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의 공감 연습
이 책은?
이 첵은 저자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쓴 <정약용의 소사학(昭事學)에 대한 연구>의 아이디어를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새롭게 구성한 것이다.
소사학(昭事學)이란 밝게[昭] 섬기는[事] 것에 관한 연구다.
정약용에게 소사(昭事)의 대상은 천주였다. 그러나 저자는 ‘천주를 밝게 섬기는 것’을 ‘타인을 밝게 섬기는 것’으로 확장하고자 했던 정약용의 윤리학적 통찰에 주목한다. 그래서 거기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것, 곧 서(恕)를 뽑아낸다. 서(恕)는 곧 공감이다.
저자는 그렇게 뽑아낸 공감을 살펴보기 위해 이 책에서 세 가지로 접근한다.
1부에서는 『논어』에 나타난 공감을
2부에서는 정약용이 쓴 『논어고금주』에 나타난 공감을
3부에서는 자공과 공자의 대화, 그리고 자공의 어록을 다루고 있다.
정약용이 말하는 공감은?
정약용은 정조 사후, 유배를 시작으로 거의 평생을 고초를 당하며 살았다.
그만큼 혐오의 시대를 처절하게 경험했다.
그런 가운데 도달한 생각이 바로 공감, 즉 서(恕)다,
많이 배우고[多學] 많이 아는 것[多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쌓아올린 지식을 하나로 꿰뚫을 수 있는 공감[恕]에 정약용은 주목했다.
그래서 이런 과정을 거쳐 서를 배워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는데, 먼저 이런 구절 살펴보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저자가 기본으로 사용한 『한글 논어』의 번역에 의하면 이 말은 이렇게 해석이 된다.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그러면 무엇을 배우면 그렇다는 것인가?
정약용은 『논어 고금주』에서 지(之)의 목적으로 서(恕)를 집어 넣었다.
정약용에게 서(恕)란 곧 공감이다. (22, 69쪽)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서(恕)를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공감을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그렇다면 공감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논어》의 [위령공]편 23장에서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己所不欲 勿施於人)
부정으로 번역되는 이말을 다산은 다시 긍정 표현으로 이렇게 제시한다.
“내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먼저 베풀어라. 그것이 서다.”(己之所欲 先施於人恕也)
자신의 하고 싶은 바를 남에게 베푸는 것이 서(恕)다.
이로써 긍정과 부정이 하나 되었다.
그렇게 해서 정약용이 풀어낸 서(恕)는 이제 서양의 황금률과 서로 뜻을 같이 하게 된다. (47쪽)
이를 표로 만들어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공자의 서(恕) |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
정약용의 서(恕) | 자신의 하고 싶은 바를 남에게 먼저 베풀라. |
서양의 황금률 |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
이를 필두로 하여 『논어』를 다산의 새로운 시각으로 풀어낸 구절들이 독자들을 맞이하고 있다.
『논어』 새로운 번역에 눈이 번쩍 뜨인다.
이 책에서 저자가 사용한 『논어』 번역본은 이을호의 번역 『한글 논어』다.
다른 번역본에 비해 색다르게 번역된 곳이 많아, 『논어』 를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이런 것 읽으면서 『논어』 구절을 새롭게 음미해보자.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배우는 족족 내 것을 만들면 기쁘지 않을까? (17쪽)
君子不器 (군자불기)
쓸모 있는 인간은 외통수는 아니다. (34쪽)
옹야편 28장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 (부인자, 기욕입이입인, 기욕달이달인)
대체로 사람 구실 하는 사람은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을 세우고
제 앞을 트고 싶으면 남의 앞길을 터준다. (44쪽)
번역이 신선하다. 새로운 번역본 만나게 되어 기쁘다.
또 있다, 인(仁)을 ‘사람 구실을 하는 것’으로 번역했다.
‘
『논어』의 사상을 한 글자로 표현하면 인(仁)인데, 이 책은 그 인(仁)을 다르게 접근한다.
이을호 『한글 논어』에서는 인(仁)을 ‘사람 구실’로 번역하고 있다.
안연 1장
克己復禮爲仁 (극기복례위인)
사욕을 억누르고 예법대로 살면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 (70쪽)
안淵問仁(안연문인)
안연이 사람 구실에 대해 물은즉 (72쪽)
子貢問爲仁 (자공문위인)
자공이 사람 구실하는 방법에 대하여 물은즉 (72쪽)
고전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그렇게 해서 이 책으로 고전의 의미를 새롭게 새겨볼 수 있었다.
시대에 따라 달리 읽을 수 있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책, 그것이 진정한 고전이다. (23쪽)
요즘 읽은 책 중, 마키아벨리를 서술하면서 저자의 말한 것이 어느 사람이나. 어떤 책이나 새롭게 해석될 만한 사람/책이라면 그대로 적용이 가능할 것이기에, 여기에 첨가한다.
이처럼 위대한 사상가는 매 시대마다 새롭게 태어나고, 각 시대는 그를 새롭게 해석할 임무를 떠맡으며, 그 결과 그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된다.
(『군주론, 강한 국가를 위한 냉혹한 통치론』, 강정인, 37쪽)
이런 사실도 알게 된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정약전보다 그의 동생인 정약용이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조 당시 조정에서는 정약전이 더 주목받는 인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약용보다 더 위협적인 인물로 여겨져, 더 멀고 험한 흑산도로 유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즉 과거에는 형 정약전이 현대에는 동생 정약용이 더 유명인이라 할 수 있다. (144쪽)
다시, 이 책은? - 나의 눈을 새롭게 뜨게한 책
『논어』 <위징> 편 11장에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유명한 사자성어가 있다, 보통 ‘옛것[故]을 익히면 새것[新]을 안다’고 해석한다. 나의 스승께서는 ‘고(故)’에 대해서, 이것은 단순히 ‘예전 것’, ‘오래된 것’이 아니라 나와 연고(緣故)가 있는 과거의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와 같이 ‘고’의 의미가 바뀌면, 뒤에 이어지는 ‘지신(知新)’의 의미도 달라진다. 새것을 아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있던 지식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10쪽)
이 글이 나의 눈이 번쩍 뜨게 하였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 그저 새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새로워진다는 그말, 그말에 밑줄을 긁게 그었다.
그래서 이 책으로 『논어』를 새롭게 읽을 수 있었고 더하여 다산 정약용의 깊은 뜻도 새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