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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빙산 - 김상미의 감성엽서
김상미 지음 / 나무발전소 / 2025년 11월
평점 :
달콤한 빙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빙산을 자처하는 시인의 감성과 따뜻함,
저자의 생은 과연 어떤 것으로 가득할까, 궁금했다.
시인의 고백같은 글, 읽으면서 인생 생각해보고 싶었다.
혹시 이런 경험 해 보셨는지?
책을 읽다가, 그것도 시큰둥하게 읽다가 갑자기 눈이 번쩍 떠지면서 책을 새롭게 잡았던 적이 있는지?
나는 이 책을 읽다가 그런 경험을 했다.
무슨 일인가 하면, 이 책의 저자 조금 잘난 체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 읽어보자. 그런 생각이 드는지 안 드는지.
무너지고 깨어지면서도 사회적 장벽을 하나하나 뛰어넘던 그 시절,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4번은 얼마나 독창적이고 아름다웠던가. (32쪽)
20대의 나는 비트켄슈타인과 쇼펜하우어, 니체 등을 좋아했었나 보다. (34쪽)
뜬금없이 구스타프 말러가 나오고, 비트켄슈타인......?
흔히들 잘난 체 하는 사람들이 마구 마구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것, 바로 이런 글?
그래서 저자가 현학적(?) 아니면 잘난 체 하는 사람인가 보다 싶었는데
조금 더 읽으니, 내가 너무 성급했고, 잘 못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대 때 비트켄슈타인과 쇼펜하우어, 니체를 좋아했다는 저자 - 하기야 20대, 30대는 그런 사람들 이름 좀 알면 누군가에게 자랑을 하고 싶어하는 때니까- 가 이런 말을 한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들보다는 빛나는 것, 향기나는 것들을 더 좋아한다. 햇빛, 달빛, 웃음소리, 꽃, 나무, 바다......아직도 내 주변에 살아 있는 것들, 살아남은 것들을 더 좋아한다. (34쪽)
그 문장부터다. 내가 저자를 다르게 보기 시작한 것이.
그러자 이 책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저자가 이제 마음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바꿔먹자마자 이 문장이 번쩍하고 눈에 들어온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온전히 누리는 대신 그것을 모성이라는 햇빛 속에 집어넣어 우리가 필요로 할 때마다 비로, 눈으로, 따뜻한 햇살로 풀어놓으셨는데......(38쪽)
어떤가. 이 문장. 모성을 햇빛으로 은유하며, 그런 어머니가 자식에게 건네준 것들이 비요, 눈이며 햇살이라고 말한 작가가 있던가? 이 문장 하나만 건져도, 이 책은 벌써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저자는 시인이다. 시집도 여러 권 냈다.
시인이 쓴 산문집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에 드는 글을 발견하게 되는, 빨려 들어가게 되는 책이다.
삶을 음미하라.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니다.
인생을 조금 살아보니, 삶이란 게 그냥 살아갈 수 있는 게 아니더라.
인생 도처에서 만나는 것들이 손쉽게 넘어갈 것들이 아니라, 힘들게 겪어야 하는 일들이어서, 삶은 고통이라는 것이다. 해서 인생은 고해라고 하기도 하지 않는가.
그럴 때 필요한 게 나를 바라보게 하고, 내 삶을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쓸모가 있다. 삶을 음미하게 하는 쓸모, 그런 게 있다.
해서, 이런 글 밑줄 긋게 된다.
하지만 이 가을도 곧 끝날 것이고, 매일매일 나를 접었다 폈다 하며 산 무수한 시간 속으로 사라지겠지만, 그래도 운이 좋아 몇 편의 시로 남게 된다면 (........) (123쪽)
이제 가을이 가고 겨울이 된 이 시점에 이 글을 읽으니, ‘정말 그러네요’ 하고 저자 시인에게 말해주고 싶어진다.
저자의 뒤를 따라가보니 음악도, 그림도 만나게 된다.
저자가 언급한 그림들, 적어본다.
니콜라 드 스탈, 러시아 출신의 프랑스 화가 (89쪽)
강익중, 뉴욕에서 모국어를 그리는 설치 미술가 (100쪽)
프랑스의 풍경화가 외젠 부댕 <옹플뢰르의 등대> (103쪽)
에릭 사티의 고향이 옹플뢰르다. (104쪽)
그러니 외젠 부댕를 에릭 사티와 같이 연결시겨서, 사티의 음악을 들으면서, 그림을 보면 어떨까.
또 있다.
그림으로 옹플뢰르 등대를 처음 만난 건 조르주 쇠라의 등대 그림이지만, 그 그림을 검색하다 외젠 부댕의 그림도 알게 되었다. (105쪽)
해서 여기 조르주 쇠라의 그림 올려 놓는다.

더 읽어보자.
외젠 부댕은 클로드 모네의 스승이다. 부댕은 제자들에게 그 당시 금기시했던 외부 그림 작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지금은 외젠 부댕을 인상파의 아버지라 부른다. (105쪽)
몬드리안의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107쪽)
빈센트 반 고흐, <그림 그리러 가는 화가> 등 (132쪽)
<
그런데, 왜 빙산일까?
제목을 대하면서 의문이 들었다. 왜 빙산일까?
북국에 가자는 것일까? 거기에 더해서 달콤하다니, 혹 오자가 아닐까?
‘달콤한 빙수’, 그렇게 쓸 것을 빙산이라 쓴 것은 아닐까?
그런 의문은 여기 이 글을 읽으면서 풀렸다.
배가 느린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갈 때
영혼은 빈 공간에 떠 있는 달콤한 빙산 같아 보였다. (186쪽)
저자가 인용한 괴테의 시 일부분이다,
그 시 구절을 붙들고 저자는 삶을 음미한다. 이렇게.
그냥 달콤한 빙산처럼 서서히 녹으며, 아직 걸어보지 못한 좁고 넓은 길, 들어가 보지 못한 집, 열지 못한 크고 작은 창문들, 마셔보지 않은 시냇물들을 주변 사람들과 기꺼이, 즐겁게 맛보며 살자. 내가 쓰는 글은 모두 그들을 지나 내게로 가는 길. 그 단순함에, 그 기쁨에 기대 이빨쯤은 좀 썩든 말든 마음껏 나를 자유롭게 놓아주자. (187쪽)
솔직히 괴테의 그 시구절은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저자가 말을 덧붙여 놓으니, 쏙 들어온다.
내 속마음도 거기에 덧붙이려고 한다. 나도 그렇게 빙산처럼 녹으며 살자,고.
다시, 이 책은?
다시 한번 저자를 만나보자. 저자의 치열한 자세를 본받기 위해서다.
대신 언제나 ‘책을 펼침으로써, 책 안에 거주함으로써, 책을 읽음으로써’ 좀 더 나은 독자적이고 개성적인 작가가 되려고 오늘도 언어의 거미줄 짜기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96쪽)
거미줄 짜기, 거미가 얼마나 열심히 거미줄을 짜는지 아는 사람은 안다.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또한 저자의 그 작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를.
그러나 저자의 책을 읽고,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면, 그 고됨이 기쁨으로 변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난생 처음 저자를 만나, 이렇게 좋아하게 된 사람이 있으니, 더더욱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