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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 - 가짜 이야기, 진짜 이야기, 이야기의 순간
조서연 지음 / 아우룸 / 2021년 8월
평점 :
삶을 이야기하는 책 읽기
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신선한 도전을 담고 있다.
이야기 한 꼭지마다 그 이야기를 읽은 독자가 등장하여 저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와 그 뒤 이야기를 구분하기 위해 앞의 이야기를 ‘소설’, 그 뒤의 이야기를 ‘대담’이라 구분하자.
이야기(소설)를 만들어 제시하는 사람은 이 책의 저자이고, 그 이야기(소설)를 읽고 저자와 이야기(대담)를 나누는 사람은 저자의 어머니이다.
그러니까 어머니와 딸이 모여서 딸이 쓴 소설을 읽고 대담을 나누고 있는 것이다.
그런 소설과 대담이 모두 7개의 소설을 두고 이루어진다. 해서 글은 모두 14개가 된다.
소설을 읽고 난 어머니의 의견, 들어보자.
세 번째 이야기 <지도의 역사>에 대해서다.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건, 지겹다. (112쪽)
이 말에 눈이 간다. 솔직히 그 소설을 읽는 내 마음도 그랬으니까.
이야기, 매우 짧은 단편 형태를 지닌 소설인데 시작 부분에서는 감이 잡히지 않고, 계속 길을 헤메는 듯 하다가 중반쯤 가서 무언가 속에 들어있는 것을 눈치 챘으니까 말이다.
그러니 초입부분은 지겹다는 말이 맞는 것이다.
저자는 애를 써서 소설을 만들어내면서, 줄거리를 얼른 파악하지 못하도록 해 놓았다. 독자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여러 방벽을 쌓아놓고 그걸 허물고 들어오도록 장치를 만들어 놓는 바람에 조금 지겨웠다. 게다가 대화와 지문도 섞여있어서 어느 부분이 누가 한 말인지, 설명하는 말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어머니도 지겹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얼개가 파악된 다음에는 당연히 그 다음 이야기의 전개가 궁금해진다.
그래서 어머니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나는 또 뒤에 일어날 일들이 너무 궁금해지는 거야. 이 여자가 구제상사에 들어가서 무엇을 할까. (121쪽)
독자들로 하여금 뒷 이야기가 궁금하게 만들었다면, 그건 소설가로서 일단 합격이다.
소설을 읽은 어머니도, 독자인 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 전혀 없다.
소설은 재미있고, 흡인력이 있어, 합격이다.
소설 다음에 이어지는 대담에서 어머니의 평이 그 소설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해주며, 그래서 혹 길을 잃었을지도 모르는 독자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게 해주는 훌륭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훌륭한 어머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소설도 소설이거니와 그 다음에 이어지는 어머니의 평이 어떨까 궁금해지는 것이었다.
대담은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된다.
먼저 어머니가 딸의 소설에 대해, 전반적인 느낌을 말한다.
[제1화 첫 번째 이야기 : 『소설 쓰는 여자』
이야기하기 : “무엇 때문에 말하기가 힘든 것일까?”]
어머니 : 이 글을 한 단어로 압축한다면 ‘레아’야.
저자 : 레아? 소설 쓰는 여자가 붙인 이름? (40쪽)
[제3화 세 번째 이야기 : 『지도의 역사』
이야기하기 :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
어머니 : 이 글을 읽으면서 느낀 건, 지겹다. (112쪽)
[제6화 여섯 번째 이야기 : 『한나의 실험』
이야기하기 : “콤플렉스는 무엇에 의해 만들어질까?”]
어머니 : 이글의 인물들이 꼭 우리 집 누군가를 지칭하는 느낌이 들지만 나는 소설로 보고자 한다. (218쪽)
그 다음에는 소설을 두고 서로 의견을 교환한다.
[제3화 세 번째 이야기 : 『지도의 역사』
이야기하기 :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
네 이야기를 듣다보니 지도가 길 찾기도 있지만, 우리네 살아가는 인생행로도 담고 있겠다는 생각도 드네. (115쪽)
그리고 주인공은 길을 잘 모르는 여자야. .
그렇지, 너처럼 길치. (115쪽)
살아온 역사가 ‘지도의 역사’와 오버랩 되면서 엄마가 말한 인생행로도 떠올리게 한 게 아닐까. (116쪽)
그 다음에 현실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소설 속의 상황 한 가지를 꺼집어내 대입시켜 묻거나 한다.
[제2화 두 번째 이야기 :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하기 : “머물지 말았어야 할 공간이 있을까?”]
엄마에게 좋았던 추억 공간은 자식에 대한 거네?
그렇지. 나는 자식을 통해서 그런 걸 느끼지. 좋았던 순간은 손녀들 출생의 기쁨이 느껴지던 순간이고, 그 감동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83쪽)
[제3화 세 번째 이야기 : 『지도의 역사』
이야기하기 : “마음을 움직이게 한 힘은 무엇일까?”]
엄마도 이 여자처럼 갑작스럽게 알고 싶거나 찾아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 (123쪽)
[제5화 다섯 번째 이야기 : 『검은 돌의 노래』
이야기하기 :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뭘 해야 할까?”]
만약에 그 때(청춘 시절)로 돌아간다면 엄마는 뭘 하고 싶어? (191쪽)
이렇게 진행되는 대담과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의 의도 -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를 드러내 보이려는 - 는 잘 맞아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체 이야기가 제대로 잘 읽혔으니 말이다.
다시, 이 책은?
엄마.
왜?
같이 읽을까?
무엇을 말이냐?
내가 만든 이야기,
네가 원하면 뭐든 읽을 수 있어.
저자와 저자의 어머니가 이런 대화를 나눈 다음에, 딸은 소설을 쓰고 어머니는 읽었다.
이런 대화는 이 책의 저자와 어머니 사이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저자와 그 책을 읽는 독자 사이에서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다.
왜냐면, 그건 이 책 저자의 어머니가 말한 바가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삶을 듣는 것도 독서라면 독서지.” (11쪽)
그 말이 이 책의 색깔을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책을 통해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의 대담 구조에서 밝힌 바와 같이 우리 자신의 상황으로 돌아와, 자신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게 소설의 기능이 아닐까.
이 책은 소설의 그런 기능을 더 한층 밝히 보여주고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