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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한 화가들 - 살면서 한 번은 꼭 들어야 할 아주 특별한 미술 수업
정우철 지음 / 나무의철학 / 2024년 11월
평점 :
내가 사랑한 화가들 리커버 에디션
그림은 그림만 본다고 다 보는 게 아니다. 그림 속의 그림을 보아야 제대로 보는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그림 속의 그림을 보기 위해, 화가의 인생을 들여다 본다. (5쪽)
몰랐던 화가, 베르나르 뷔페 (245쪽 이하)
책을 읽으면서, 가장 기쁜 일은 그간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알지 못했던 지식이라든지, 혹은 인물이라든지, 그렇게 새롭게 아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런 기쁨을 이 책에서 얻는다. 바로 베르나르 뷔페라는 화가를 만났기 때문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화가들 모두 11명인데, 그 중 10명은 작은 지식이나마 어떻게 해서든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오직 한 사람 베르나르 뷔페만 모르고 있었다.
베르나르 뷔페, 그에 관하여 특히 기록해 둘 것이 있다.
1980년 후반에 그가 그린 그림 소재들이다.
이때부터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문학작품들을 그림으로 옮기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쥘 베른의 <해저 2만리>,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이 책 덕분에 그의 그림, 물론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것들도 찾아 볼 기회가 되었다.
저자에게 감사드린다.
모딜리아니가 연인의 눈동자를 그려넣지 않은 이유
다음 그림 두 점을 살펴보자. 무엇이 다른가?
왼쪽 그림의 인물은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오른쪽 그림은 눈동자가 선명하다.
이 그림의 모델은 모딜리아니의 연인 잔 에뷔테른이다.
그는 왜 연인의 얼굴을 그렇게 다르게 그렸을까?
왼쪽 그림을 보고 잔이 모딜리아니에게 왜 눈동자를 그리지 않았는지 물었다.
답변은 이렇다.
“당신의 영혼을 알게 되면 그때 당신의 눈동자를 그리겠다.” (78쪽)
나중에 그는 잔의 눈동자를 그린다. 오른쪽 그림이다.
그때 이 작품을 보고 잔은 너무나 행복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다한다.
이 그림 앞에서 모딜리아니는 잔에게 천국에서도 자신의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하고, 잔은 기꺼이 받아들인다.
나치에 피해 받은 화가들
1940년에 샤갈의 시민권 박탈 (33쪽)
나치가 프랑스마저 점령하면서 샤갈은 어렵게 취득한 시민권을 박탈당했다.
설상가상으로 그가 머물고 있던 프랑스의 비시에는 친독 프랑스 정부가 세워진다. 비시 정부에 속한 프랑스인들은 독일에 잘 보이기 위해 유대인들을 잡아넘기기 시작한다.
이에 샤갈은 다시 짐을 싸서 미국을 향한다.
무하, 나치의 고문받고 죽게 된다. (111쪽)
나치는 무하의 작품을 불태우려한다. 이를 그의 자녀들이 지켜낸다.
그러자 나치는 무하를 납치해 고문한다. 당시 무하의 나이 79세, 게다가 그는 당시 폐렴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나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고문한다. 무하는 간신히 목숨을 유지한 채 풀려나지만 고문의 후유증과 폐렴 악화로 집에 돌아온지 며칠 되지 않아 숨을 거둔다.
케테 콜비츠
나치는 콜비츠가 프로이센 예술 아카데미에서 탈퇴하도록 강요한다. 또한 그는 독일 내에서 작품을 전시할 권리,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마저 박탈당한다.
콜비츠는 아들과 손자를 전쟁으로 잃게 된다.
전쟁을 막기 위해 평생 예술로 소리를 냈던 콜비츠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보지 못하고 전쟁이 끝나기 2주 전인 1945년 4월 22일, 눈을 감는다. (208쪽)
화가의 음악가들
무하가 그린 그림, <체코음악의 판테온>을 살펴보자.
이 그림에는 유명한 체코의 음악가들이 등장한다.
수염을 기른 사람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 옆에 종이와 펜을 들고 있는 사람은 안토니오 드보르작이다. (111쪽)
또한 그의 인생을 살펴보면, 특이한 점이 보인다.
무하의 인생 전체를 알지 못하고 파리에서 활동했던 시기만 안다면 그를 단순히 성공한 상업 작가로만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하는 상업예술과 순수예술을 모두 사랑한 작가였어요. 상업예술을 통해서는 가난한 사람들도 거리에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게 했고, 순수예술을 통해서는 억눌렸던 민족의 자긍심을 표출해 많은 자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죠. (113쪽)
맞다. 그간 내가 가지고 있던 무하에 관한 지식은 겨우 파리에서의 행적뿐이었다. 그가 민족의 영웅으로 거듭난 것, 그리고 그의 작품이 체코의 국보가 되었다는 사실, 이 책으로 알게 된다.
다시, 이 책은?
저자가 화가들의 삶을 들여다본 결과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위대한 예술가라고, 천재라고, 거장이라고 추앙받는 화가들의 인생을 공부하면서 제 나름대로 찾은 그들의 공통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입니다.
그들은 삶에 버거운 고통이 찾아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갔습니다. 그 덕분에 거장이라는 반열에 오를 수 있었죠. 그들에게 어떤 아픔이 있었고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공부할수록, 때로는 공감이 됐고 때로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화가들의 그림이 제 마음속에 쑥 들어와 있었습니다.” (6쪽)
그래서 독자인 나는 화가들이 어떤 고난을 겪었으며, 그런 고난을 겼으면서도 남기고자 했던 그 무엇을 찾아 읽을 수 있었다. 저자의 친절한 해설 덕분에 그들의 인생과 그들이 남기고 간 그림을 한 점 한 점, 의미있고, 재미있게 보았다. 재미와 의미를 찾아냈으니 더더욱 가치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