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 속 세계사 - 129통의 매혹적인 편지로 엿보는 역사의 이면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최안나 옮김 / 시공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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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 속 세계사

 

최근 읽은 책이 있느냐?

 

마리 앙투아네트프랑스의 왕비다.

나중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단두대에서 형장의 이슬이 되어 사라지는 비운의 왕비.

 

그녀의 어머니인 마리아 테레사는 1775년 7월 30그녀에게 편지를 보낸다. (282)

편지의 내용은 주로 그녀를 꾸짖는 것이다.

 

그 말투라니그 경솔함이라니앙투아네트 공주의 선하고 관대한 마음은 어디로 사라진 게냐이제는 오직 조롱과 박해에 대한 호기심과 천박한 악의기쁨만 보이는구나.”

 

그런 내용이 죽 이어지다가이런 말도 한다.

 

최근 읽은 책이 있느냐?”

 

물론 그건 실제로 읽은 책 이름을 묻는 게 아니다책을 읽음으로 얻어지는 결과를 말하기 위해 묻는 것이다해서 이런 발언이 이어진다.

가장 중대한 국가적 문제에 대해장관들의 결정에 대해 소신 있게 의견을 밝혔느냐?”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요즘 누가 '무슨 책을 읽느냐'고 꾸짖는 가운데에서도 그런 질문을 할까?

 

이런 편지를 무려 250년이 지난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다는 것편지의 매력이요문자의 개가다그런 말이 문자로 편지에 남아 우리가 당시 상황을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런 편지를 모아 놓았다.

멀리는 무려 기원전 1370카다슈만엔릴이 아멘호테프 3세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가 하면

최근의 것으로는 2018년 5월 24도널드 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도 있다.

 

누구 누구의 편지일까?

 

몇 년전 프랑스에서 이웃 마을에 사는 앙드레씨와 지드씨가 서로 나눈 편지라면 하나도 안 궁금할 것이다그런데 이런 사람이 보낸 편지라면설령 그게 날씨 정도 묻는 문안 인사라 할지라도 궁금해서 읽어볼 것이다이런 사람들 편지가 독자들의 책상에 도착한 것이다.

 

어디 아는 사람 이름이 눈에 뜨이는지 살펴볼 일이다.

<사랑>편만 훑어보자.

 

헨리 8가 앤 불린에게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에게,

토머스 제퍼슨이 마리아 코스웨이에게,

예카테리나 대제가 포툠킨 왕자에게,

제임스 1가 버킹엄 공작에게,

비타 색빌웨스트가 버지니아 울프에게,

술레이만 대제와 휘렘 술탄이 주고받은 편지,

아나이스 닌이 헨리 밀러에게,

알렉산드라 황후가 라스푸틴에게,

허레이쇼 넬슨이 에마 해밀턴에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조제핀에게,

알렉산드르 2가 카탸 돌고루코바에게,

이오시프 스탈린이 펠라게야 아누프리예바에게,

 

아는 사람이 많이 보일수록이 책의 가치는 커질 것이다.

 

기원전 1370년대에는 점토판에 편지를 썼다네

 

그런데 이런 편지는 설령 수신자와 발신자를 모른다해도 읽어볼 가치가 있다.

 

기원전 1370년 카다슈만엔릴이 아멘호테프 3세에게.

기원전 1243년 람세스 2세가 히타이트 왕 하투실리에게.

기원전 1190년 암무라피가 알라시야 왕에게.

 

기원전 1370물론 종이에 씌여진 편지는 아니다점토판에 새겨진 편지를 1887년에 발견한 것이다카다슈만엔릴은 바빌로니아 왕이고아멘호테프 3세는 이집트의 왕이다.

그러니 다른 나라의 왕끼리 서신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무슨 내용이었을까?

외교적인 문제를 협의하는 내용일까읽어보자.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내가 그대의 딸에게 청혼하는 편지를 썼는데형제여그대는 어떻게 그런 말투로자고로 이집트 왕의 딸은 절대 결혼 상대로 주어지는 법이 없으니 나에게 딸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편지를 쓸 수 있단 말인가왜 내게 그런 말을 하는가그대는 왕이다그대가 원하는 대로 해도 된다는 말이다내게 그대의 딸을 결혼 상대로 주고 싶었다면 누가 그대에게 그러지 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93)

 

금방이라도 달려가 얼굴 붉히며 고함을 지를 분위기다.

그 다음 말은 어떤 것일까자기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데 분노하는 바빌로니아 왕의 이어지는 발언은 무엇일까? ( 93-94쪽을 참고하시라.)

 

역사의 이면을 보여주는 편지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는 왕위에 오르기 전에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

 

당시 헨리 8세와 캐서린 사이에 태어난 메리 1세가 통치하던 시절엘리자베스는 공주 신분이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길어서 생략하고엘리자베스 공주는 체포되었다런던탑으로 막 이송되려 할 때 공주는 이 편지를 쓴다.

 

이 편지는 조수의 편지(Tide Letter)’로도 알려졌는데공주가 일부러 아주 느리게 쓰는 바람에 조수가 바뀌었고그래서 런던탑으로 가는 일정이 하루 미루어진 것이다. (86)

 

그 편지역사의 뒷면을 잘 보여준다영국사영국 역사를 다룬 역사책에서 메리와 엘리자베스 간에 생사를 둘러싼 치열한 권력 다툼이 있었고결국 엘리자베스는 살아남았다는 기록이 있는데그 뒷면을 이 편지로 읽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비록 지금 제가 유죄로 확정된 듯하지만 제대로 된 답변과 그에 따른 증거없이는 단죄하지 않겠다던 폐하의 마지막 약속과 제 마지막 요청을 기억해달라고 폐하 앞에 겸허하게 엎드려 애원합니다.

(중략)

반역자 와이엇에 대해서라면혹시 그가 제게 편지를 썼을지도 모르지만 저는 맹세코 그에게 단 한 장의 편지도 받지 않았습니다.

(중략)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폐하의 가장 충실한 신하일

                                                      엘리자베스.

단 한 단어의 답신이라도 겸허히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끝을 맺는 편지결국 이 편지가 주효했던지공주는 런던탑으로 이송된 후 방면되었고메리가 죽은 다음에 엘리자베스는 왕위에 올라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군주가 되었다.

 

여기 클레오파트라가 등장한다.

 

편지 속에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언급이 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에게 기원전 33년경 보낸 편지에서다.

 

그 대목 읽어보자.

  대체 무엇에 씌인 건가내가 클레오파트라와 자는 게 불만인가하지만 우린 결혼했네심지어 새롭게 벌어진 일도 아니지 않나우리 관계는 9년 전에 시작됐네그러는 자네는 어떤가? (243)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통치자의 모든 행동은 설령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라도 모두 공적인 일이 된다는 것(19)이다해서 안토니우스가 클레오파트라와 잠자리를 같이 하는 것이 개인적인 것이지만그건 이미 정치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또한 영국의 헨리 8세가 장차 그의 왕비가 되었다가 나중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되는 앤 볼린에게 보낸 편지도 연애편지이지만 충분히 정치적인 것이다. (32)

 

내게는 이미 그대의 부재가 너무나 권태롭게 느껴진다오.” (33)

 

왕의 권태그건 충분하게 정치적인 것이다그 권태가 영국이란 나라에 수많은 일을 벌어지게 했으니 말이다.

 

다시이 책은?

 

여기 <작별편을 훑어보자누가 누구에게 보낸 편지들이 있는지?

 

레너드 코언이 메리앤 일렌에게,

앙리에트가 자코모 카사노바에게,

윈스턴 처칠이 아내 클레먼타인에게,

니콜라이 부하린이 스탈린에게,

프란츠 카프카가 막스 브로트에게,

월터 롤리가 아내 베스에게,

앨런 튜링이 노먼 루틀리지에게,

체 게바라가 피델 카스트로에게,

로버트 로스가 모어 에이디에게,

루크레치아 보르자가 레오 10에게,

하드리아누스가 안토니누스 피우스그리고 그의 영혼에게,

 

그중 프란츠 카프카의 편지가 눈에 들어온다.

그는 막스 브로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 마지막 부탁이네내가 남기고 가는 모든 것 - 노트에 쓴 것이든원고로 남은 것이든편지로 쓴 것이든내 것이든 다른 이의 것이든초안이든 누구도 읽지 못하게 남김없이 불태워주게다른 사람이나 자네가 가지고 있는 내 모든 글 또는 메모도 마찬가지일세. (하략) (419)

 

그러니 카프카는 친구인 막스에게 유언을 남기기를자신의 모든 원고글을 불태워주기를 부탁하는 것이다그럼 그 유언은 그대로 집행되었을까?

 

물론 집행되지 않았다.

그 과정을 밀란 쿤데라가 쓴 배신당한 유언들에서 읽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오고 간 편지들이 역사를 만들어갔기에저자는 이 책의 제목을 <우편함 속 세계사>라 한 것이다.

역사의 이면에 분명 편지가 자리잡고 있다그런 편지를 읽으면 역사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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