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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2 - 청소년을 위한 논어 ㅣ 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2
판덩 지음, 하은지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4월
평점 :
어른이 되기 전에 꼭 한 번은 논어를 읽어라 2
『논어』가 새롭다.
『논어』를 이렇게 읽어보니, 논어가 다른 책이 된다.
그러니 ‘우리 공자님이 달라졌어요’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저자가 『논어』를 대하는 태도가 예스럽지 않다.
이런 저자의 자세가 먼저 마음에 와 닿는다.
학습과 탐색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것이야말로 『논어』의 핵심정신이다. (13쪽)
그래서 저자는 『논어』를 ‘공부’와 관련시킨다.
이 책은 그런 저자의 논리를 따라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이 된다.
1장. 도대체 무엇을 공부해야 할까?
2장.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
3장. 공자가 들려주는 톱클래스 전략
4장. 배움을 통해 한 단계 더 성장하라
그래서 이 책에는 공부와 관련된 『논어』의 구절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저자가 기존의 『논어』 해석을 따라해서가 아닌 새로운 시각으로 『논어』를 해석한 덕분이다.
예컨대, 공자의 이런 말도 새로운 시각으로 새겨보게 된다.
興於詩(흥어시) 立於禮(입어례) 成於樂(성어락)
『논어』 <태백>에 나오는 구절이다.
공자 말하길, 나는 시로 시작해서, 예로 일어섰고, 음악으로 완성했다. (151쪽)
저자는 이 말에서 공부의 3단계를 찾아낸다.
興於詩(흥어시) 시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단계
立於禮(입어례) 예와 관련된 것을
成於樂(성어락) 음악으로 배운 내용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실제로 공자는 음악교육을 매우 강조했는데, 그의 학당에서는 늘 거문고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하며 수업 시간에도 항상 악기가 옆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음악으로 인성을 다스렸고, 그것이야말로 배움의 완성이라고 보았다.
이런 것도 알게 된다.
니체는 르네상스에 대하여 :
니체는 르네상스의 골자를 허례허식을 떨치고자 한 정신으로 보았다. 르네상스가 위대한 이유는 과거의 종교적 허례허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람들의 진실한 감정을 표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125쪽)
(이글의 출처를 밝혀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니체의 수많은 저작 중에 어디에 그런 내용이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들 중
『안티프래질』,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132쪽)
깨지기 쉬운 이란 의미를 갖는 말 프래질에 반대를 뜻하는 안티를 붙여서 만든 저자의 신조어로 ‘충격을 받으면 더 단단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저자는 말하길 세상은 불확실성으로 가득차 있는데 그런 불확실성에 잘 대응하려면 리스크 대응 능력, 즉 안티프래질의 특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한 게임과 무한 게임』, 제임스 P.카스 (135쪽)
이 책의 저자는 사람은 무한 게임의 플레이어처럼 살아야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글 밑줄 긋고 새겨본다.
나침반은 정북의 방향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 길에 있는 늪, 사막과 협곡을 알려주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는 스스로 늪을 돌아가고 함정을 피해 가야 한다. 때로는 먼 길을 돌아가야 할 때도 있다. (141쪽) - 링컨의 발언이다.
우리는 세상에 사람다운 사람으로 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어떤 한 가지 기능을 담아내기 위한 도구가 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12쪽)
이 말은 뒤에 언급되는 군자불기(君子不器)의 사상(131쪽)과 연결되어 더 폭넓게 진행이 된다.
새로운 지식을 공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뇌에 자극을 주는 것이다. (94쪽)
아쉬운 점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인용되는 『논어』의 출처를 밝혔으면 좋았을 것이다.
저자는 『논어』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논어』의 어디에 들어있는 구절인지를 밝히지 않고 있다.
둘째, 한자를 한글로 읽어가는데, 오자인지 어쩐지 이상한 것들이 보인다.
一以貫之 일일관지 (15쪽)
제대로 읽으면 ‘일이관지’로 읽어야 한다.
양지미고 (仰之彌高) (43쪽)
이 말은 42쪽에는 ‘앙지미고’라고 했으므로 43쪽의 ‘양지미고’는 오자로 보인다.
사자성어 ‘화이불실(華而不實)’은 ‘화이부실’로 읽어야 하는 것 아닌가? (55쪽)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는지도?
일지기소무 (93쪽)
이것의 한자 원문은 이렇다. 日知其所亡 (93쪽)
한자가 잘못인지, 아니면 한글로 읽기를 잘 못했는지 알려면 『논어』에서 해당구절을 찾아봐야 하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그 출처를 이 책에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아 그 출처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
논어 <자장>에 나오는 구절이다. 한문이 맞다. 日知其所亡
그러면 그 한자를 잘 못 읽은 것이다. 제대로 읽으면 ‘일지기소망’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의 결론은 이것이다.
현대의 발달한 과학적 연구 역시 잇달아 공자의 가르침이 옳다는 증명을 결과로 내놓고 있다. 그래서 『논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얄팍하게 해석만 보고 이해해서는 안 된다. 책 속에만 존재하는 명언 정도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 삶에, 생활에, 공부에 적용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지식을 배울 수 있어야 진정 ‘살아 있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13-14쪽)
이 책으로 『논어』를 새롭게 만나, 공자님을 다시 뵙게 되니 즐겁다.
그래서 『논어』의 첫 구절이 이런 게 아니겠는가?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不亦說乎兒)`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