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大기자, 연암
강석훈 지음 / 니케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선의 기자 연암

 

연암 박지원조선 시대의 문인이다.

시대를 앞서간 문인그가 어떤 시각으로 당시 세상을 보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연암은 기자다’ 라는 색다른 시각으로 연암의 행적을 파헤쳐살펴보고 있다.

 

먼저 저자는 연암의 저서인 열하일기에서 연암의 기자 정신을 다음과 같이 찾아낸다.

 

1. 현장에는 연암이 있었다 현장 정신

2. 술을 부어 먹을 갈다 기록 정신

3. 한 점 의혹도 남김 없다 탐사 정신

4. 취재 과정과 취재원은 비밀이 아니다 투명성의 정신

5. 취재에는 차별과 피아彼我가 없다 불편부당 정신

6. 부조리 질타에는 성역이 없다 비판 정신

7. 취재의 궁극적 목적은 공공의 선’ - 공공 정신

8. 양고기를 잊고 취재에 빠지다 취재 열정

9. 인기 폭발한 조선 청심환 철저한 취재 준비

10. 정확한 기록을 위한 파격 사실의 정확성

 

몇 가지 추려적어본다.

 

북경에서 열하로 가는 길목에 만리장성의 고북구(古北口)가 있다역사적으로 군사적전략적 요충지여서 칼과 창이 부딪히는 소리가 그치지 않은 곳이다역사에 조예가 깊은 연암이 이 역사적 현장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만리장성 관문으로 나가 장성에 이름을 써놓으려고 작은 칼로 성벽의 이끼를 깎아내린다붓과 벼루를 꺼냈으나 사방에 벼룻물을 구할 곳이 보이지 않자 말안장에 매달아 둔 술을 벼루에 쏟아 먹을 간다바로 손주마묵(?酒磨墨)술을 부어 먹을 간다는 뜻이다별빛 아래 붓을 적셔 큰 글자로 수십 자를 썼다술로 쓴 글이다. (58 - 59)

 

연암의 취재 가운데 특기할만한 사항은 하인이나 말몰이꾼군뢰 등 사절단의 하층민과 관련된 기사가 열하일기』 곳곳에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다사절단의 우두머리인 정사나 부사서장관에 관련된 내용보다도 오히려 이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많다그만큼 연암이 신분적 차이에 얽매이지 않고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위치에서 오로지 뉴스로서의 가치를 기준으로 취재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 정신에 투철했다는 증거이다. (103)

 

연암의 도() 사상

 

이 책을 읽으면서 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 많이 보인다.

그중 하나는 연암의 도 사상에 관한 글이다. (248쪽 이하)

 

열하일기』 중 연암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도를 논한 부분으로그걸 저자는 노자의 도가도비상도 (道可道非常道)와 연결시켜 도를 말하고 있는데새겨볼 만하다.

 

자신의 글을 쓰라 (258)

 

연암의 글쓰기에 대한 철학은 그의 아들 박종채가 쓴 과정록에 잘 나온다.

바로 자신의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귀로 듣고 눈으로 본 바에 따라 그 형상과 소리를 곡진히 표현하고 그 정경을 고스란히 드러낼 수만 있다면 문장의 도()는 그것으로 지극하다. (259)

 

더 자세한 내용은 과정록을 번역한 책 나의 이버지 박지원』 179쪽 이하를 참고하시라.

 

<4부 연암의 통찰력과 예언>과 관련하여 이런 것도 알게 된다.

 

1. 화신의 패가망신을 내다보다

2. 청나라의 붕괴를 예언하다

3. 조선의 민란을 내다보다

4. 제너럴리스트와 스페셜리스트

 

연암은 청나라 호부상서 화신(和?)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는데황제의 총애를 믿고 거들먹거리는 것과 오만방자함을 보고그의 벼슬이 위태할 것이라는 통찰을 기록하고 있는데서장관으로 청에 다녀온 이태영이 조정에 정보 보고를 한 내용중 화신에 대한 기록이 있다.

 

조선왕조 실록』 해당 부분을 찾아보았다. 1785년 3월 22일자 기록이다.

 

정조실록19정조 9년 3월 22일 신미

사은사 서장관 이태영이 올린 별단

이규운·주형채 등을 정국한 후 주형채를 효시할 것을 명하다.

 

이부 상서 화신(和?) 지난해에 군기 대신(軍機大臣)으로 승진(陞進)하고아들이 황제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며딸은 황제의 손자에게 시집을 가서 권세가 날로 높아가고 있으며황제께서도 그 집에 번갈아 가며 내시를 보냅니다그리하여 세력이 하늘을 찌를 듯이 대단하여조정의 관리들이 붙좇지만 오직 각로(閣老)인 아계(阿桂)만은 대단한 공신의 가문임을 자랑하고 청렴하고 근신하는 마음을 스스로 지녔으므로화신의 공명과 꺼림을 받고 있어 조야에서 자못 신임한다고 합니다공부 상서 김간(金簡)도 또한 황제의 외척으로서은총을 많이 받으며 상사가 자주 빈번하여 세력이 화신의 다음 간다고 합니다.

 

연암이 청나라에 간 시기가 이태영보다 훨씬 빠른 1780(정조 4) 5월이다. 서장관 이태영보다 훨씬 앞서서 화신의 내막을 알았던 것이니그가 사람을 보는 눈이 어떤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과연 연암의 예견대로 화신은 그 후 부정부패 혐의로 축출되고 재산을 몰수당하였으며 자진하는 운명으로 인생을 마감한다. (204)

 

연암의 기자 정신을 찾아서

 

저자는 왜 연암의 행적을 기자 정신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았을까?

 

그건 연암의 기자 정신이 오늘날에 더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자의 시각에서 기자로서의 연암을 조명하고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다.(8)라는 저자의

말이 그걸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더 중요한 목적이 있다면서 그걸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열하일기』 를 비롯한 연암의 역작을 읽고 연암의 뜻을 새기는 계기가 되도록 하는 데 있다. (8)

 

연암의 뜻은 무엇일까?

 

나라와 백성을 위해 천하대세(天下大勢)를 보고천하지우(天下之憂)를 걱정한다. (7)

 

그런 연암의 뜻을 찾아서저자는 연암의 모든 저작을 그야말로 기자의 눈으로 살피고 추적한다그런 결과가 이 책에 담겨 있는 것이다.

 

다시이 책은?

 

시중에 연암의 열하일기를 해설하는 많은 책들을 본다.

모두들 연암의 귀한 뜻을 헤아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책들이지만거기에 뭔가 빠진 듯한 느낌을 받았었는데이 책을 통해 그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바로 연암의 기자 정신이다.

연암이 왜 그렇게 어려움을 겪어가면서 중국의 사정을 낱낱이 파헤치려고 밤잠을 설쳐가면서 그토록 애를 썼을까단순하게 호기심이나 그의 성정 때문이 아니라, 치열한 기자 정신으로 한 자라도 더 보고 들도 한 것들을 적어서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조선을 깨우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정신을 새겨 열하일기를 다시 읽는 기분으로 이 책 먼저 읽는다다음엔 열하일기를 다시모든 부분을 새겨가면서 읽어야 할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