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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이명지 지음 / 수필in / 2022년 4월
평점 :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이 책,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을 읽고 나서 든 생각은 ‘괜찮아’였다.
이 정도 글이면 괜찮다.
글 내용이나 글을 쓰는 저자의 마음가짐이 ‘괜찮아’를 넘어서 너무 괜찮다.
에세이로 이 정도 진솔하게 글을 쓰는 작가, 아마 처음인 듯 싶다.
왜 그런가 하면 일단 여기 실린 글 제목만 봐도 그런 감이 올 것이다
‘한 번도 애인이 없던 적이 없다’
‘모든 연애는 남자의 하중을 갈망한다’
‘우린 아직 가임기야’
‘욕망의 언저리에서’
‘배설의 기쁨’
‘이별의 품격 포옹’
‘너를 안는 법’
‘그대에게 가는 길’
제목이 뭔가 솔직함을 품고 있음직 하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글 읽어보자. (19금이다)
“나는 육십에 바다를 보았어!”
얼마 전 사랑을 시작한 친구가 말했다.
(........)
우리는 늘 사랑을 꿈꾸지만, 상대가 섹스하자고 할까 봐 겁나서 연애 못한다는 것으로 낄낄대며 수다를 마무리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바다를 보았단다. 바다를......(128쪽)
여기가 바다가 무엇인지 짐작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돼?”
이 말 역시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그렇게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놓는 저자, 그 입담에 글 솜씨에, 그러니 수준있는, 품격있는 에세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에세이를 쓰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맨날 아들 자랑에 며느리 자랑하는 에세이집은 그야말로 나무가 아까운 책이 되는 것이다.
또 소개해 본다.
저자가 신혼 시절, 아파트 14층에 살았단다
그 이야기중 이런 문장, 하나 소개한다.
난생 처음 고층 아파트에 살게 된 나는 자주 악몽을 꾸었다. 엘리베이터가 멈추지 않고 하늘로 치솟는 꿈. 그런데 그 꿈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비가 오면 빗소리가 안 들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세찬 소낙비가 와도, 장대비가 내려도 빗줄기는 창밖으로 그저 무늬만 그리고 땅으로 떨어져 갈 뿐이었다. 나는 공중의 섬에 매달려 사는 기분이었다. (80쪽) |
먼저 이 글을 소리내어 읽어보면서 리듬을 느껴보라.
문장과 문장 사이에 오선지와 음표가 들어있는 것처럼 리듬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게다가 지금껏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많은 에세이 작가들을 읽어왔지만, 공중의 섬에 매달려 산다는 기분을 느껴본 이도, 글로 써낸 이도 만나지 못했다.
공중에 매달려 살아가면서도 그걸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른 것은 어찌 제대로 느낄 수 있겠는가? 해서 저자야말로 제대로 체공(滯空) 감각이 있는 사람이다. 그 느낌을 느끼는 사람, 그래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문장 외에도 글마다 느껴지는 리듬감,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걸 느꼈다. 왜 이러지? 글을 읽어가다보면 어느새 입밖으로 소리가 되어 나온다. 입이 저절로 벌어지니, 참 별일이다.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외로움이 훅 밀려들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대책 없이 엄습할 때면 자식들에게 자꾸 섭섭해진다. 딸애보다 아들놈에게 더 그렇다. (214쪽) |
부사와 형용사가 군데군데 추임새처럼 쓰여서, 저절로 리듬이 일어난다.
산문이 분명한데, 시처럼 읽혀진다. 산문시.
(원래 글은 산문으로 행갈이 없이 이어지는데, 행을 갈아 적어본다.)
그래서 다시 말한다. 이 책,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정말 괜찮아. 너무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