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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기쁘다 - 한강의 문장들 ㅣ 푸른사상 교양총서 23
민정호 지음 / 푸른사상 / 2025년 4월
평점 :
봄에는 기쁘다 - 한강의 문장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한강은 우리나라 작가다.
우리나라 작가로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그러니 우리말로 노벨문학상 작품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 그런데 막상 한강의 작품을 손에 잡으면?
그게 쉽지않다. 분명 우리말로 쓴 작품인데도 읽는 게 그리 만만치 않은 것이다.
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침 그런 때, 이 책을 만난다. 동국대 문예창작학부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저자가 한강을 읽어가면서, 한강을 보다 쉽게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래서 이 책에서 한강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
저자가 여기 이 책에서 읽고 있는 한강의 작품은 다음과 같다.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
『흰』
『희랍어 시간』
『내 여자의 열매』
『채식주의자』 등 모두 11권의 작품.
어떻게 읽어가는가?
저자는 한강의 작품 하나씩 붙들고 읽어가면서, 그 안에서 되새김을 할 문장을 골라내 저자만의 읽기 스타일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한강을 친밀하개 다가가도록 해준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저자는 『채식주의자』를 읽고 그중에서 3개의 글을 골라 제시한 후에 그걸 소재로 삼아 3꼭지의 글을 썼는데, 그 중의 하나 살펴보자,
문득 이 세상을 살아본 적이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에 그녀는 놀랐다.
(「나무 불꽃」, 『채식주의자』, 197쪽)
38쪽부터 41쪽의 글이다.
『채식주의자』는 작품명인데 세 편의 중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무 불꽃」은 『채식주의자』를 구성하고 있는 세 개의 중편 중 하나. 이야기 진행상으로는 맨 마지막 편이다.
그 글을 가지고 이렇게 저자의 생각을 펼친다.
<한강의 해당 작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 줄거리 요약 정리>
<저자의 생각 하나>
여기서는 슬라보예 지젝의 『신을 불쾌하게 만드는 생각들』이란 책에서 이런 생각을 가져온다.
“최후의 인간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은 채 오직 안전과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저자는 그 말을 인용한 후에, 한 걸음 더 나간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발 더 나가야 하는 이유는, 자신이 오롯이 최후의 인간이었음을 뒤늦게 자각하는 순간, 인생을 제대로 살아본 적이 없다는 회한에 자살을 결심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39쪽)
여기에서 저자의 말 중 ‘자살’에 밑줄 긋고 더 읽어보자.
누구처럼? 소설에서 영혜의 언니처럼 말이다. (39쪽)
영혜의 언니가 자살을 했던가, 아니 시도했던가?
먼저 이 책 39쪽에 저자가 한강의 해당 작품을 요약해 놓은 부분에 이런 글이 보인다.
남편이 영혜와 사건에 휘말렸던 때, 그녀는 심한 하혈로 산부인과에서 자궁에 생긴 폴립을 제거하게 되는데, 그 사건 이후로 자신이 한번도 원없이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 장난감에서 빼낸 끈으로 자살을 하려고 한다. (39쪽)
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에서 해당 부분을 읽어보았다.
마치 추운 듯 떨려오는 몸을 일으켜 그녀는 장난감을 놓아두는 방의 문으로 다가갔다. 지난 일주일 동안 저녁마다 지우와 함께 장식해 걸어놓은 모빌을 떼어낸 뒤 끈을 풀기 시작했다. 단단히 묶어두었기 때문에 손가락 끝이 아팠지만, 참을성 있게 마지막 매듭을 풀어냈다.(.......) 끈을 말아 바지주머니에 넣었다.
그녀는 맨발에 샌들을 꿰어 신었다.(............) 아파트 뒤편의 쪽문을 지나 뒷산으로, 어둡고 좁다란 길을 밟아 올랐다.
(.........) (243쪽)
아, 끈을 들고 뒷산으로 올라갔던 장면, 그게 바로 영혜 언니가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올라갔던 거구나. 나의 독서가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 것을 알게 된다.
같은 장면을 읽고서도 나는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저자는 그걸 생각의 소재로 삼았다니.
해서 한강의 책을 잘 못 읽었던 것을 깨닫게 된다.
그렇게 저자는 한강의 책을 잘 읽어가도록, 한강에서 뽑아낸 생각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다시, 이 책은?
또 있다. 같은 글, 더 읽어보면 이런 글이 나온다.
나(저자)는 언니가 섭식을 중단하는 영혜에게 정말 죽고 싶은 거냐고 물을 때, 언니가 “자신이 오래전부터 죽어 있었다는 것”(201쪽)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묻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40쪽)
바로 이거다. 한강의 작품은 분명 우리말로 쓰여진 책이지만, 독자마다 그 이해가 다르니 이런 책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나름 한강을 읽었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 책을 읽어가면서 부끄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오독, 오독의 행진이었다니!
한강의 작품 그 의미의 속까지, 끝까지 가지 못하고, 그저 수박껍질만 열심히 핥았던 게다.
그러니 이 책은 의미가 있다.
한강을 제대로 읽어보고 싶다면, 한강의 글을 읽고 그 안에서 인생을 찾아내고 싶다면, 이 책을 속속들이, 차근차근 읽어보자. 그러면 비로소 한강이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