과는 개연성이 부족해 보이는 감정들이다. 저렇게까지? 그렇게 느끼는 경우가 과연 있을까?
따라서 이야기의 진행이 너무 작위적이다, 그렇게 이야기의 진행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세 번째 작품인 <연인, 인연>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여기 적어둘 게 훨씬 적다. 좋다는 말이다.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훨씬 성숙(?)해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작가가 이 작품을 쓰기 위해 앞의 두 작품을 (습작으로) 썼을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작가 소개말 중에
소설 세 편을 다 읽고난 다음에 내가 혹시 놓친 것이 있는가, 해서 저자 소개말을 다시 읽어보았다.
<‘완벽한 구원은 판타지’라는 믿음 아래, 씁쓸한 현실 속에서도 무언가를 얻기 위해 무언가를 소실해야만 하는 ‘불완전한 구원’이라는 순간들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러자 ‘씁쓸한 현실’이라는 말이 눈에 유독 뜨인다.
그렇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의 주인공은 모두 씁쓸한 현실을 살아내고 있는 ‘직장인’들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공통점은 그들은 모두 고독하게 홀로 지낸다는 점이다.
직장에 다니고 그것으로 생활인이긴 하지만, 그 누구와도 소통도 교류도 하지 않으며 ‘씁쓸한 현실’을 영위하고 있을 뿐이다.
다시. 이 책은?
그러한 때에 그들에게 유일한 ‘구원’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판타지’가 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두 명의 주인공은 현실 아닌 환상의 자리에 들어가 판타지를 경험한다.
첫 번째 작품에서는 도플 갱어가 그것이며, 두 번째 작품에서는 재즈바에 들러 재즈를 들으며 술도 마시고 또한 처음 만난 여인과 그토록 좋아하는 재즈 이야기를 실컷 한 그 환상적인 시간이 실제는 문자 그대로 환상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판타지가 펼쳐진 것이었다.
이렇게 두 번의 과정을 겪으며 작품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작가 소개말을 다시 읽지 않았더라면, 귀한 작품을 그냥 흘려보낼뻔 했다.
뒤늦게나마 그것을 알게 되었으니, 다행한 일이다.
소설은 이렇게 음미하며 읽어야 하는 것을, 깜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