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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윤철 지음 / 정보출판사 / 2024년 9월
평점 :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
이 책은?
이 책 『나를 닮은 타인 그 이름 가족』은 수필집이다.
저자는 윤철, 공무원으로 정년퇴직을 한 저자는 수필가로 화려한 변신을 했다. 이 책이 벌써 세 권째 펴내는 책, 게다가 그 내용으로 보면 ‘화려한’ 이란 수식어가 아깝지 않다.
이는 저자의 독특한 수필관(隨筆觀)에 기인한다.
저자는 ‘수필을 쓴다’라고 하지 않고 ‘수필을 한다’고 한다. (131쪽)
그간 여러 책을 읽어오는 동안 수필도 제법 읽었다고 자부하는데 그 중 ‘수필을 쓴’ 책은 많이 보았지만, ‘수필을 한’ 책은 이 책이 처음이다.
왜 저자는 수필을 한다고 하는 것일까?
수필을 하면서 일상생활에서 건성건성 지나쳤던 것들에 대해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고 관심을 가지며, 사소한 일까지도 자세히 관찰하는 습관이 생겼다. (131쪽)
그렇게 수필을 대하는 자세가 다르니, 수필을 쓴다는 말 대신에 수필을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저자는 수필을 한다는 것의 의미를 더 자세히 밝힌다.
수필을 한다는 것은 글쓰기가 기본이다. 자신의 진솔한 모습을 찾아 끊임없이 읽고, 지치도록 사유하며, 석공이 바위 속의 부처를 찾아내듯 자신의 경험 속에서 지혜를 체득할 수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다. 글쓰기는 나이와도 관계없다.(132쪽)
헌데 글쓰기, 저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라 하지만, 그 앞에 전제가 있다. 그 전제를 저자는 충실히 채워가고 있는데, 그 전제 중에 이런 것 유의해야 한다.
바로 ‘지치도록 사유하며’ 라는 부분이다.
많은 수필가들이 이 과정을 밟지 않고 있다. 지치도록 사유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저 적당히 겉에 보이는 것에 살을 적당히 붙여서 마치 엄청난 사유를 한 것처럼 겉포장만 그럴듯하게 쓴 수필이 넘쳐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장안의 많은 수필가중 저자의 수필은 그래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글은 일단 문장이 좋아야 한다.
지난 번 저자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느낀 게 있다. 문장이 좋다는 것.
그래서 잘 읽힌다.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문장이 좋아, 글에 빠져들게 되고 그다음 내용도 눈에 들어오게 된다.
저자는 문장을 잘 다룬다. 글을 쓰는 게 보통이 아니다.
글을 가지고 논다, 는 말이 그대로 들어맞는 경우다.
이런 문장 읽어보자.
나의 하루는 모닝커피 한 잔으로 시작된다. (..........) 커피 위에 날달걀 하나 톡 깨어 노른자만 넣으니, 노란 보름달이 동동 뜨며 잔이 넘실거린다. 진한 갈색과 노랑의 조합이 몽환적 비주얼을 만들어 낸다. 이왕 넣는 것, 잣 대여섯 알을 더 넣고 휘휘 저으면 아버지 시대, 그 시절의 모닝 커피가 된다. (22-23쪽)
이글, 커피를 마시듯 입에 머금어보자. 어떤 맛이 우러나오는지? 운율이 살아있으니 마치 구성진 시조 한편 읊는 듯, 가락이 되어 흘러나오지 않는가? 커피의 몽환적 비주얼과 더불어 구성진 멜로디가 화음되어 흘러나오는 그야말로 아버지 시절의 모닝 커피가 잔에 넘실대는 기분이다.
이런 생각, 그래서 얻는 깨달음
마음은 찾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이란다. 여러 갈래로 뒤엉킨 마음을 한 가닥 한 가닥 참빗으로 빗어넘기며 쓸모없이 넘치는 마음은 길가 진달래꽃 옆에 잠재워둔다. (100쪽)
이 글, 밑줄 굵고 굵게 그었다. 마음을 빗질하다!
살면서 마음이 여러 갈래로 뒤엉킨 적이 어디 한두번인가? 그럴 때마다 내 마음 정처없이 헤매곤 하는 일, 그게 일상다반가 되었는데, 이제 알았다. 깨달았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내 마음속에 옛날 어머니들이 쓰던 참빗 하나 갈무리해 두었다가, 그 빗으로 한가닥 한가닥 차분하게 빗어내리면, 세상 번뇌에서 벗어날 것도 같다.
혼자라는 이유로 무작정 달려드는 외로움은 그리움을 농축해서라도 무던하게 견딜 수 있지만, 무리에 둘러싸여서 느끼는 외로움은 어찌해야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161쪽)
흔히들 군중 속의 고독을 말하는데, 이 문장처럼 그 고독의 실체를 분명히 한 것, 처음이다.
그리고 그 처방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을 162쪽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압권이요, 백미인 글은?
여기 실린 저자의 글, 모두 한결같이 밑줄 긋고 새겨볼 만하다.
그래서 그 중에서 하나, 한 꼭지를 고르라면 이것을 꼽고 싶다.
<아내의 은퇴> (55쪽)
이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살림남, 그 정의는 이렇다. 집에서 살림을 하는 남자를 줄인 말이다.
저자 스스로 은퇴한 뒤에 살림남이 되었다며 자기 소개를 살림남이라 한다,
그리고 그 다음 저자의 생각은 이렇게 이어진다.
정년퇴직하니 나는 한가해졌는데, 아내는 내 밥을 챙기느라 더 바빠졌다. 아침 먹고 나면 금세 점심 챙겨야 하고, 점심 설거지하고 나면 저녁상 반찬 준비에 온종일 주방을 벗어날 틈이 없는 것이 전업주부의 일상이다.
그런 관찰 끝에 저자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도 내가 직장에 나갈 땐 낮에는 여유가 있었다. 그 시간에 볼 일도 보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도 떨고, 취미생활도 즐겼으련만, 내가 집에 들어앉으니 그런 시간마저 잃게 되었다.
그 다음에 저자는 어떻게 했을까?
이건 우리나라 모든 남성들이 알아두어야 한다. 어쨌거나 시간이 흐르면 모든 남자들은 현업에서 은퇴할 것이니 남성 누구든지 남일이라 여기지 말고, 내일이라 생각하고 명심해두자.
자세한 것은 이 책 57-58쪽을 참고하면 될 것인데. 굳이 길게 말할 필요없다.
그 글꼭지의 제목이 벌써 웅변으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의 은퇴>
다시, 이 책은?
이 책에는 읽을 거리, 생각할 거리가 차고 넘친다.
위에 인용하고 적어둔 것들은 그저 일부분에 불과하다,
인용하지 못한 글, 언급하지 않은 많은 이야기들이 여기저기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이 책에 특별한 자리를 마련해 두었다.
<생각 한스푼>이란 이름 아래, 독자와 함께 생각을 한걸음 더 깊이 들어가고 싶은 열망을 담아놓았다, 해서 독자들은 이 책으로 생각이란 게 이렇게 깊을 수 있구나, 해서 또한 기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거둘 수 있게 된다.
위에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다시 말하는 수고 아끼지 않으련다.
장안의 많은 수필집 중 저자의 수필은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