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장석주 지음 / 나무생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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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

 

요즘

시를 잊었다잊고 있었다.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시를 잊고 있었다.

게다가 시를 읽는 법도 잊었다.

그러니

예전 국어 시절에

다음 시를 읽고 주제를 찾아보라는 문제,

별다른 의식도 없이 시를 문제 지문으로 삼아 읽어보던 때,

힘겨운 첫사랑에 한숨이 저절로 시가 되어 나오던 때로

돌아가 볼까하는 생각을 이 가을에 했었다.

그래서 잡은 책이 바로 이 책

지금은

시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 책은?

 

이 책잃었던 시를 되찾게 해준다.

시에서 생각의 줄을 찾아내고생각을 완성하게 만든다.

 

내가 이 가을에 기다리는 시는 어떤 시인가?,

저자가 말해준다이런 시라고.

 

우리가 기다리는 시는 불행과 격투를 마다하지 않는 시,

낡은 사물이나 생각을 바꾸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시,

청춘의 착란 속에서 빛나는 미래 비전을 담은 시다. (5)

 

그러한 시가이 책을 통해 나에게 찾아온다오고 있는 중이다.

 

시를 음미하다글을 음미하다.

 

그래서 이런 글을 읽으면서생각하고 또 씨름한다.

 

김소월의 <진달래꽃>이나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 발원하여 이성복의 <남해 금산>으로 이어지는 우리 서정시의 흐름 안에는 늘 당신이나 이 남아있다. ‘의 안에서 은 결핍과 부재의 흔적으로 생생하다. (9)

 

우리가 즐겨 읽는 시는 바로 그런 결핍과 부재로부터 시작한다그래서그래서 필연적으로 늘 슬픔과 허무로 주저앉는다는 것이다.

그런 슬픔과 허무가 시가 되어 나오는 게다그게 바로 시라는 것이구나.

 

모두 29편의 시읽어보자.

 

시에 대한 흐름을 조금이나마 듣게 되었으니이제 본격적으로 시를 읽어볼 차례다.

저자는 모두 29편의 시를 보여준다나에겐 모두 처음 보는 시들이다.

 

저자는 시를 이렇게 읽어준다.

 

먼저 운을 뗀다시를 읽기 전에 은은하게 우리 마음을 덥히는 것이다시를 맞이할 준비 운동을 하는 셈이다.

이렇게 말이다.

 

사랑하는 자의 얼굴이 빛나는 것은 사랑이 감히 신의 영역인 무한과 불멸에 기대고 그 불기능성을 욕망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43)

 

사랑을 말하다니기대가 된다사랑이라는 단어그 자체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들고 기다리게 만든다이어지는 말에 무언가 마음을 건드리는 그 무언가가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사랑은 진부하지만 사랑한다는 선언 속에서 그 생명을 얻는다. (43)

 

그 단어사랑은 진정 진부한 단어이지만그 사랑이 사용될 때는 늘 새로운 게 사랑이 아니던가그래서 사랑이란 말만 나와도 사람들은 귀가 번쩍 뜨이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에 대한 담론으로 독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핀 저자는 이윽고 시를 한편 열어 보인다. <포옹>, 이기성 시인의 시다.

 

비가 수천의 하얀 팔을 뻗어

너를 안는다.

흰 도화지 같은 공중에

너의 입을 예쁘게 그려줄게

주르륵 녹아 흐르는 입을 다시 그려줄게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파란 입술 그려줄게

......(이하 생략)

 

저자는 이 시를 이렇게 말한다.

 

처음엔 <포옹>을 사랑의 시로 읽었다사랑에 빠진 마음을 보여준다고 믿었던 탓이다사랑은 삶을 약동으로 이끌며 메마른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고타자를 끌어들여 외로움을 해소하고 정념을 충족시키려는 욕망이 추동한다. (45)

 

그 다음 계속 읽어보자..

 

사랑은 영혼이 고갈되고전에 없던 혼란과 위기를 겪는 존재 사건이다. 그런 까닭에 사랑하는 자의 마음은 수시로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45)

 

저자가 시에서 주목하는 것은 너를 안는다에서의 이다.

 

는 의 저편에 있는 대자적 존재이다. ....시인이 를 특정하지 않은 까닭은 가 멀리 있기 때문이다.........지금 여기에 없는 는 헤어진 연인일까그렇다면 는 마음이 허전하거나 슬프거나 쓸쓸할 것이다한때 사랑했던지금도 잊을 수 없는 는 여기에 없다.

 

그다음시의 제목 <포옹>에서의 '포옹'이 등장한다.

 

비에서 연상한 하얀 팔로 누군가를 포옹하는 상상은 그래서 가능했을 테다.

......너를 끌어안는 이 포옹은 환대의 행위이고애틋한 다정함의 표현이다. (49)

 

다시이 책은?

 

역시 시인은 다르다사물을 보는 눈이 다르다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포옹을 떠올리다니.

또한 시인의 시 풀이 역시 다르다단 한마디 등장하는 를 가지고 포옹을 정의하고 더 나아가 환대와 다정을 확신하다니!

 

그래서 이 책에는 그런 시를 쓴 시인과 그 시를 풀이하며 또다른 세계로 독자를 안내하는 시인이 있다.

 

이 가을에

누군들 시가 필요하지 않을까마는

요즘 시가 필요하다시가 필요하다절실하게.

그 필요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라는 영탄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이런 가을날,

시를 쓰는 것도 좋고,

저자가 보여주는 시를 새롭게 읽어보는 것도

가을이니까.....

아니가을이어서만 그런 것 아니다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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