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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마쓰다 아오코 지음, 권서경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3월
평점 :
지속가능한 영혼의 이용
소설이다, 장편소설.
먼저 주인공 이름을 잘 외워두자.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이 띄엄띄엄 시차를 두고 등장하는 바람에 소설 속에서 그 인물이 어떤 비중을 가지는지, 파악이 잘 되지 않는다.
해서 이름 먼저 기억해두자.
게이코 (敬子) : 주인공, 여성. 회사원.
가가와 아유무 : 게이코의 회사 동료 (일본인 이름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는 남성인줄 알았는데, 여성이었다.)
미호코 : 게이코의 친구.
엠마 : 맨처음에는 여성인줄 알았다. 그런데 여성인 미호코와 부부사이라니, 남성인가 싶다.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그게 불분명하다. 동성 커플인지도?
우나미 마나: 게이코의 후임, 전 아이돌 구마노 마나.
이 책에서는 주인공 격인 게이코를 중심으로 해서 ‘아저씨’의 문제가 펼쳐진다.
그녀가 회사에 다니다가 뜻하지 않은 일에 휘말려 퇴사하게 되고, 잠시 토론토에 다녀와서.....
게이코가 회사를 그만 두게 만든 문제의 그 ‘아저씨’
그 ‘아저씨’의 행태를 주의해서 살펴보자.
그 남자는 게이코와 같은 회사에 근무하는 아저씨다.
게이코와 아무런 접점도 없고 이야기를 나눠본 적도 없는데, 어느 시점부터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되풀이하기 시작한다.
예컨대, 이런 행동이다.
게이코가 탕비실에서 머그컵을 닦고 있는데, 냉장고 안을 들여다 보고 있던 남자가 어느새 게이코 옆으로 다가와 “아, 괜찮으세요?” 하면서 게이코의 등에 손을 얹는다.
그때 아유무가 들어온다. 그러니 아유무 눈에는 그 아저씨와 게이코가 다정한 사이처럼 보이게 된다.
그 남자는 뜬금없이 다가와서는 묘하게 친한 척을 하며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질문을 던지거나 하다가, 잠시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리를 떴다.
그럴 때마다 가볍기는 했지만 등이나 어깨와 팔을 만지는 일도 적지 않았다.
어쩌다가 단 둘이 엘리베이터를 탄 일도 있는데, 그 아저씨는 진짜 괴상한 행동을 한다.
7층에서 1층까지 내려갈 때에는 아무 일도 없었는데, 문이 열리는 순간, 남자는 스윽 다가와 게이코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사람 중에는 그 순간을 목격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104-105쪽)
또한 게이코가 편의점에서 그 사람과 함께 역까지 나란히 걸어간 것을 아유무가 목격한 적이 있다. 그래서 아유무는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이고, 역까지 걸어가며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나중에 듣게 된 그 날 일은, 그 사람이 편의점에 있는 게이코에게 다가와 “신발 밑창이 뜯어진 것 같은데, 역 안에 수선집이 있던가요?”라고 물어, 같이 가면서 알려준 것이라는 것.
그런 식으로 그 아저씨는 의혹의 씨를 뿌리며 목격자를 늘려나간 것이다.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있구나, 그런 암시를 줄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은 장소에서는 게이코를 완전히 무시했다.
이런 식으로 회사 여러 사람 눈에 띄게 되자, 어느덧 게이코와 그 남자는 사내에서 사귀는 사이라고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게 되었다.
그래서 게이코가 그 아저씨를 그런 사실이 있다고 인사과에 이야기했을 때, 모두가 두 사람이 사귀는 줄 알았다고 말하고, 결국 게이코의 호소는 어느새 ‘히스테리녀’의 거짓말이 되어 있었다. (106쪽)
게이코는 회사 직원, 특히 나이 많은 남자들에게 조롱 섞인 설교를 들어야 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진 퇴사라는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106쪽)
그걸 나중에 알게 된 아유무, 이런 결심을 한다.
내가 무너뜨리겠어. (108쪽)
그래서 그런 결심을 듣고 난 후, 독자인 나는 기대에 부풀었다.
아, 이 소설이 그런 ‘못된 아저씨’를 혼내주는 이야기구나, 생각했다.
그렇게 혼내주는 장면, 과연 등장할까?
뭐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등장한다. 이왕 할 거라면 좀 더 세게 후려치기라도 했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여성의 위상, 일본에서는?
퇴사 후 캐나다에 다녀온 게이코는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여자, 일본에서 살아가는 여자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다.
해서 이 소설은 그녀의 눈으로 ‘아저씨’들이 어떻게 여자들을 대하는가를 자세하게 살펴보고 있다.
이 소설에서 그런 세태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잘 살펴볼 수 있다.
전 세계적 성폭력 고발 운동, 즉 미투 운동이 벌어진 이후 화두가 된 페미니즘을 온몸으로 경험한 저자가 성차별이 난무하는 일본의 현실을 날카롭게 들여다보고 폭로하는 소설이다.
이런 사실은 일본도 그렇거니와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어서, 시사하는 바가 많다고 할 것이다.
저자가 소설 『82년생 김지영』이란 소설에 추천사를 썼다는 말에, 그 책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우리말로 출판된 책에는 추천사가 안 보인다. 아마 일본판에 썼나보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듣고 읽어서 그런지, 책 내용중에 일본의 여성에 대한 현황 리포트라 여겨질 정도의 글들이 많이 보인다. 마치 『82년생 김지영』 속에 여성관련 자료 및 통계들을 많이 집어 넣은 것처럼.
다시, 이 책은? - ‘지속가능한 영혼’이 의미하는 것은?
이런 힌트 읽어보자.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지치고 닳는다.
영혼은 영원히 충만하게 채워져 있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한 일을 겪거나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 때마다 영혼은 닳는다. 영혼은 살아있으면 닳는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을 오래 지속시키며 살아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취미와 최애를 만드는 것이다. (129쪽)
게이코는 이제 자신의 영혼은 아무리 가득 충전한대도 82% 정도에서 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게이코, 과연 그녀는 지속가능하게 영혼을 충전시켜 나갈 수 있을까?
그 방법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바로 그런 게이코의 모습을 통해, 여성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끝으로 ‘아저씨’의 모습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이런 아저씨를 만나지만 않아도 영혼을 지속가능하게 유지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시대착오적인 성차별과 고정관념을 이용해 게이코를 계략에 빠트린 남자, 자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앞으로도 모르는 척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남자. (108쪽)
우리나라에도 이런 아저씨의 모습을 만나는 경우 많을 것이니, 그럴 때, 아유무처럼 ‘내가 무너뜨리겠어’라는 심정으로 한바탕, 욕이라도 해주는 게 어떨까? 아니면 이렇게 코웃음이라도.
“야, 너. 여자가 어디서 말을.....”
“아직 얘기중이거든. 말 끊지마.”
아유무는 코웃음을 쳤다. 코웃음을 친다는 게 이렇게 기분 좋은 거구나. 신선하고 놀라웠다. (228쪽)
그렇게 해주면, 아유무처럼 ‘이렇게 기분 좋은 거구나’하면서 신선하고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