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남녀, 욕망과 삶
이문균 지음 / 밥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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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남녀 욕망과 삶

 

<음식남녀>의 의미는?

 

전에 영화 <음식 남녀>를 본 적이 있다.

기억하기로는 딸 셋을 둔 남자, 호텔 주방장인 주인공이 딸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면서 살아가는 이야기, 잔잔히 흘러가는 줄거리를 통해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영화였다.

 

그 제목, ‘음식남녀의 의미를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되었다.

그게 단순하게 음식만 의미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의 욕망 가운데 가장 강한 욕망이 무엇일까? 옛날 중국 사람들은 음식 먹는 것과 남녀관계가 가장 커다란 욕망이라고 했다. 그러한 생각이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있는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말에 담겨있다. ‘음식남녀관계가 인간의 근본 욕망이요, 삶의 필수 조건이라는 것이다. (4)

 

이걸 분명하게 하기 위해 <음식 남녀>의 의미를 찾아보았다.

 

음식남녀(飮食男女)라는 말은 예기(禮記)』「예운(禮運)편에 "음식과 남녀는 사람의 큰 욕심이 존재한다 [飮食男女 人之大慾存焉]"고 한 데서 비롯되어, 인간의 가장 본능적 욕정을 가리키는 것이 되었다. 즉 식욕과 성욕이 인간의 큰 욕정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음식남녀는 음식과 남녀를 합하여 인생의 근본 욕망을 의미하는 말인 것이다. ()과 성()이다.

 

그런 음식남녀, 저자는 그것의 진면목을 알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망원경, 현미경을 들이댄다.

 

소설 속 음식이 있는 삶의 풍경

영화 속 음식남녀

한계 상황 속의 음식 인생

이 사람 예수의 인생 식탁

 

이 책 덕분에 그간 설렁설렁 허투루 읽고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먼저, 소설에서는?

 

한강의 <채식주의자> :

 

작가인 한강은 이 소설을 인간의 폭력성을 거부해 식물이 되려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정의했다. 식물이 되려는 이유가 인간의 폭력을 거부해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폭력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먼저 육식 동물을 식물(食物)로 만들기 위해 가해지는 폭력이 있다.

짐승을 잡아 음식의 재료로 만들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인간의 폭력이 수반된다. 짐승의 목숨을 끊기 위해서는 폭력이 있어야만 되는 것이다. 그런 폭력이 하나요. 두 번째 폭력은 그런 육식을 거부하는 주인공에게 강제로 고기를 흡입시키기 위해 폭력이 자행된다.

 

결국 주인공은 그런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식물(植物)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그리스 신화에서 식물이 되고자 했던 님프 다프네.

 

에로스의 화살을 맞게 된 아폴론은 다프네를 보자마자 한눈에 반해 따라다녔지만 다프네는 아폴론을 보고 도망다녔다. 그럼에도 아폴론이 자신을 포기하지 않고 지나치게 쫓아다니자 자신의 아버지인 페네이오스에게 부탁해서 월계수로 변해 버렸다는 그리스 신화.

 

그 신화에서도 남성인 아폴론의 일방적인 구애 - 일방적인 것은 폭력이니까 - 에 저항해서 식물로 변한다는 줄거리가 <채식주의자>의 근저에 있는 폭력에 대한 저항과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그중 또 하나, <레미제라블> :

 

이 책에서 환대의 의미를 생각해보게 된다.

 

저자는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에서 가져온 이런 말로 환대의 의미를 규정한다.

 

<환대란 타자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 혹은 사회 안에 있는 그의 자리를 인정하는 행위이다. 환대받음에 의해 우리는 사회 구성원이 된다, 비로소 사람이 된다. 누군가를 환대하는 것은 그를 자기 공간으로 들어오게 한다는 것, 그에게 접근을 허락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75)

 

구체적으로 <레미제라블>에서는 환대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식탁에서 나타난다. 장발장이 가석방되어 사회에 나오게 된 후 그 누구도 그를 반겨주지 않았다. 문전박대만 당했던 것인데, 유일하게 주교관의 주교가 그를 맞아들였다.

그리고 그에게 차려준 음식, 그건 환대의 식탁이었다. 주교관에서 장발장에게 차려준 음식은 다음과 같았다.

 

물과 기름과 빵과 소금을 넣은 수프, 약간의 비계, 양고기 한 조각, 무화과, 신선한 치즈, 커다란 호밀빵 한 덩이. 그런 신부의 평소 식단에다가 오래된 모브산 포도주 한 병을 추가했다. (76)

 

이런 음식과 <춘향전>의 남자 주인공 이도령이 어사가 되어 남원 고을에 와서 변사또의 생일잔치에 끼어들었을 때, 받은 밥상을 비교해보면, 주교의 환대가 어떤 것이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개다리 소반에, 닥나무 젓가락, 콩나물 깍두기, 막걸리 한 사발 (248)

 

그렇게 음식은 인간이 인간을 대할 때에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다음 영화에서는?

 

먼저 <음식남녀 (飮食男女)> :

 

<음식남녀(飮食男女)>를 그저 음식을 먹는 남과 여로만 생각했던 나의 단순함을 이 책을 읽으면서 수정해본다. 그렇게 하고 영화를 다시 보니, 그제야 딸들의 다른 모습, 그리고 주인공 남자가 재혼한 후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그러니까 그 영화를 허투루 본 것이다.

 

인생을 알기 위해서는 철학책을 읽을 것이 아니라 소설이나 영화를 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소설과 영화에서 보여주는 인생이란 결국 하나로 귀결되는 이야기. 남녀가 만나서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4)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인생이란 결국 남녀가 만나서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이런저런 사건을 만들어가는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영화 <음식남녀>를 통해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에서는?

 

이 영화를 전에 본 적이 있는데, 그때는?

음식남녀, 음식과 남녀관계 중에서 후자에만 치중하고 보았다.

 

저자는 영화 속의 남녀 주인공의 관계를 공간(空間)’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하고 있다.

 

적절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남녀 사이에 서로를 끌어당기는 힘은 작동하지 않는다.

먼저 물리적 공간이 허락되어야 한다.

농가 마당이라는 열린 공간에서 묻고 대답하던 남녀는 자동차라고 하는 좁은 공간으로 들어간다. 운전하는 남자가 우연히 손을 뻗다가 여자의 몸에 닿게 된다.

(중략)

그 다음에는 물리적 공간과 함께 마음의 공간이 열려야 한다.

그런 단계를 위한 것인지, 여자는 남자에게 집에 가서 차 한잔을 하자고 청한다.


의례적인 말 같지만, 차나 음식을 권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자기의 마음이 열려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91)

 

그러니까 전에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았다.

남녀 관계(?)만 들여다 보았던 게다. 영화를 허투루 보았음이 명백하다.


이제 다시 보니, 영화 속에서 비로소 공간이 보인다. 두 남녀 사이에 실제 물리적인 공간이 서서히 보이지 않는 공간을 만들어주는 게 보인다. 그래서 실제적인 공간이 둘 사이에 사라지는 신기한 현상이 나타남을 보게 된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한다.


식탁과 침대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음식을 먹으면서 마음이 열리고 몸이 열린다. 남자와 여자는 함께 먹으면서 서로에게 다가가고 사랑하며 하나가 된다. (95)

 

다시, 이 책은?

 

그렇게 <채식주의자>를 비롯하여 소설 <겨울의 환()- 밥상을 차리는 여자>, <구시대의 지주들>, <다이어트의 여왕>, <레미제라블>에서 음식과 관련된 사항을 뽑아내, 우리 인생의 모습을 성찰하고 있다.

 

영화도,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음식남녀>를 비롯하여 <초코릿>, <바베트의 만찬>에서 음식이 가져다 주는 신세계를, 새로운 관계 형성을 조명하고 있다.

 

3장과 4장의 각 사항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 덕분에 그간 설렁설렁 허투루 읽고 보았던 소설과 영화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게 되고,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내 삶도 진지하지 못하고 허투루 대하고 살았던 음식남녀가 얼마나 많았을까, 되짚어 보게 된다. 아쉽고 안타까운 시절들은 또 얼마나?

 

이 책은 그래서 인생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철학책이다. 음식남녀에 철학은 양념으로 맛을 더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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