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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자들의 나라
허버트 조지 웰스 지음, 차영지 옮김 / 내로라 / 2025년 7월
평점 :
눈먼 자들의 나라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책은?
허버트 조지 웰스, 우리가 알기론 H. G. 웰스.
H.G. 웰스라는 이름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허버트 조지 웰스가 누구지,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알고보니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소설가, 『타임머신』의 큰 성공 이후 『모로 박사의 섬』, 『투명 인간』, 『우주 전쟁』을 쓴 작가다. 이 책 『눈먼 자들의 나라』는 H.G. 웰스의 작품이다.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키는 책
눈먼 사람들의 나라가 있다. 거기에 눈을 뜬 사람이 들어가게 된다.
눈을 뜨고 있으니 당연히 잘 보인다. 그런 사람이 눈먼 자들이 있는 나라가 간다면?
당연히 이런 말이 떠오른다.
‘눈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
맞다. 당연하다, 눈먼 사람들만 있는 곳에서는 눈뜬 사람이 당연히 왕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거기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인데, 과연 그럴까?
여기 그런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 사람이 있다. 이 소설의 작가 허버트 조지 웰스다.
그는 ‘눈 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한다.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이 소설이다. 소설적 이야기를 통해 그는 우리의 생각을 전복시킨다.
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려면 먼저 눈뜬 사람이 눈먼 사람들만 있는 곳으로 들어가야한다.
그런 장치를 작가는 만들어놓았다.
눈먼 사람들만 사는 나라, 즉 눈먼 자들의 나라다. 그런 나라가 있단다.
그게 어디 있는가 하면, 침보라소 화산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비밀스러운 산악의 골짜기다. 세상과 단절된 그곳에는 눈먼 자들이 산다.
아주 먼 옛날에는 그 골짜기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있었다는데, 민도밤바 대폭발이 일어나 이젠 그곳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가 되려고 그랬는지
누군가 우연히 그곳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것도 눈뜬 자가.
바로 그 즈음, 외부인 한 사람이 골짜기로 흘러들었다. 지금부터 들려줄 이야기는, 바로 그 남자의 이야기다. (17쪽)
그 남자의 이름은? 누네즈 (Nunez).
그 사람의 눈에 비친 그곳은 어떻게 달랐을까?
중앙 도로의 양쪽으로는 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나란히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29쪽)
집들의 생김새가 어딘가 달랐다. 집마다 현관문은 있었지만 창문은 단 한 개도 찾아볼 수 없었다. (29쪽)
거기에다가 색이 이상했다. 색 조합이 불규칙했던 것이다. 회색, 황색, 갈색의 반죽이 여기저기 섞여 덕지덕지 덧발라진 상태였다.
그것을 본 순간, 남자의 머릿속에 ‘눈먼’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런 추리는 정확했다.
눈 먼 사람들만 사는 데 집에 창문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또한 집에 찾아가기 쉽게 하도록, 집과 집 사이가 일정할 수밖에.
그리고 눈이 보이지 않으니 집에 색칠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작가는 그런 눈먼 자들이 사는 도시의 특징을 잘 추려놓았다.
아, 이제 궁금한 것, 그것 말해보자.
‘눈 먼 사람들 사이에는 눈뜬 사람이 왕’
이 소설의 말로 바꿔보자. 오래된 속담이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이 왕이다.” (35쪽)
눈먼 자들과 누네즈가 만나 나누는 대화, 누네즈가 그들에게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하는 대목이다.
저는 저 산 너머에서 왔어요. 산 너머 보이는 사람들의 도시, 보코타에서요. 수십 만명이 모여 살며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도시죠. (35쪽)
그러자 그들은 의아해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보이는?
이 말을 영어로 읽어보자. 참, 이 책은 영어와 한글 번역본이 같이 묶여있다.
where the city passes out of sight.
sight.
누네즈의 눈먼 나라 생활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 생활에서 그는 다시 그 속담을 떠올린다.
“눈먼 자들의 나라에선 외눈이 왕이다.” (35쪽)
누네즈는 생각한다.
눈먼 사람들만 있으니 내가 왕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라고.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 않다.
여기에서 작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살아움직인다.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이부분이다.
눈뜬 자가 눈먼 자들과 싸워서 지는 장면. 그게 참 아이러니하다.
가진 것을 다 가지고서도 지다니? 눈뜬 사람이 눈먼 사람에게 지다니?
그게 웬일인가, 참 별일이다. 그 별일이 일어난다.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 내막을 밝히는 것은 어디까지나 스포일러니까, 밝히지 않으련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고 생각하도록 여러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
이 책은 <단숨에 읽고>와 <깊어지자>의 두 개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단숨에 읽고>에서는 소설의 본문이 <깊어지자>에서는 여러 읽을 거리를 마련해 놓았다.
독후 활동 / 도루묵의 갖은 양념 / 저자 소개 /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우월주의 / 정상성에 관한 고찰/ 필터버블
해서 독자들은 여럿이 또는 혼자서라도 위의 내용을 읽어가면서, 대화하며 생각할 수 있다.
과연 눈먼 자들의 나라에서, 내가 눈뜬 자라면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런 질문에 스스로 답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항상 독자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