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상계엄
이용호 지음 / 삼사재 / 2025년 2월
평점 :
비상계엄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소설은 픽션이다. 가공의 이야기다.
그러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사람 사는 이야기이기에 거기에서 사람 냄새가 나야 한다.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면?
그건 소설이 아니라 위인전이거나 혹은 SF 이거나, 그럴 것이다,
그런 견지에서 본다면, 이 소설집은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다시 말하면, 이 소설집에 실린 소설에서는 ‘어딘가에 그런 사람 꼭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 움직이니 사람 냄새가 나는 것이다.
어딘가에 있는 그 사람
예컨대, <종태가 출마했다>에서 종태 같은 경우다.
이 소설에서 종태는 아예 그런 사람으로 묘사된다.
종태는 (..........) 문상객들의 화투판 한 옆에서 잔뜩 술에 취한 채 곤한 잠에 빠져있었다. 상가에는 꼭 있는 사람이다. 누가 청하거나 청하지 않거나 상가에 가면 항상 적당히 취한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종태는 (.........) (233쪽)
어딘가에 꼭 있는 사람, 있을법한 사람, 그래서 그 주인공에게 정감이 간다.
그런 사람이 불시에 소설 속에서 걸어나와 현실에 등장할 것 같은 생각이 그 소설을 읽는 내내 들었다. 그러니 인물 설정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 사람 또 있다.
<그 남자의 시대>에서 고사장이 그런 사람이다.
고사장은 돈을 떼어먹고 도망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친 인물이다.
아니 떼어먹은 게 아니다. 건설회사 사장이던 고사장이 옛날에 부도를 낸 적이 있다.
부도를 내고 잠적했는데, 부도 나기 전에 자금을 조달하느라 많은 사람들의 집을, 재산을 담보로 삼았던 것이다. <그 남자의 시대>의 화자인 ‘나’도 그렇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다.
고사장의 부탁에 거절 못하고 담보로 내어준 내 부모님의 집은 어떻게 할 것인가. 처가에서 할인해온 고사장의 당좌수표는 휴지조각이 될 것이며 잘나가는 오너에게 잘 보이고 한번 커보려 했던 젊은 날의 어리석은 나와 나의 가족과 내 부모님을 고통스럽게 할 것이었다. (186쪽)
그런데 그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과거에 손해끼친 것을 갚아주기 위해서일까?
그런 경우는 흔치 않다. 당연한 일이지만, 고사장은 ‘나’에게 용돈을 뜯어내기 위해 온 것이다. 그러니 이런 사람이 어디선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저자는 용케도 그런 인물들을 잘 찾아내어 독자들에게 선보인다. 그렇다. 그게 소설인 것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사람, 그런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활동하고 다니니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다, 맞다. 맞아, 이런 사람 본 적 있다!
만나지 않으면 좋은?
그런데 이 소설집에서 생기지 않았으면, 그래서 그런 사람 없었으면 하는 사건과 인물이 있다.
바로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비상계엄>이다. 그 소설의 주인공, 아! 이런 주인공은 되기 싫다. 싫어, 하지만 어쩌랴! 이런 일이 과거에 있었는데!
<비상계엄>은 이런 얘기다.
비상계엄이 선포되었다. 나라는 순식간에 다른 나라가 되어버린다.
군인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고 국회의원들은 군인들의 손에 의해 끌려나갔다. 그리고 국회의사당 본회의장에 갑자기 불이 꺼졌다. 우리나라 실제 상황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소설 속의 야기다. 소설 속의 우리나라에서는 연이어 생각하기조차 싫은 상황이 펼쳐진다.
주인공 대중의 딸 은하는 행방불명이 되고 그 딸을 찾아다니느라 아내는 실성을 해버리고 대중은 생업을 포기한 채 딸을 찾아다니다가......
말 몇마디 입밖으로 한 죄 때문에 포고령 위반이란 죄목으로 잡혀들어간다.
어떤가?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이게 바로 소설의 힘이다. 가공의 사건을 독자들에게 보여주어 마음을 착잡하게 만드는 그게 바로 소설의 힘이다. 그런 일이 만일 생긴다면? 끔찍할 거라는 것을 보여주어 경계하는 것이다.
그런 일, 그런 사람, 우리 주변 어딘가에 있을지도, 생길 수도 있으니, 경계하자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저장의 눈은 매섭다. 한편으로는 온화하고, 자애스럽다.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그런데 그 자애스러운 눈 한켠에는 또 다른 시선이 있다,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 멀리를 내다본다. 마치 양우리를 지키는 목자처럼, 멀리 내다보고 생기지 말기를 바라는 그런 일이 있을까봐, 조그만 먹구름도 그려보여주는 것이다, 혹시라도 양떼들이 비에 젖을까 염려되어서.
이 소설집,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세상 풍경화다. 인물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풍경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