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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보이는 명화 ㅣ 인문학이 뭐래? 2
햇살과나무꾼 지음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1년 3월
평점 :
알면 보이는 명화 [인문학이 뭐래? 2]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1권, <책을 펴내면서>) |
유홍준은 그 말을 그저 조선 시대 한 문인이 한 말이라고 했는데, 유영만은 그 출처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다.
정조때의 문장가인 유한준이 당대의 서화 수장가였던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부친 발문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원문은 “알면 곧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고, 볼 줄 알게 되면 모으게 되나니 그것은 한갓 모으는 것은 아니다.”로 해석된다. 즉 원문에서는 ‘알면 사랑하게 되고’였지만 이를 유홍준이 ‘사랑하면 알게 되고’로 바꾼 것이다.
(『공부는 망치다』, 유영만, 11쪽)
어쨌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는 책이다.
『알면 보이는 명화』, 그림을 알게 해주고, 해서 그림을 제대로 보게 해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경우,
<모나리자>를 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리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평면의 캔버스 위에 물체의 멀고 가까움을 담아내는 방법은 오랫동안 화가들이 고민하던 문제였다. 오랜 탐구의 결과 화가들은 멀리 있는 물건은 작게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했고, 이 법칙을 그림에 적용해 캔버스에 공간감과 깊이감을 불어넣었다. 이게 바로 미술에서 혁명과도 같은 발견이라고 일컬어지는 '원근법'이다. 그런데 다빈치가 새롭게 발견한 사실, 곧 멀리 있는 물체는 작게 보일뿐 아니라 윤곽이나 색채가 흐릿해 보인다는 사실은 원근법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놀라운 지식이었다.
다빈치는 이 발견을 풍경화에 적용해 보았다. 멀리 있는 물체를 그릴 때 윤곽선을 선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옅은 물감을 몇 번이고 덧칠해 형태가 뿌옇게 흐려지도록 한 것이다. 그러자 그림의 깊이가 훨씬 생생하게 드러났다. 거기에다 풍경이 마치 뿌연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표현되어, 그 속으로 들어가면 어딘가 신비로운 세계가 나타날 것 같은 여운을 남겼다. (9-10쪽)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다빈치는 그 기법을 초상화에 적용하기로 한다.
바로 이것이 다빈치가 개발한 ‘스푸마토’ 기법이다.
윤곽선이나 경계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색조를 아주 섬세하고 부드럽게 변화시켜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기법이 스푸마토 기법이다. 이렇게 하면 윤곽선이 연기 속으로 사라지듯 뿌옇게 흐려져 보는 사람에게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12쪽)
이런 기법을 썼다는 것을 알고, 이제 <모나리자>를 다시 보면 과연 어떻게 보일지?
모네와 칸딘스키, 서로 통한다.
모네로 대표되는 인상파의 그림 특징은 이렇다.
모네가 그린 <인상, 해돋이>를 살펴보자.

동이 틀 무렵 항구 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는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어디를 보고 그린 것인지 항구의 모습도 정확하지 않았다. 노를 젓는 사람은 사람 같다는 인상만 주었을 뿐 눈, 코, 입도 보이지 않고 형태 또한 뚜렷하지 않았다. (42쪽)
당시 화가들은 역사 속에 나오는 영웅 이야기나 신화처럼 교훈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즐겨 그렸는데, 인상파 화가들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주제로 다루었다. 그렇다 보니 이런 그림은 품위가 없고 집 안에 걸어두고 볼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세부 묘사를 줄이고, 윤곽선을 무시하고 강렬한 원색을 붓에 찍어 빠르고 대담하게 색칠했다. (47쪽)
그렇게 시작된 인상파를 따라가다 보니, 뜻밖에도 칸딘스키를 만나게 된다.
<건초 더미 연작>
1896년 모스크바에서 프랑스 인상주의 전시화가 열렸다.
칸딘스키는 그 전시회에서 모네의 그림 하나를 보고 몹시 당황했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칸딘스키는 그림을 보고 그것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아보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아무리 봐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안내 책자를 보고 제목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것이 건초더미인줄 알게 되었다.
그런데 그 그림은 칸딘스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엇을 그린 것인지도 모르고 본 그림이었는데, 색채가 어찌나 강렬했던지 화면 구석구석까지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였다. (176쪽)
그렇게 모네의 그림은 뒷날 칸딘스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큰 감동을 주었고, 칸딘스키가 추상 미술의 세계로 나아가는데 용기를 주었다. (180쪽)
자, 이제 직접 살펴볼 차례다.
모네의 작품 <건초더미> 연작 중 하나를 보고 칸딘스키의 작품도 같이 감상해보자.
칸딘스키가 모네의 작품을 보고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몰랐던 것처럼, 우리도 칸딘스키의 작품을 보면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모를 것이다. 그러니 그 작품에서 색채와 형태 등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추상화의 경지로 들어가보자.


칸딘스키는 색과 선, 면 만으로도 음악처럼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 인상파 화가들의 기법을 차용해서
위에서 “모네를 비롯한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기 위해 세부 묘사를 줄이고”라는 말을 인용한 바 있는데, 이 책의 서술 방법이 그렇다.
화가들을 다루면서 그들의 생애 전반을 다루지 않고, 마치 순간의 인상을 포착해서 그림을 그렸던 인상파처럼, 가장 중요한 시점의 일을 골라서 보여주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린 것,
렘브란트는 <프란스 반닝 코크 대위가 중위에게 시민 사수대의 출발 명령을 내리다>를 그린 것을,
고흐는 고갱과 같이 지내던 시절을,
세잔은 볼라르라는 사람의 초상화를 그리던 이야기를,
이밖에도 많은 화가들의 반짝이는 장면, 장면을 잘 묘사해 놓고 있다.
우리 화가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특기할 사항 하나는, 우리 화가들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신사임당, 정선, 김홍도, 장승업, 이중섭, 박수근.
우리 화가들이 그린 산수화에 대하여 이런 정리, 간단하게라도 해두고 싶다.
조선 초기까지는 우리 자연의 실제 모습을 그리는 전통이 없었다. 중국의 산수화를 그대로 모방한 관념 산수화가 유행했다.
조선 후기가 되어, 우리 산수의 아름다움을 그리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렇게 해서 진경산수화가 탄생한다.
특히 김홍도는 치밀한 묘사와 대담한 구도로 우리 자연을 그려 진경산수화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67쪽)
조선 말기가 되자, 진경산수화를 비판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러한 흐름을 이끌던 사람이 김정희였다. 그는 진경산수화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일에 지나치게 매달리면서 그 밑에 숨은 뜻을 표현하는 일에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67쪽)
다시, 이 책은?
이 책은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내용이 위인전이 아니라는 것, 말해둔다.
어린이용이라면, 내가 잘 못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주인공은 먼저 어린이로 등장한다. 어린이인 주인공이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성공한다는 줄거리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책은 전혀 그런 게 아니다.
다 큰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그의 생애 중 가장 특별한 것 한 두 가지를 선별하여 깊게 파고들어 보여준다. ‘순간 포착’이라고 할까. 그건 위에 인상파 기법이라고 말해 둔 바 있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단순히 지식을 얻는데 머물지 말고, 세계를 바라보는 더 넓고 깊은 시선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고 말하는데, 그말 백번 맞는 말이다. 이 책을 통해 세계와 그림을 바라보는 넓고 깊은 시선 얻을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