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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제아제 바라아제
한승원 지음 / 문이당 / 2024년 10월
평점 :
아제아제 바라아제
이 소설은 두 명의 주인공이 있다.
진성 (속명은 강수남)과 순녀 (법명은 청화), 그리고 그 가운데 은선 스님이 있다.
진성은 초월적인 이상 세계를 좇는 반면 청화는 파계하고 세속을 떠돈다.
그러면 그 둘중 누가 더 진여를 찾아가는 사람이었던가?
그 답은 진성이 은성 스님의 다비식 앞에서 하는 이런 물음 속에 들어있다.
스님은 어찌하여 저의 만행을 우습게 여기시고, 순녀의 미망을 그렇게 값지게 받아들이셨습니까? (418쪽)
진성은 깨닫는다. 참된 수도의 모습이 성과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소설에서 은선 스님은 그 두 명의 중심을 잡아주는 인물이다. 물론 독자들에게 참된 수행이 무엇인지, 부처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줄거리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또 줄거리를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지도 모르니, 몇 가지만 적어두고 싶다.
이 소설은 그 두 명의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문장이 무척 빠르다.
어떤 때는 서너 페이지에 몇 년의 세월이 흐르기도 하고, 어떤 페이지에서는 몇 명의 인생이 한꺼번에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니 읽을 적에 앞뒤를 잘 살펴가며 읽어야 한다.
그날 밤 할머니는 주지에게 아들의 머리를 깎고 승복을 입혀 달라고 말했다. 평생 동안 아주 중노릇을 하게 해달라고 청했다.(196쪽)
순녀 할머니가 순녀의 아버지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다. 그 앞뒤로 순녀의 가족사가 숨가쁘게 진술되고 있다.
그런 사건의 빠른 흐름 속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 마음의 변화.
그 역시 빠르게 변한다. 대체 어느 게 속마음이고 어떤 게 현실로 움직여지는 마음인지. 역시 정신을 잘 챙겨가며 읽어야 한다.
그러니 줄거리를 쫓아가는 식으로 아 책을 읽을 게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그들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심리 여행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꾸중을 들은 이튿날부터 순녀는 혀를 물고 공부했다.
순녀는 책 속에 검은 활자들 위에서 자꾸만 먹물들인 옷에 바랑을 짊어지고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을 만나곤 했다. 머리 박박 깎은 그 스님은 비탈진 골목길을 내려가고 있었고,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고. (생략) (99쪽)
새벽녘에 일어나 큰고모한테로 가버려야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다 버리고 큰고모처럼 머리를 깎고 중노릇을 하며 살아가자.
무슨 소린가. 현종 선생의 고향으로 쫓아가야 한다. 그의 텅 빈 구덩이를 채워 주어야 한다. 그가 그의 고향으로 가 있지 않으면, 가 있을 만한 곳을 모두 뒤져서 그의 안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129쪽)
그런데 그 두 주인공들의 인생 행로가 그리 썩 좋지 않다. 왜 그리 풍파가 많은지, 불교에서는 본래 인생을 고해에 비교하긴 하지만, 그래도 읽기가 힘들다. 그러니 독자들도 두 주인공처럼, 두 주인공의 행적을 쫓아가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여기서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미리 나타난다.
순녀가 학교에 새로 부임해온 국어 선생님을 만나게 된다. 이름은 현종, 외자다.
방학 때 우연이 만난 두 사람, 여행을 같이 하게 되는데, 현종 선생의 경우. 가슴에 품고 있는 아픔이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광주가 페스트 창궐하는 오랑 시처럼 되어 있었을 그 때..... 총구를 피해서 골목길로 골목길로 달려서 집으로 돌아왔지. 무서웠어.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지. 살고 싶었어. 그런데 집으로 들어오니, 그 사람이 보이지 않았어. 나를 마중 나간 모양이다, 하고 대문간을 나가서, 우리집으로 들어서는 골목길 어귀, 거기서 한길까지 더듬어 보았지. 하수구 속에 누군가가 머리를 처넣고 있어서, 달려가 일으키고 보니 그 사람이야. 임신 팔개월째였는데.......(118쪽)
이 대목을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의 프롤로그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참고로, 이 소설의 작가 한승원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한강의 아버지다.
다시, 이 책은?
제목 『아제아제 바라아제』는 무슨 뜻일까?
‘가자, 가자, 더 높은 깨달음의 세계로 가자’,
‘고해 건너 저 진여의 언덕으로 가자’ 는 뜻이다. (425쪽)
그래서 이 책에는 주인공들이 모두다 용맹정진하여 더 높은 깨달음의 경지로 가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또한 그 방법 어느 게 옳은 것인지 정해진 것이 없다.
진성과 순녀, 그 둘은 모두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진선은 여전히 법명인 진성으로, 순녀는 법명 대신 속명인 순녀로 이 소설을 살아나간다.
독자들도 그들의 뒤를 따라가며,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우리네 인생의 모습이니까.
순간 순간 용맹정진하며, 때로는 만행하며 또 때로는 미망속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