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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향 - 가족 3부작
김원 지음 / 문장의바다 / 2024년 12월
평점 :
만리향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3편의 희곡이 실려있는 희곡집이다.
세 편의 제목은 각각 다음과 같다
만선
만리향
만가(輓歌)
상황과 전개되는 내용은 다르지만 세 편의 희곡이 추구하는 것은 가족의 의미다.
가족이 잠시 어려움을 겪지만, 그런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가족은 가족이다’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결같이 각 희곡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오히려 서로가 가족임을 확인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해서 읽을만하다.
해서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이 지천이다.
아침에 눈뜨면 제일 먼저 하는 생각이 뭔지 알아? 오늘은 또 뭘해서 먹이나. 그 생각뿐이다. (15쪽)
첫 번째 작품 <만선>에서 엄마가 하는 말이다.
환상통 (32쪽)
그 지긋지긋한 환상통. 남들은 길어봤자 10년이면 없어진다는데 (........)
자다가도 발이 아파 손을 대면 아무것도 없어. 잘린 발이 아직도 붙어있는 것처럼 아픈데, 네가 그걸 알아? (32쪽)
그렇게 속은 터지는데, 밤만 되면 잘린 다리가 꼭 있는 발처럼 계속 아프니 사람 환장하지. (81쪽)
최선의 예의는 지켜야죠. 유서 하나 없이 대책 없이 죽으면, 나중에 경찰들이 자살 동기 알아내는데 고생할 거 아니야. (66쪽)
만가(輓歌)는 기록으로 남길만 하다.
특히 마지막 작품인 <만가>는 잊혀져 가는 우리네 장례 풍습에 대한 회고라 할 정도로 여기저기 애쓴 흔적이 많다. 요즘 사람들은 그런 우리네 옛풍습을 알기나 할까. 그래서 <만가>는 우리 풍습의 기록이란 측면에서도 새겨볼 만하다.
그런데, 이건 확인해봐야겠다. 만일 이게 사실이라면, 왜 우리는 그런 일본 풍습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을까?
망자 삼베 수의 입히는 거, 왜놈들이 만든 풍습이라고 싫다셨어. 그냥 아끼시던 옷 입고 가시겠다고. (192쪽)
등장 인물에게 이름을 허(許)하라
그런데 3편의 희곡을 다 읽고 나서, 누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를 헤아려 보니, 이렇다.
<만리향>의 둘째 아들이다.
그는 주어온 아이다. 이미 돌아가신 아버지가 받을 돈 대신 받아두었다가 그만 돌려주지 못하고 키우게 된 아들이다. 그걸 그는 나중에서야 알게 된다.
그 사실을 알게 되는 장면도 흥미롭다.
너 형 밉지?
응
근데 싫진 않지?
.....같은 말 아냐?
형이 너 얼마나 끔찍이 생각했는지 모를거다. (121쪽)
치매에 걸려 기억력이 오락가락하는 어머니에게서 이런 대화를 시작으로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 (124쪽)
그리고나서 형과의 추억이 떠오르게 된다.
그걸 알고 나니까, 형이 왜 자기를 더 살뜰하게 대해주었는지를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 현재의 고단한 형편에서 그 것을 알게되니, 현재의 상황이 다시 해석되는 것이다.
부실하다 생각하던 가족이 새옷을 입는 순간이다. 그렇게 해서 가족은 새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그리고 치매에 걸린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셋째의 친구를 끌어들여, 한판 굿을 벌인다. 연극으로 굿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 반전이 일어난다.
셋째의 친구가 와서 연극으로 굿을 하며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린다 했는데, 그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엄마가 그걸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애틋하게 가족의 의미를 찾아내는 희곡, 기억해주고 싶은데, 이런 문제가 생긴다.
두 번째 작품의 제목이 무언지 아는가?
<만리향>이다.
여기서는 첫째가 운영하는 중국집 상호다. 뜻은 만리향이란 화초에서 가져와 향이 멀리 풍겨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걸로 상호를 지은 것이겠다. 그러니 그 뜻은 두 가지, 중국집 상호와 그리고 원래 화초 이름이다.
이 작품을 기억해두고 싶은데 작품 제목이 너무 특별하지 않다. 평범하다 못해, 거의 도시마다 하나 정도는 있는 중국집 이름이니 말이다. 실제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도 하나 있다. 거기서 식사를 한 기억도 있는 곳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그 작품 <만리향>의 둘째 아들, 기억해두고 싶은데 이름을 모른다. 아니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작가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탓이다.
이런 생각해보자.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햄릿>, 작품 제목이자 그 작품의 주인공 이름이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만일 그 이름을 짓지 않고 이렇게 했다면?
'덴마크 왕자'. 그리고 햄릿의 친구인 호레이쇼을 역시 이름을 짓지 않고, 이름 대신 ‘덴마크 왕자의 친구’ 라고 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셰익스피어가 이름을 지어주지 않아서 <덴마크 왕국의 왕자>라고 알고 있다면? 지금까지 그 작품은 오래오래 기억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작품들의 등장인물들, 아래와 같은 인물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 하나씩 지어주면 어떨까? 이름 짓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는가?
만선 - 아들
만리향 - 첫째, 둘째, 셋째
만가(輓歌) - 첫째, 둘째, 셋째, 막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