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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예대의 천재들 - 이상하고 찬란한 예술학교의 나날
니노미야 아쓰토 지음, 문기업 옮김 / 현익출판 / 2024년 7월
평점 :
동경예대의 천재들
류이치 사카모토가 쓴 책 『음악으로 자유로워지다』를 읽은 적이 있다.
류이치 사카모토는 일본의 음악가인데, 작곡가, 영화 음악가, 영화배우, 모델, 사회운동가 등 수많은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닌다.
그가 다녔던 학교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인 동경예술대학이다. 줄여서 동경예대.
그는 동경예대를 1970년에 입학했다. 그가 다녔던 학교의 생활이 그 책에서 멋지게 펼쳐지는 바람에 동경예대가 어떤 학교인지 무척 궁금했었다. 바로 이 책이 그런 나의 궁금증을 자세하게 풀어주었다. 자세하고, 재미있게!
재미있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저자는 직접 학교를 탐방하면서 각 학과의 학생들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옮겼는데, 유머러스한 필체로 써 내려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글도 유머러스하게 쓰고 있지만 그 내용 자체도 재미있는 게 많다. 너무 많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자.
타악기 연주자를 발끈하게 만드는 말이 있는데, 이런 말이다.
트라이앵글은 누가 두드려도 똑같잖아, (149쪽)
연주회에 가보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 맨 뒤쪽에 타악기 연주자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트라이앵글 주자도 있다.
곡에 따라 트라이앵글 주자도 가끔 트라이앵글을 치는 경우도 있는데, 그 때 과연 트라이앵글의 연주 솜씨를 좋다별도다 평가할 수 있을까?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나 같은 비전문가의 차원에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 그런 비전문가 입에서 나올만한 무식한 발언이 ‘트라이앵글은 누가 두드려도 똑같잖아’인 것이다. 그걸 들으면 전문적으로 치는 주자로서는 발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일단 예술 문외한에게 좋은 책이다.
예술에 대한 이해를 돕게 해준다.
미술과 음악이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동경예대에는 미술 캠퍼스에 건축과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귀한 깨달음도 얻게 된다.
건축과에 들어와서 처음 받은 과제는?
바로 의자 만들기였다는 것이다. (97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어떤 깨달음이 왔다. 가구와 건물의 상관관계 말이다.
건축의 최소 단위는 의자라는 것이다. 인간의 몸과 물건을 어떻게 관련지을 것인가. (97쪽)
인간의 몸과 물건, 그리고 방, 그걸 넘어서 건물,,,, 이렇게 범위를 넓혀가다 보니, 우리 몸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런 공부하는 곳이 바로 건축과, 미술 캠퍼스, 예술대학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예술에 대한 감각을 익혀가다가 보니, 어느새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특히 음악에 대하여.
예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독자에겐 더좋다.
몰랐던 여러 가지를 알게 되는 계기가 된다.
온음표의 필순을 말하라.
답은?
먼저 위에서 왼쪽 아래로 반원을 그리고, 이어서 오른쪽 아래로 반원을 그리는 순서 (50쪽)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콩나물 대가리 그리는 데에도 마치 한자 쓸 때 획순이 있듯이 쓰는 순서가 있다는 것이다. 아무렇게나 쓱쓱 긋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화성과 악전
어떻게 화음을 이어 나가야 아름다운 음색이 되는가, 다 법칙이 있거든, 그 법칙을 외우고 응용해서 문제를 풀어야 해. (49쪽)
호른 연주자
네 명이면 두 명은 고음역대, 나머지 두 명은 저음역대 (158쪽)
몇 번 연주회에 가본 적이 있는데, 그러고 보니 오케스트라 호른 주자들이 여러 명이었던 기억이 난다. 여러 명의 호른 주자들이 고음역대와 저음역대로 파트를 나누어 연주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문외한인 나로서는 귀만 가지고는 그런 파트 구별이 불가능했으니까.
그러니 이렇게 얻어들은 지식을 가지고 다음 번에 한번 호른 연주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볼까 싶다. 과연 그런 구별이 내 귀로 가능할까?
다시, 이 책은?
저자가 휘파람을 부는 음악과 학생과 나눈 대화다.
휘파람을 부는 데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여러 방법을 사용해서 다채로운 표현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런 여러 가지 연주법을 터득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한 줌에 불과하다며 이런 발언이 나온다.
다양한 연주법을 터득하면 세계가 확 넓어진다. (75쪽)
그렇게 세계가 넓어지는 방법이 어디 연주법뿐일까?
문외한인 나같은 독자도 이 책으로 예술 대학을 거닐어보니 정말 신세계가 따로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세계가 정말로 별천지, 새로운 세계다.
그런 예술대생이 열심히 공부해서 높은 경지의 예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이렇게나 열심이다,
피아노 전공자와 저자의 대화다. 경청해보자.
무조건 연습이죠. 수업이 없는 날에는 대체로 아홉 시간은 자주적으로 연습을 해요. 중간에 휴식하면서 세 시간씩 세 세트로요.
자율 연습을 매일, 그것도 아홉 시간이나요?
하루만 안쳐도 실력은 3일 전으로 퇴보한다고들 하니까요. (115쪽)
괜히 조성진이겠는가, 밤잠도 안 자고 열심히 피아노와 씨름한 결과가 오늘날의 그들을 만든 것이다, 이 책. 그렇게 우리에게 예술에 대한 이해, 예술에 대한 존경심, 그리고 친밀함 이렇게 3박자를 알려주는 의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아름다운 지휘로 미술대학과 음악대학 학생들이 어울려 함께 등장하여 연주하는 한편의 멋진 음악을 들었다. 해서 브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