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코의 모험
미시마 유키오 지음, 정수윤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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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코의 모험

 

읽고 나서야 알았다. 이 소설의 작가가 누구인지를.

미시마 유키오.

 

다 읽고 나서 이 책을 현대의 재기발랄한 현대식의 냄새가 물씬 풍기는 작가가 쓴 줄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며 저자가 누구인가 살펴보려고 책 날개의 저자 소개를 보니, 미시마 유키오가 아닌가?

 

탐미주의 작가, 자위대의 부활을 꿈꾸며 공개적으로 할복을 선택하여 45세에 생을 마감한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 (三島 由紀夫),

 

미시마 유키오의 작품을 모두 읽은 것이 아니라서 그 전체를 알 수 없긴 하지만, 이 소설이 그의 작품이라니! 그러면 다시 한번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그가 소설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이 그저 단순한 무엇이 아닐 것이니까. 내가 생각하며 읽었던 그 무엇보다 한 단계 더 나갈 것이 분명할 거니까.

 

모험이 필요해, 누구든지!

 

여기 그 주인공이 등장한다. 나쓰코, 여성이다.

이야기를 길게 할 것 없다. 바로 말하자면, 그녀는 정열다운 정열을 품은 남자가 단 한 명도 없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15) 그래서 수녀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그러니 그녀의 인생에 정열을 바칠만한 사건(?)이 아직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다. 젊음을 바쳐 불태울만한 정열을 가진 남자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제로라는 것에 절망한 그녀, 그녀의 결론은 그래서 수녀원이었다.

 

그리고 수녀원으로 가는 길, 모든 가족이 그녀와 함께 수녀원으로 가는 여정이 펼쳐지는데 거기에서 사건이 벌어진다. 남자를 만난 것이다. 제대로 된 남자, 정열다운 정열을 지닌 남자.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가만히 바다를 응시하는 반짝이는 그 눈만은 결코 흔히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 눈은 어둡고, 검고, 숲속의 짐승과도 같은 빛을 띠고 있었다. 무척이나 빛나는 눈이었지만, 피상적 반짝임이 아니다. 깊은 혼돈 속에서 비치어 드는 듯한, 어마어마하게 거대한 무언가를 주체하지 못하는 듯한, 아무튼 이상하리만치 아름다운 눈동자였다. 오전의 해협에 비치는 밝은 빛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 현상 너머에 있는 분명치 않은 그림자를 쫓고 있는 듯한 깊은 눈동자다. 나쓰코는 깊이 감동했다. 지금까지 어떤 청년의 눈에서도 이만큼의 감동을 찾아낸 적은 없다. 도시의 젊은이들은 경박하고 텅 빈 공허한 눈, 음탕하고 차가운 눈, 어린애 같은 토끼 눈을 가졌지만,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은 누구도 없었다. 저 눈이야말로 정열의 증거였다. (35)


그런 눈을 지닌 남자, 츠요키를 따라나서기로 한 나쓰코에게 이제 수녀원은 안중에도 없다.

 

그런 정열의 눈빛을 사람에게서 발견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그런 눈빛을 가지는 게 아닐뿐더러 그런 눈빛을 가진 사람을 알아보고, 만난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 두 남녀에게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결국 여자는 남자의 그런 눈빛에 빠져서 그를 따라가기로 결심한다.

나쓰코의 성격상 한번 마음 먹으면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못배기는지라, 그를 따라 나선다. 이제 수녀원은 물 건너 간 것이다.

 

그리고 츠요시를 따라나선 그녀에게 곰사냥이라는 모험이 펼쳐진다.

왜 갑자기 곰사냥?


츠요시에게는 사건이 있었다. 그가 사랑한 여자, 아키코가 곰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래서 츠요시는 그 곰을 잡아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그런 복수심이 그의 눈에 정열의 빛을 띄게 한 것이다.

 

복수혈전, 상대는 곰이다!

 

나쓰코도 그의 복수혈전에 동참하기로 한다. 그 정열에 탄복한 것이다,

 

그런데 곰사냥에 나선 두 남녀를 따라가면서, 모험담을 구경하는 재미를 즐기는 한편으로 스멀스멀 스며드는 불안감 한 조각이 있었으니, 곰을 사냥하고 나서 복수를 다 하고 나면, 그때도 남자의 얼굴에 그런 정열의 눈빛이 남아 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다음은 스포일러가 될 것이니, 생략하자.

다만 한 가지, 이 부분에서 나쓰코의 모험담이 여기서 멈추기를 바라는 독자는 아마 한 분도 없으리라,는 나의 생각에 모두 동감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들을 음악

 

괴테가 등장한다.

 

손전등이 밝혀주는 길 양쪽에 기괴한 모양의 가로수가 삿갓을 깊숙이 눌러쓰고 수행하는 승려처럼 보이다가, 목을 매단 시체처럼 보이다가, 노파처럼 보이다가, 인왕처럼 보였다. 나쓰코는 괴테의 <마왕>이라는 시가 떠올라 다소 섬뜩했다. (240)

 

이 부분을 읽으니 괴테의 <마왕>을 음악으로 표현한 슈베르트의 <마왕>이 떠올랐다.

해서 그 곡을 들으면서 이 책을 읽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마왕>의 내용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슈베르트의 피아노곡을 들으면서 두 남녀 주인공의 모험을 따라가 보는 것도 책 읽는 재미를 더해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한마디로 재기발랄한 소설이다.

재기발랄이란 말로는 성이 차지 않는다. 이런 말을 더해본다.

똘기 낭자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모험담.

 

이 소설은 나쓰코의 남자 츠요키의 곰사냥 이야기가 펼쳐지고, 거기에 덧붙여 나쓰코도 정열을 사냥하는 모험담이다. 인생에 한번쯤 나쓰코처럼 그런 정열에 몸을 담그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똘기>라는 말에 대하여, 이런 글 인용한다.

 

최근 사용되는 '똘기'를 단순 비속어로 볼 것인지 관용적 표현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해석 차이가 드러난다. 이황석 문화평론가는 한 칼럼을 통해 B급 정서를 '똘기'라고 보았다. 그는 "똘기의 사전적 의미는 풋과일이나 관용적으로는 설익은 어설픔보다는 젊음이 부릴 수 있는 오기나 당참의 의미가 더 강한 듯 하다"며 단순 비속어로 보이는 '똘기'를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https://theviewers.co.kr/View.aspx?No=296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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