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의 미학 - 죽음과 소외를 기억하는 동시대 예술, 철학의 아홉 가지 시선
한선아 지음 / 미술문화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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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의 미학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일단 이 책은 저자의 친절이 돋보인다.

 

저자는 각 장마다 일일이 미주를 달아놓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어떤 분들은 혼자만 아는 이야기를 하고, 홀로 아는 것을 적어놓고 자세한 설명 없이 지나가는 데, 거기에 비한다면, 이 책의 저자는 독자를 제대로 대접해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글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금방 알게 된다.

 

오목한 곳, 부드러운 곳, 상처입기 쉬운 곳으로 가득한 인간의 몸은.

팔뚝은. 겨드랑이는. 가슴은. 살은. 누군가를 껴안도록, 껴안고 싶어지도록 태어난 그 몸은.

(희랍어 시간, 한강, 123-124)

 

실은, 그 문장은 한강의 작품 희랍어 시간을 열심히 읽는다고 읽었는데, 그만 놓친 문장이다. 해서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그 책을 새겨볼 수 있었다.

 

또한 생각할 수 있는 건, 저자가 애도를 정의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이다.

 

보통 사람들은 애도를 그저 죽음 자체만 연결시키는 데 비하여 저자는 죽음에 이르는 다양한 경로를 거치면서 애도의 깊은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각 장에서 저자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보면 그걸 알 수 있다.

 

취약성과 비폭력, 아동 학대와 돌봄, 대량 학살과 재현, 인권과 인간성,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성폭력과 전시 강간, 이민과 이주.


저자는 그런 주제를 통해서 애도에 이르고 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비극적 사건들을 오히려 나타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장애와 불능화, 동성애와 인류애 항목을 살펴보자.


그저 애도를 죽은 자에 대한 감정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항목은 분명 불필요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장애나 동성애를 통하여, 목적지는 같을지라도 그 애도에 이르는 과정은 다른 것임을 분명히 한다. 즉 그 과정을 세세히 짚고 간다는 말이다. 그렇지 않고 결과만 가지고 애도를 부르짖은들 그 과정이 남기고 간 상처들이 치유될 수 있겠는가, 다시 말하면 재발 가능성은 없겠는가, 하는 점을 짚고 있는 것이다.

 

특이한 점 또 하나, 거기에 그림이 있다.

 

이것은 저자의 전공과 무관하지 않다. 저자의 전공은 미학과 철학이다.

그러니 죽음과 애도를 논하면서도, 그 방법 중 하나로 그림, 사진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우리 앞에 등장한 예술가와 철학자가 눈길을 끌어당긴다.

예술가 또는 단체로는 테레사 마르골레스, 모나 하툼, 하룬 파로키, 이보람, 임윤경, 포렌식 아키텍처, 이토 바라다, 윌리엄 포프 L, 캐럴린 라자드, 이강승, 콜린 와그너, 제니 홀저, 조혜진, 최선 등 모두 14명이 등장하고,

철학자는 9명인데, 주디스 버틀러, 노엄 촘스키, S. 매슈 리아오, 리베카 징크스, 김현경, 재스비르 푸아, 마사 누스바움, 로버트 스클로트, 로베르토 에스포지토가 등장한다.

 

해서 그림과 그림과 어울어져 철학을 같이 공부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저자의 해박한 전공 지식 덕분에 독자들은 예술과 철학을 넘나들며 신나게 인식의 지평을 넓혀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진 어떤가?

 

이곳에서 두 명의 여자가 강간당했습니다.

59, 521.”

(수잔 레이시의 1977년 프로젝트 <53주간>의 기록 사진) (144)



 

이런 사진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이토록 단순한 표기를 통해 행인의 발걸음은 단숨에 달라지기 시작한다. 빠르게 스치거나 서서히 돌아가기, 혹은 잠시 멈추어 서거나 오래도록 머무르기.

그처럼 불편한 진실이 수면 위로 드러날 때 우리는 모두 상이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이런 사건의 결과는?

보스니아 내전에서 벌어진 집단 강간은 결국 살해되거나 불태워졌다. (145)

그러니 강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말, 기억하고 싶다. 해서 적어둔다.

 

우리는 과거에 고통받던 사람들이

그토록이나 기다려온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 발터 벤야민 (80)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 김현경 (85)

 

무용가 도리스 험프리의 말도 기억해두자.

인간의 모든 움직임은 균형을 잃었다 회복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낙하와 회복, 즉 균형을 찾는 과정이야말로 인간의 근원적 움직임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94)

 

다시, 이 책은?

 

다음 말은 한강의 작품 소년이 온다<작별하지 않는다에 바치고 싶은 말이다.

 

그들은 시체가 없으면 범죄도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저는 시신이 없으면 피난처도 없고

그 누구의 마음에도

평화가 찾아올 수 없다고 말합니다. (145)

 

여기서 한강의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는 말은 여기서도 적용되는 명문장이 되는 것이다.

 

읽어갈수록, 애도에 관한 생각이 달라진다.

지금껏 알고 있던 애도는 단순한 사전적 의미에 불과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애도가 저자가 의도한 바처럼, 이런 과정을 거쳐, 애도에 이르게 된 죽음의 과정을 마치 범죄 수사하듯이 살피지 않고서 하는 애도는 그저 겉치레 수식어에 불과하다는 것,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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