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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살인 계획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6월
평점 :
달콤한 살인 계획
사람을 죽이는 방법엔 어떤 게 있을까?
사람 목숨을 끊는 것 말이다. 그게 쉽진 않겠지만, 여하튼 방법은 있겠지.
그렇게 사람을 죽이려는 한 여자가 있다. 해서 그 여자는 사람 죽이는 방법을 찾아본다.
여자 이름은 남홍진, 죽이려는 대상은 이지하.
죽이려는 이유는, 글쎄 그게 참말로 아리송하다. 그 이유가 도통 명징하게 드러나질 않는다.
그래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대체 왜 죽이려는 거야? 이유가 뭐야?
이유는 그렇다쳐도 죽이는 방법이나 똑바로 알아둬야 하는데 이도저도 아닌, 그야말로 안갯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그렇게 서투른 살인자가 이 책의 주인공이다. 한참을 헤맨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지칠만도 한데, 그게 아니다. 그 여주인공에게 이윽고 감정이입이랄까, 그런 상태가 되어서 어느새 그녀를 어느새 응원하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에게 응원을 부탁해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처지가 여간 옹색한 게 아니다.
그녀의 남편이었던 자가 자기 자식을 죽이고 그녀도 죽이려다 상처만 입힌 것이다.
그 자는 감옥에 가고.... 하여튼 신세가 말이 아닌데, 거기에다가 그녀 정말 세상 물정을 모른다.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녀는 절에서 거의 20년간을 일했다. 하루 세 번의 예불과 스님들의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그녀의 생업이었다. (17쪽) 생업이라고 해봐야 어디 뭐 뾰쪽한 수도 나지 않는, 하여튼 독자들의 응원이 필요한 주인공이다.
어쨌든 그녀는 살인을 차분하게 준비하고 있다. 나름 계획도 세워가면서 이리저리 궁리하면서 살인을 시도한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암 죽여야지. 그때 뜻밖의 조력자가 등장한다.
조력자의 정체는 죽이려는 대상인 이지하의 친구이면서, 직업은 경찰관.
그 조력은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나?
이지하와 그의 고교 동창들이 모여 회식을 하는 자리에 역시 같은 학교 동창인 서화인이 참석하게 되는데, 그가 바로 경찰관이다.
뜻밖의 조력자, 고마워
이 소설, 치밀하다. 저자가 살인 계획을 잘 짜놓았다.
살인을 하려는 자가 허술한 반면에 그 허술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가 된다.
그래서 독자들은 주인공에게 시나브로 빠져 들어가 자기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데, 그런 심정을 저자는 잘 파악해서 조력자를 붙여준다.
그런데 그 모임이 있는 식당의 자리에 홍진도 와 있었던 것이다.
그 동창들 모임이 이야기하는 중에 사람 죽이는 방법에 관해 묻는 대화가 이어지고, 그걸 마침 홍진이 옆의 자리에서 듣게 된 것이다.
귀가 솔깃해진 홍진은 마침 전화 통화를 하러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서화인을 따라 나간다. 그에게 접근한 여자, 이런 대화를 시도한다.
“사람을 죽이려면 어떻게 해야 되죠?”
“예?”
“조금 전 저기서.......”
“사람을 죽이는 건 아주 어려워요, 아줌마. 꿈도 꾸지 마세요.” (63쪽)
꿈도 꾸지 말라고?
그런데 이야기가 진척이 될수록 꿈도 꾸지 말라던 그 살인에 알게 모르게 화인은 홍진을 도와주는 셈이 되어간다.
여기서 홍진이 살인 시도한 방법을 알아두자.
맨처음에는 트럭으로 이지하가 타고 다니는 차를 들이받아 버리는 방법이다.
생각하고 계획을 치밀하게 세워, 시도했다. 실패다.
그 다음 방법은 케이크에 농약을 넣고 이지하 집에 보낸다. 먹고 죽으라고. 역시 실패다.
그러는 동안에는 그녀는 차분하게 살인을 할 실력을 기른다.
고기를 사다가 냉장고에 보관해놓고, 그 고기를 가지고 칼로 써는 연습을 한다. (68쪽)
살인을 대비한 실력연마다. .이건 정말 나중에 잘 써먹었다;
칼이 고기 안으로 들어갈 때 고기는 근육과 힘줄을 당겨 저항을 한다. 죽어있는 고기도 마찬가지다. 홍진은 잘려나가지 않으려는 저항을 칼로 썰었다. 그녀를 죽이려고 할 때 그녀의 살도 이렇게 속절없이 버팀을 포기했을까. (70쪽)
칼로 써는 살인연습은 또한 남편에게 당했던 상황을 저절로 떠올리게 만든다.
또 하나, 이 소설의 매력 포인트, 남홍진만 살인을 하려는가 했는데, 뜻밖에 경찰관인 서화인도 죽이고 싶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교묘하게 사법의 그물을 빠져나간, 법을 교묘하게 피해간 그 사람, 그걸 서화인이 뒤늦게 알아낸 것이다. 그래서 서화인도 그 사람을 찾아내기 위해 추적을 시작한다.
그러니 누군가를 죽이려는, 죽이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만나, 차근차근 살인을 계획하는 게 이 소설의 즐거리다.
남홍진이 죽이려는 자. 그리고 서화인이 죽이려는 자,
그 둘은 같은 인물일까, 아니면 다른 인물일까?
그것도 관심사다.
그래도 죽이지는 말아야지.
쓰레기만도 못한 사람을 내 손으로 죽일 필요가 뭐가 있어요? 무슨 깊은 원한을 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사람은 증오할 가치도 없어요. (72쪽)
대신 그 사람이 죽으면 지옥으로 보내는 게 어떨까?
“있잖아요. 지옥이란 게 정말로 있어요?”
“있어야 돼.” (114쪽)
홍진과 (이미 죽어버린) 소명과의 대화중 한 대목이다.
죽은 사람과 나누는 대화이니 실상은 홍진이 스스로 다짐하는 소리다.
그런데 죽어도 마땅한 자가 이 세상에 살면서 잘 살다가 죽으면, 정의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게 아닌가?
그러니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정의, 저세상에라도 이루어져야지.
그래서 지옥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도 정의가 살아있다면?
저자는 정의를 실현한다,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라고 누군가 말한 게 기억난다.
그런 정의, 그래서 저자는 이 세상에서 정의를 실현한다.
이 세상에서 정의를 이뤄야지 죽은 다음에 지옥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판에, 거기에 희망을 둘 수는 없잖아?
그래서 홍진은 살인을 수행한다. 이루어낸다. 이지하를 죽인다. 기어코 죽인다.
왜? 이지하가 나쁜 짓을 했으니까. 벌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정의가 치밀하게 이루어진 전말을 기록한 것이다.
달콤한 살인 계획이라 제목을 붙였는데, 살인 계획은 실상 달콤하지 않다,
대신 읽어가는 내내 살인에 자신도 모르게 가담자가 되어, 그 살인 이루고 싶어지는 달콤한 독서를 했다는 점에서, 책 제목에 공감한다.
그러니 이 땅에. 이 소설의 마지막 같은 장면이 자주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살인 말고 정의 구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