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출봉에 부는 바람 - 임영근 산문집
임영근 지음 / 파라북스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출봉에 부는 바람

 

제목에서 말하는 일출봉이 어디일까?

내가 아는 일출봉은 당연히 제주도에 있는 일출봉이다.

 

제주도에 가본 적이 있어이 책 제목을 듣고 바로 그곳을 떠올렸고해서 이 책을 펼쳐 들었다내가 가본 곳일출봉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있었을까하는 마음으로.

 

이 책은 제주도에서 나고 자란 저자가 글쓰기 모임에서 유년의 즐거웠던 추억을 산문으로 쓰세요라는 주제를 붙들고 쓸 글을 모은 산문집이다.

물론 이 책에는 유년의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다대학 시절그리고 저자가 대학 시절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치소에 갇혀 지낸 이야기도 들어있다.

해서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읽을 거리가 충만하다.

 

맨 처음 이 책을 펼칠 때에는 일출봉이 어땠을까하는 단순한 생각이었지만 읽다가 보니 어느새 저자의 모든 시간에 쏙 빠져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왜 그랬을까이야기가 재미있어서 그랬다.

저자의 입담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

 

아버지는 성산포 토박이었다.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때 일본으로 가 자리를 잡았다해방후 일본에 눌러 살면서 새로 결혼을 하고 자식들도 여럿 낳으셨다. (19)

 

일출봉은 저자에게 어떤 곳일까?

 

일출봉 자락 잔디밭에서 처음 썰매를 타던 기억이 떠오른다여섯 살 무렵이었다바람에 유채꽃 노란색이 실려올 것 같은 화창한 날이었다. (27)

 

읽다보니 어째 글이 이상해진다썰매를 탔다고 해서 겨울인줄 알았더니 유채꽃이 핀 계절이라니눈이 없는 언덕에서 썰매를 탄 것이다외지 사람은 제주도로 건너가 차 타고 일출봉에 가서 기껏 한 번 보고 오는데저자는 거기를 놀이터 삼아 지낸 것이다그러니 일출봉에 대한 생각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거기에 호텔도 들어섰다.

 

마침내 호텔이 들어섰다일출봉 자락을 압도하며 큰 건물이 들어섰다.

호텔을 세운 사람은 리라초등학교 이사장이라고 했다그때 땅을 헐값으로 사들였는데뒤늦게 헐값에 넘긴 동네 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리자 마지 못해 인근 초등학교 6학년들 수학여행을 서울로 보내주었다는 것이다. (31)

 

그렇게 저자의 유년 시절은 일출봉과 함께 지나가고 있었다.

저자의 초등학교 이야기가 어찌나 재미있게 펼쳐지고 있는지나의 경우를 돌아보니 재밌던 기억이 별로 없는 것 같아질투까지 날 정도였다.

 

하얀 억새꽃 필 무렵이면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일출봉에 오른다또 하나의 성산포가 거기에 있다. (38)

 

제주도의 돼지 이야기도 재미있다.

돼지를 제주도에서는 도새기라 부르는 모양이다.

 

다른 쪽 담에 돌담으로 꽤 높은 단을 세우고거기서 사람들이 일을 본다이곳이 통시이다출입문은 따로 없다. (.......) 현기영 선생은 바람 솔솔 통하는 통시에 앉아 일을 보던 순간을 대자연을 느끼는 순간이라고 썼다.

도새기는 사람이 오는 낌새를 눈치 채고 미리 와서 기다린다그런 다음 깨끗이 처리해준다그래서 통시에는 냄새가 그리 심하지 않았다. (44)

 

갈릴레이냐갈릴레오냐?

 

그렇게 재미있게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아 그저 부러운 마음으로 읽어가는 중에내가 참견할 거리가 하나 보인다.

 

저자는 성산포에 살다가 제주시로 이사를 가게 되어자연이 학교도 전학을 가게 된다.

제주시에서 다니는 학교에서 저자가 놀란 게 있었는데아이들의 대화 수준이 달랐다는 것이다.

 

성산포에서는 오늘은 수매밑 동굴에서 놀 것인지 오정개에 보말 주으러 갈 것인지 따위를 화제로 삼으며 놀았다이곳 아이들은 달랐다갈릴레이가 낙하 실험을 한 곳이 어디냐피사의 사탑이다그런데 갈릴레이가 맞느냐갈릴레오가 맞느냐이런 대화를 주고 받았다. (118)

 

이 글을 읽고 조금 부끄러웠다왜냐면 갈릴레이가 맞는지 갈릴레오가 맞는지 하는 생각을 최근에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그쪽 제주에서는 초등학생이 하던 논의를 이 나이 들어 하고 있다니 부끄러웠던 것이다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것들이 논의의 대상이 되긴 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은 안도하기도 했다.

 

내가 찾아낸 그 답은 이렇다.

 

갈릴레오는 이름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인데위인들을 첫 이름으로 부르는 이탈리아 전통에 따라서 갈릴레오라 부른다. ( 갈릴레오의 진실』 읠리엄 쉬어, 17)

 

저자의 삶을 말해주는, ‘안과 밖의 역사

 

저자는 대학 시절을 구치소에서 보낸 적이 있다.

 

전두환 정권이 끝을 향해 치닫던 시절이라 바깥에 안 좋은 일이 있으면 수감중인 대학생부터 조진다고 말하는 동료들이 많았다열흘씩 단식을 하기도 했고보안과 지하실과 컴컴한 징벌방에도 여러 번 들락거리기도 했다. (205)

 

여기서 말하는 바깥이란 구치소 밖을 말한다.

저자의 소재가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말이다.

 

엄마가 전교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나... (214)

 

여기서 엄마란 저자의 아내를 말한다아내의 소재가 어디인지 알 수 있는 문장이다.

학교 밖으로 쫓겨난 것이다.

 

또 있다. ‘안과 밖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우리 나라의 역사가 저자의 삶에 들어 있다.

 

외삼촌의 귀향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느닷없은 일이었다외삼촌이 돌아올 즈음어른들끼리 일본에서 조총련에 있었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얘기를 들었다. (110)

 

그리고 얼마 뒤외삼촌은 간첩죄로 잡혀갔다.

외삼촌은 5년쯤 감옥살이를 하고 나왔다. (113)

얼마 뒤공대에 다니던 형은 카이스트 석사 과정에 응시했는데 떨어졌다연좌제라고 했다외삼촌이 간첩인데 국가기관이나 다름없는 카이스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다들 쉬쉬 했지만 43을 겪은 제주 출신들에게는 흔히 있는 일임을 그때 알게 되었다. (114)

 

그렇게 개인의 삶은 모여서 한 나라의 역사를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그래서 한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우리의 역사책이기도 하다.

개인사가 곧 역사인 것이다. 

 

다시이 책은?

 

사람은 다들 나름대로 살아간다그 삶 속에 사연들을 쌓아가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간다그게 인생이다그런데 그 이야기들 중에 그냥 흘려버리기엔 아까운 것들이 많다혼자 겪은 일이지만 남들에게는 귀한 교훈이 되기도 하고교사가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책이 그런 책이다.

흔히들 말하는 내 이야기를 풀어내면 책 몇 권은 되고도 남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니라는 것이 책으로 다시 한번 확인한다.

 

저자의 삶에 경의를 표한다.

또한 역사 기록을 남겨준 데 대하여도 경의를 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