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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쓴 메일함 - 아버지와 아들의 말로 못한 진짜 이야기들
김기우 지음 / 창해 / 2024년 12월
평점 :
네게 쓴 메일함
이 책은 소설이다. 소설집. 단편,짧고 짧은 단편소설들을 모아놓았다,
그런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아버지와 아들이 메일로 서로 주고 받고 하는 형식을 취하는데 각 편의 내용이 소설인 것이다.
일단 기본 설정은 아버지는 아파트의 경비원, 아들은 소설가 지망생이다.
아파트 경비원은 만나게 되는 사람이 많다, 아파트 주민만 해도 한 둘이 아니니. 거기에서부터 이야기거리가 풍성하다, 또한 아들은 소설가를 지망하며 글을 쓰고 있으니, 주변의 어떤 일들도 소설로 만들어내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주거니받거니 하면서 이야기들을 만들어나간다.
이 소설, 재미있다.
소설이 읽히려면 무엇보다도 재미있어야 한다. 거기에 의미까지 찾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
이 책은 재미도 있고 또한 의미도 있다.
가령 이런 이야기. <감성 상각>
남편은 아내를 위해 가방을 샀다. 180만원 짜리 가방이다. 그들 형편에 비싼 명품 가방이다. 그런데 그렇게 비싸게 샀다고 하면 아내한테 한 소리 들을까봐, 원래의 쇼핑백을 버리고 귤 봉지에 담아가며 7만원짜리 가짜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요즘 말로 짜가 가방인 척 한 것이다.
그런데 다음날 문제가 생긴다. 아내가 그게 정말로 가짜인줄 알고 지인에게 35만원에 넘겨버린 것이다, 아내는 아내대로 좋아라 한다. 무려 28만원이나 공돈이 생긴 거라며 좋아한다.
그러니 남편은 속이 탈 수밖에. 해서 남편은 그 가방을 회수하러 나선다. 가방의 행선지를 추적하면서 찾고 찾아가는 이야기. 남편의 속타는 여행이 시작된다. 결론은? 직접 책을 통해 확인하시라
또 있다. 재미있는 소설 또 있다. <봄맞이 대청소>
양희의 할머니와 엄마는 가구 취향이 다르다. 엄마는 가구 배치에 아주 민감하다,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움직여 놓으면 바로 그걸 알아차리고 화를 내는 주의다. 그런데 할머니는 그런 엄마가 못마땅하다. 그걸 보는 이 소설의 주인공 양희. 어느날 엄마가 외출한 사이에 할머니가 대대적으로 가구를 손본다. 배치는 물론이거니와 가구도 할머니가 좋아하는 취향으로 바꿔버린다. 이윽고 엄마가 집에 들어오는데.........
이 소설은 재미도 의미도 놀라울 정도로 수준이 있다.
거기에 더해서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혹할 부분이 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작곡한 노래가 여럿 들어있다.
정말 악보를 보면서 한번 불러보고 싶은 노랫말이 보인다. 내가 만약 작곡 재주가 있다면 오선지에 그 가사를 음표로 옮겨보고 싶어질 정도다.
그러니 음악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여기 실린 노래들을 한번쯤 연주하거나 불러보고 싶어할 것이다, 저자의 재주가 부럽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재주에 더하여 작곡까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밑줄 긋고 새겨볼 말들
또 있다,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문장에 철학이 들어있다.
그저 이야기를 끌어가느라 허겁지겁 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심혈을 기울여 사색을 집어넣고 그 사색에 철학을 담아 놓았다. 이 책에서 소설도 재미나게 읽어가면서 어느새 철학의 향기를 맡게 되는 것이다,
채집은 살아있는 것을 수집하는 것이다. (28쪽)
사람들은 희망하고 욕망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 (46쪽)
인터넷이 우리 기억을 넓혀줬잖아. 그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지 않게 됐다는 학자도 있더라. 정보를 우리 기억 바깥에 둘 수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겠지.(66쪽)
사랑하는 사람은 서로 미안하니까 미워하기 쉬워. (150쪽)
사람은 기억 때문에 슬프다. (191쪽)
그래서 이런 문장에 가서는 정말 이 문장이 이 소설을 그대로 평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될 정도다.
서사와 묘사, 설명과 논증, 문장 하나하나가 정말 생생해. (192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짤막한 양에 비해 있을 것은 다 들어있는, 아니 오히려 제법 긴 단편, 중편에 비해서 맛있는 대목이 훨씬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해서 이 책을 요리로 비유한다면 아주 맛있는 소품 요리라 할 수 있다. 거기에 철학의 향기까지 양념으로 담고 있으니, 별미 중의 별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