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여행 - 모두가 낯설고 유일한 세계에서
양주안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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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여행

 

여행기이제 너무 나온다.

해외여행 자유화 이후 시간이 많이 흘렀다.

해외여행 자유화 전에는 해외를 마음대로 나가지 못했으니 한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그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내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다하기야 지금도 어느 정도는 통하고 있다.

정말 널린 게 해외 여행기다 

그러니 이제 색다른 책이 나와야 한다해외 여행기이긴 한데 기존의 책과는 색다른차별화가 필요한 것이다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차별화.

 

어떤 식으로 다를까?

저자가 언뜻 비친 말 하나가 있다.

 

지금은 없애버린 다른 원고가 하나 있었다거기서 나는 내가 있어야 할 자리에 다른 것들을채워 넣었다파리의 에펠탑이나밀라노의 두오모 성당멕시코시티의 카사 아줄(프리다 칼로의 생가)에 관한 이야기였다내가 아닌 누군가의 역사가 남긴 아름답고 처연한 흔적들을 소개했다. (6)

 

그런 책 대신에 이 책이 나온 것이니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러니 이 책에는 파리의 에펠탑 대신에 저자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저자는 튀르키에서 쿠르드 족 출신의 A를 알게 되었다.

신기한 인연이라고 할까저자가 튀르키에 이스탄불을 여행하고 있는 중에 카우치 서핑 앱에 알람이 떴다. A는 한국에 여행할 거라고 하면서 저자의 집에 묵을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저자는 마침 이스탄불에 있다고 답하고그 둘은 거기에서 만나 인연을 이어간다.

 

쿠르드족질곡의 역사를 지금껏 살고 있는 민족.

A는 바로 그런 크루드족이었다.

그에게 커다란 난관이 하나 닥쳐오는데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이다.

튀르키에에 살고 있으니 당연히 튀르키에 군에 입대하게 되는데문제는 입대하면 쿠르드군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그 둘은 서울에서 다시 만난다.

거기에서 저자는 그로부터 놀라운 A의 발언을 듣게 된다.

A는 튀르키에 군대에 들어가는 대신쿠르드족의 독립단체로 가겠다는 것그러면?
그는 이제 투르드족의 일원으로 튀르키에군과 맞서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기록이 저자가 쓰고자 하는 것이다

아주 사적인 기록이다.

튀르키에에 사는 쿠르드족의 한 사람인 A가 튀르키에군에 가지 않는다는 기록,

튀르키에 대신 쿠르드 족의 독립을 위해 생명을 걸고 싸우겠다는 기록. 

그게 저자가 만난 쿠르드족 한 사람의 이야기지만실상은 튀르키에와 쿠르드족의 관계를 잘 보여주는 기록인 것이다그런 이야기를 독자들은 듣고 싶을 것이다.

 

개인적인 이야기 말고 이런 이야기도 들어있다.

 

수잔 발라동과 화가 툴루즈 로트레크의 사랑 이야기.

그리고 에릭 사티까지 얽히고설킨 사랑 이야기

에릭 사티는 오직 수잔을 위하여 <Je Te Vuex>를 작곡했다고 한다. (77)

<Je Te Vuex>를 번역하면 당신을 원해요이다.

그리고 그 셋의 이야기는수잔 발라동은 화가가 되었답니다.

 

다시, 저자의 사적인 이야기 하자.

 

노르망디의 르아부르에서 비를 피하려 어떤 건물도 들어가서 만난 현지인 한 명과 이런 대화를 나눈다.

 

저는 여행 잡지 기자에요출장을 온 셈이죠.

오호여행이 일이라니멋지네요.

여행이 일이 되면비를 원망하게 돼요.

왜죠비에 관해 기사를 쓰면 되는 것 아닙니까?

비오는 날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요하지만 맑은 날씨의 여행지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조금 더 많죠.

재밌는 일이죠비는 좋은 거에요나무와 풀을 자라게 하죠하지만 우리는 비를 피해요일상에서는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거든요. (184)

 

역시 개인적인 대화지만이 대화는 비의 유용성에 관한 현지인의 깊은 성찰이 들어있다.

더더욱 이런 생각을 하는 현지인이니 말이다.

그 현지인은 노르망디 상륙전쟁만 머릿속에 갖고 왔다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진짜 노르망디는 비가 자주 오고 유채꽃이 피는 곳이에요이건 수십년 전 일이 아니라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죠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의미 부여해요마치 더 대단한 일이 었던 것처럼 말이죠그러니 안심하세요지금 이곳에는 나치는 없어요. (185)

 

맨 마지막 두 문장은 서양인 특유의 유머지만 그 앞에 말한 것들은 모두 생각할 거리들을 마치 유채꽃처럼 피워놓고 있지 않은가?

 

다시이 책은?

 

이것도 빠트리면 안 된다. 

폭탄은 생명을 죽이지만 비는 생명을 자라게 해요폭탄은 돈을 주고 만들지만 비는 그냥 얻는 것이죠우리는 값없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잊고 살아요거저 얻은 것은 하찮게 보는 이상한 습관이 생겼죠. (185)

 

아마도 그 현지인 비오는 날에 맞춰 나타난 현자인지 모른다싸워서 사람을 죽이려고 폭탄을 만들고 있을 그 누군가에게 비와 폭탄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려고 나타난 현자아마 비처럼 그 사람 하늘에서 내려오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런 현자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저자가 이 글을 쓰기로 한 목적, <파리의 에펠탑이나밀라노의 두오모 성당멕시코시티의 카사 아줄(프리다 칼로의 생가)에 관한 이야기내가 아닌 누군가의 역사가 남긴 아름답고 처연한 흔적들을소개하지 않았으므로결과적으로 저자의 아주 사적인 이야기가 가득하다.

 

에펠탑 따위 가고 또 가본 곳이니 안가도 좋다이런 이야기들로 가득 채우는 여행기가 아주 사적인 느낌이지만기분이 훨씬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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