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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누구니 - 젓가락의 문화유전자 ㅣ 한국인 이야기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2년 3월
평점 :
너 누구니 - ‘한국인 이야기’ 두 번째
젓가락은 음식을 먹는데 쓰는 도구다.
젓가락을 사용할 때마다 우리 인간이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을 확실히 깨닫게 된다.
우리는 호모 파베르, 즉 도구를 사용하는 인간이다.
먼저 전인류를 대상으로 식사 도구를 기준으로 분류해보면, 이렇게 나뉘어진다.
30%가 포크와 나이프를 사용하고, 30%가 젓가락을 사용한다. 나머지 40%는 손으로 먹는다. (44쪽)
그런데 이어령 선생은 그런 것 외에도 젓가락에 무궁무궁한 이야기가 들어있음을 알게 해준다.
젓가락, 그것을 소재로 하여 펼쳐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 보따리, 그걸 풀어보자.
노자부터 시작한다.
노자의 도덕경, 28장에 있는 말씀이다.
“통나무가 쪼개져 도구가 된다.”(14쪽)
이어령 선생은 젓가락 하나를 들고, 12고개를 넘어가며 이야기를 찾아내 들려준다.
요즘 많이 나오는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
마치 나뭇꾼이 도끼질 하다가 연못에 빠트린 도끼 이야기처럼 금은이 등장한다.
이건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나오는 구절이다.
“여보, 반짝인다고 모두 금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이 은 스푼을 물고 태어나지도 않고요.”
산초를 향해 쏘아붙이던 부인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반짝인다고 모두 금은 아니’라는 말, 셰익스피어도 했는데, 누가 그말의 원조인지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젓가락 행진곡, 피아노 곡이다.
1877년 영국의 16살 소녀 유페미아 앨런이 가명으로 발표한 곡이다. (46쪽)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수저가 등장하여, 연암의 웃음 코드를 알 수 있게 된다. (66쪽)
우리말 젓가락,
젓가락은 곧 손가락의 연장이 아닌가? 일본어나 중국어에는 이렇게 손가락을 연상시키는 말이 없다. 우리만 젓가락이 손가락의 연장임을 보여준다. (77쪽)
아시아로 눈을 돌려, 이어령 선생은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일본의 젓가락을 비교해 놓았다. 그렇게 비교한 것을 보니, 삼개국의 문화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84쪽)
또한 이런 것도 의미가 있다.
한중일 3국에 관련된 젓가락의 기원을 모아 놓으면 의외로 재미난 젓가락 삼국지가 되고, 그 속에서 흥미로운 3국 문화의 기원이 되는 밈을 찾아낼 수 있다. 그리고 그걸 비교하면 한중일 3국과 연계돼 있는 아시아 문화의 미래까지 점쳐볼 수 있다는 게다. (188쪽)
그렇게 이야기가 끝없이 펼쳐지는데, 단순히 우리나라 부근만, 한중일 3국만 거니는 게 아니다.
이어령 선생은 그 범위를 세계로 넓혀간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 공중으로 던져진 뼈 이야기도 가져온다. (142쪽)
이는 선생이 투석인, 즉 호모 훈디토르와 관련하여, 던지는 행위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미래로 시간범위를 넓힌다.
젓가락의 문화유전자는 과거만 볼게 아니라, 미래에도 펼쳐진다.
우리나라에서 은수저도 독을 검출해 낸 것처럼, 요즘은 또 젓가락에 센서가 달려 있어서 먹은 음식의 성분을 알려주는 것도 나왔다. 물론 우리나라의 이여=irl가 아니라 중국 바이두에서 개발한 것이다. 또 구글에서는 헬스케어 업체인 리프트랩스를 인수했는데, 그 회사에서는 파킨슨병처럼 심하게 손이 떨려서 식사가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특별한 숟가락을 개발해온 회사이다. 그런 회사를 인수한 구글, 그래서 미래에도 젓가락과 숟가락 산업은 살아남을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이 책에서 이어령 선생은 젓가락을 소재로 하여 우리 한국인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음식을 먹는데 쓰는 젓가락이 하찮게 보여도, 그건 없어서는 안되는 도구다.
그래서 젓가락은 이미 지나간 유물이 아니고, 계승 발전시켜 나가야 할 우리 민족의 유전자이다.
그래서 자칫 소홀해지기 쉽고, 잊혀지기 쉬운 젓가락을 소재로 하여 우리의 정체성을 찾고, 젓가락에 관련된 문화를 다시 한번 새겨보자는 선생의 목소리, 현재는 물론 미래에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선생의 이런 목소리, 이제 다시 듣지 못하게 된 것, 안타까울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그런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의미에서도, 읽으며 새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