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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평점 :
줄리엣과 줄리엣 희곡집 에세이
그동안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두 가문은 대체 왜 싸우는 것일까?
셰익스피어는 그것에 대해 일언반구 말이 없다. 그저 두 가문에 속한 사람들은 만나기만 하면 싸운다. 단지 로미오와 줄리엣만 만나서 딴 짓을 했지, 다들 싸운다.
그런데 그 후 셰익스피어를 연구한다는 사람들, 학자들도 그 이유에 대해서는 속 시원한 답을 해주지 못하는데, 드디어 한국의 한 작가에 의해 그 내용이 밝혀졌다.
그 사연이 바로 이 책 『줄리엣과 줄리엣 희곡집 에세이』에 나온다,
아주 명백한 일로 판단이 될 정도로, 극은 살아있고 전후 좌후가 딱 맞아 떨어지는 아주 멋진 추론을 보여주었다.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줄리엣과 줄리엣』의 9장 어느 무도회 장면에서 사람들이 속삭이는 소리 들어보자.
아니, 근데 그 집안 사람들은 왜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래?
예전에 두 집안의 자식들이 서로 사랑을 했대요.
근데 집안 사람들이 반대를 해서, 둘이 죽었대요.
아이구, 저런
멀쩡한 젊은 남녀가 사랑을 하겠다는데 왜 반대를 했지?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자식을 죽이고 싶었겠어?
내가 듣기론 그 집안의 두 딸이 사랑을 했대요,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세상천지에 그런 일이 다 있어?
정말이에요. 두 집안의 아가씨가 서로 사랑했다니까.
말도 안 돼, 여자 둘이서, 사랑을?
(..........)
그 몬태규 집안에 로미오라는 청년이 있지 않았나?
응, 들어본 적 있어.
아, 그럼 그 로미오라는 친구랑 줄리엣이란 처자가 둘이 사랑을 한 거로구만?
그 편이 말이 되지? (138-140쪽)
이거다. 셰익스피어가 미처 이것을 말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를 떠올려보라. 여성 둘이 사랑을 한다는 게, 게다가 결혼까지 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만약 한다면 셰익스피어는 목을 걸어야 했을 것이다.
지금도 뭐 모르는 학자들이 셰익스피어를 반여성주의자, 제국주의자, 반유대주의자라고 욕하고 다니질 않는가. 그런데 그 때 줄리엣과 줄리엣이 어쩌고 했다면?
끔찍한 일이다.
그러니 이 책의 저자 한송희에게 분명 셰익스피어가 현몽했음이 분명하다.
'이제 때가 되었으니 로미오 대신 줄리엣을 올려다오' 라는 현몽.
그러고 보니 이런 비슷한 일을 한 작가가 있긴 하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쓴 스콧 피츠제랄드다.
그는 단편 『치프사이드의 타르퀴니우스』에서 『루크레티아의 능욕』이라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셰익스피어로 추정되는 인물의 자전적 고백이라는 식으로 글을 썼는데, 그건 잘 못 된 것이다. 루크레티아의 능욕은 엄연히 역사적인 사실이고, 그로 인해 고대 로마의 정체(政體)가 바뀌었으니, 스콧 피츠제랄드는 헛다리를 짚은 것이다.
그 반면에 이 작품은 누가 시비를 걸 여지가 전혀 안 보인다.
로미오가 실제 인물인지 아닌지 누구도 시비를 걸지 않고 있는 이 마당에 설령 로미오 대신에 줄리엣을 거기에 넣는다 해도, 하등 문제가 없다. 게다가 요즘 퀴어 문화도 한 몫 거들 것이니까.
그래서 읽는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오래된 체증이 내려간 기분이랄까? 두 집안의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를 명쾌하게 밝힌 프리퀄로 말이다. 그 다음 작품에는 당연히 줄리엣 몬테규의 동생인 로미오 몬테규가 나설 차례가 되겠다. 줄리엣은? 당연히 줄리엣 캐플렛의 동생이 있다는 설정이지 뭐.
그렇게 해서 『로미오와 줄리엣』도 한번 읽어보기로 했다. 전후가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아, 캐플렛이 어머니인 것은 어떻게 풀어갈까? 걱정마시라 당시 이탈리아는 한 개의 나라가 아니라, 여러 개의 도시국가로 나뉘어서 서로 싸움질을 하고 있던 시대였으니, 아버지 캐플렛은 나폴리로 원정 나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정리 끝이다.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도, 이 작품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